우리나라 가계통신비가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높지 않다는 통계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가계 통신비 비중이 가계 소득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는 OECD 통계가 더욱 공감을 얻는다. 특히 단통법 이후로 단말기 구입 비용이 높아지고 데이터 사용 증가에 따라 사용 요금 역시 늘어나면서 한 가정에서 지출되는 통신비용만 십 수 만원에 달하고 있다. 가계 부채 폭증, 경기 침체, 취업난 등 내수 경기가 위축돼 있기 때문에 줄이기 쉽지 않은 가계 통신비는 분명 적지 않은 부담이다.
 
이에 어느 때부터인가 각종 선거철만 되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공약이 ‘가계 통신비 인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도는 공염불에 그친 것이 사실이다.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업적은 지난해 가입비 폐지인데 이마저도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효과는 거의 없다. 수 만원에 달하던 가입비는 꾸준히 인하돼 오다가 지난해 아예 없어졌지만 단통법 이후 번호이동 건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고 단말기를 교체하는 빈도도 크게 줄면서 가입비가 실질적인 가계 통신비 인하에 기여하는 부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가계 통신비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인 통신요금과 단말기 가격을 인하해야 가계 통신비 인하가 이뤄질 수 있는데 단말기 가격은 단통법이 불법 보조금 엄단을 천명하면서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내려가기 힘들다. 이에 남은 것은 통신요금 인하 뿐이지만 이통사들이 사용 요금을 책정하는 것을 일괄적으로 규제하기도 시장경제 논리상 쉽지 않다. 실제로는 천편일률적인 요금이 난무한 상황이라 경쟁의 효과는 별로 체감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통사들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대가를 뚜렷한 명분 없이 정부가 나서서 규제한다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로서 가능한 통신요금 인하 방안은 기본료를 내리는 것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명분상으로도 가능한 일이고 실제 시민단체와 야당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기본료를 손봐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히 있어 왔다. 기본료는 당초 통신사의 초기 설비투자비를 보전하는 취지로 도입됐다. 현재 망 투자가 대부분 완료된 상황이라 명분상으로 현재 1만원을 훌쩍 넘는 기본료가 유지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지속적인 기본료 인하 및 폐지 움직임에도 최근 이통사들이 기본료를 인하한 것은 수 년 전 1000원을 내린 것이 거의 유일하다.
 
특히 지금은 국회가 기본료 인하를 추진하기에 여러모로 우호적인 상황이다. 우선 단통법 시행 이후 국민들의 통신요금에 대한 민감도가 크게 높아졌는데 단통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치뤄진 총선이 여당의 참패로 마무리됐다. 대선 공약에 이어 총선 공약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가계 통신비 인하로 떠나간 국민들의 마음을 되돌려야 한다는 명분이 제기될 수 있다. 야당에서 꾸준히 기본료 폐지를 주장해 왔고 이미 야당 의원들이 기본료 폐지 법안까지도 발의했지만 향후 신규 투자도 해야 하는 이통사들 입장에서 기본료가 아예 폐지될 경우 타격이 막대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폐지까지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절반 가량의 인하는 충분히 추진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 일부 여당의원들도 통신비 인하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통사들은 마침 지난해 LTE 망 투자를 끝냈고 단통법 이후 마케팅비도 크게 줄었다. 이런데도 이익들이 국민들에게 되돌려지기는커녕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할인제도만 출시되고 있다. 기본료가 인하되면 타격은 어느 정도 있겠지만 한 달에 1분만 통화해도 명분이 없는 돈을 계속해서 걷는 것이 더 우스꽝스러운 일 아닌가. 통신사들이 기본료로 올리는 수익은 각각 수 조원에 이른다. 이런데도 최근 이통사들이 혜택을 돌려줄 생각을 하기는커녕 직원들의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고 하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타격이 크다고 호소하는 이통사들에게 묻고 싶다. 그 타격을 왜 국민들이 감당해야 하는지. 지금도 데이터 정액제라는 명목으로 남는 데이터를 제대로 이월도 해 주지 않는 이통사가 대부분이고 단통법 아래 이통사들만 홀로 이득을 챙기고 있는데 명분도 없는 불로소득을 계속 걷겠다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 1만원에 달하는 기본료가 폐지되면 이통사들의 매출이 7조원이나 줄어든다고 하는데 이는 매년 우리가 이통사들에 7조원을 지원해주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언제까지 이통사들 좋은 일만 해야 하나 싶다.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가계 통신비 인하가 오는 20대 국회에서 제대로 다뤄지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지 오늘도 또 한 번 속아본다는 심정으로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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