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빼돌리기 등 산적한 문제가 해소돼야

‘친일파’ 인사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기 위한 범정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18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충무로 극동빌딩 6층에서 현판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대통령 직속 4년 한시기구(2년 연장가능)인 재산조사위는 친일반민족 행위자를 선정, 재산을 조사하고 국가 귀속 여부를 결정하며 일본인 명의로 남아있는 토지 조사와 정리 등을 담당한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조사위)’가 친일파 재산 환수를 위한 조사에 본격 돌입하는 것은 소위 반민특위 해산으로 청산되지 못했던 민족사적 왜곡현상을 57년 만에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긴다는 의미를 갖는다. 조사위는 특정한 재산이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돼 친일파 후손이 여전히 보유 중인지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면서 매국노 재산임이 확인되면 소유권 이전 등기 등을 통해 해당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는 역할을 맡는다. 조사위는 거액의 재산 문제를 다루는 만큼 향후 활동 과정에서 친일파 후손들의 소송 제기, 브로커들의 활개,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빼돌리기 등 각종 난관이 예상된다. ◆조사위의 구성 조사위 위원장에는 김창국 전 국가인권위원장, 상임위원은 장완익 변호사와 이준식 성균관대 교수, 위원으로는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과 이윤갑 계명대 교수, 하원호 성균관대 교수, 이지원 대림대 교수, 박영립 변호사, 양태훈 변호사가 각각 지난달 말부터 임명 예비활동을 벌여왔다. 또 검사 3명을 포함한 법무부, 경찰청, 행정자치부, 감사원, 산림청, 국세청 등 11개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 53명과 자체적으로 채용한 51명이 조사업무 등을 맡는다. 친일반민족 행위자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을사조약ㆍ한일합병조약 등 관여자,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 일본 제국의회의 귀족의원이나 중의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여자, 독립운동가를 살상하는 등 친일의 정도가 중대하다고 위원회가 결정한 자이다. 조사위가 조사할 친일재산의 범위는 러일전쟁 시작(1904년)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ㆍ증여받은 재산 등이다. 그러나 친일재산이라도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주고 취득한 경우에 대해서는 제외를 하기로 했다. 조사위는 직권조사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법원의 의뢰에 따라 조사를 개시하고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친일재산의 국가귀속 여부를 결정하며 이에 불복한 당사자는 이의신청,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조사위는 을사오적과 정미칠적 등 친일파 400여명의 후손이 보유한 재산을 국고환수 우선 대상으로 정하고 직권조사에 들어가며 을사오적 이완용, 친일파 이재극과 민영휘의 후손이 국가상대 소송에서 획득한 재산에 대해 이미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다. 국가에 귀속된 친일재산은 독립유공자 처우개선 등을 위한 용도로 우선 사용된다. ◆친일파 400여명 재산 우선 조사 18일 정식으로 출범한 조사위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1904년부터 1945년 사이 취득한 재산을 우선 조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조사위는 을사오적과 정미칠적 등 친일파임이 분명한 400여명의 재산을 먼저 조사를 시작한다. 또한 법원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친일 재산으로 의심된다며 조사를 의뢰해 온 사건 등으로 조사대상 폭을 넓히면서 국고환수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조사위는 가장 먼저 직권조사 대상인 400여명의 재산 관련 자료를 검토한 뒤 환수 대상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되면 ‘조사개시’ 결정을 내리고 본격적인 조사를 벌인다. 지자체 등 외부에서 의뢰한 사건은 사전조사 결과 해당 토지가 친일행위 대가로 취득됐다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을 경우 조사개시 결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조사에 들어가게 된다. 조사에 착수하면 토지를 소유한 당사자에게 관련사실을 통보한 뒤 토지대장과 그 토지에 대해 다루고 있는 서류 등을 검토하고 현장 조사를 벌인 뒤 당사자의 진술도 참고하면서 사실관계를 파악한다. 조사결과 친일행위자가 반민족 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 맞고 그 후손이 보유하고 있을 경우에는 9명의 위원회는 과반수 출석, 다수결 방식으로 ‘국고귀속’ 결정을 내리게 된다. 만약 문제의 토지가 친일파의 재산이 아니었거나 친일파 재산이 맞더라도 제3자가 아무런 사정도 모른 채 선의 취득한 점 등이 밝혀지면 위원회는 ‘기각’ 결정을 내리고 추가 조사가 필요하면 ‘보류’를 결정한다. 국고귀속이 결정된 토지에 대해 60일 내로 당사자가 이의신청을 하면 조사위는 30일 내에 다시 판단하며 이마저도 불복하는 당사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의신청이 없거나 행정소송 결과 조사위의 승소가 확정된 토지는 재경부에 관련사실을 통보한 뒤 국가 소유로 등기를 이전하는 등 환수 절차를 밟는다. ◆행정소송 남발, 브로커 사기 등 우려 조사위는 조사 대상 토지가 거액의 재산에 해당하는 만큼 국고 환수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친일행위자 후손들이 행정소송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대응책 마련에 애쓰고 있다. 매번 결정 때마다 불복 소송이 제기되면 다른 사건 조사에 쏟아야 할 역량이 소송으로 소진되는 등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사위는 사무국장 직속으로 검사 3명과 공채 변호사들로 법무담당관실을 구성하고 친일파 후손들에 대한 행정소송에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조사 중인 토지와 관련해 이권을 챙겨주겠다거나 국고 환수 결정을 막아주겠다는 주장을 하는 브로커 내지 사기범이 등장하거나 조사관 사칭범죄가 나올 수 있다는 점도 조사위로서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부분이다. 조사 결과 친일 재산이 맞지만 이미 제3자에게 처분돼 국고로 환수될 수 없는 토지가 매우 많을 경우, 조사위 활동에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벌써 제기되고 있다.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빼돌리기 못 막나 친일재산조사위는 지난달 24 일 이완용, 민영휘, 이재극 후손들이 국가 상대 소송을 통해 찾 아간 재산 4건에 대해 첫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어 법무부 는 이들 4건에 대해 법원에 토지처분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 씨 등의 후손들이 재산 환수에 대비, 타인에게 재산을 팔아버리 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나머지 400여명의 환수 대상자의 경우 제3자에게 토지 등 재산을 매각했을 때 환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조사위 관계자 는 “조사 개시 결정 이후에는 곧바로 토지처분금지 가처분신청 등을 통해 환수 회피를 방지할 것”이라며 “조사개시 결정 이전 에라도 제3자에게 매각했을 경우, 부당이익 반환소송을 통해 환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당초 친일재산을 미리 팔아치우는 행위에 대해 ‘강제 집행 면탈’ 혐의로 형사처벌 방안도 검토했지만, 환수조치를 정 부의 ‘강제집행’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에 대해 논란이 제기돼 보류 상태다. 더구나 강제집행 면탈죄의 경우 형량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해 처벌을 감수하고도 재산을 빼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토지 자산 이외에는 사실상 환수 조치가 불가능하지만 해방 이후 61년간 친일파 재산 중 토지로 남아있는 게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조사위 관계자는 “예컨대 친일을 통해 얻은 재산이 회사 설립 등으로 이어졌어도 회사 전체를 친일 결과물로 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조사위의 재산 환수 조치가 본격화될 경우, 이에 불복 하는 민사 및 행정 소송대란이나 특별법 위헌 논란도 예상된다. 조사위 활동시한이 4년으로 묶여 있는 점(2년 연장 가능)도 방대한 규모의 재산 조사 및 환수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환수 대상 재산 얼마나 되나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완용 등 주요 친일파 11명이 일제시대 경기도에서만 약 440만평의 토지를 보유했으며 현 시가로 수십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 미래정책연구원 홍경선 연구원은 전국적으로 친일파 31명의 보유 토지가 1억3400만평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어 이 경우 현 시가는 수백조원대에 달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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