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공약’보단 ‘흠집 내기’ 집중…‘정치 염증’에 부동층 늘까

▲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경합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구 후보끼리는 물론 지원 유세에 나선 당 대표들까지 네거티브 공세에 집중하면서 선거판이 혼탁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선거판은 도리어 경쟁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로 점차 혼탁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이는 매 선거 때마다 대체로 반복되는 광경이긴 하지만 이번 총선이 선거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합 지역이 많다는 점도 상호 비방전이 나올 정도로 선거 열기가 과열되는 데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선거철 단골 소재인 색깔론과 같은 이념 논쟁부터 상대방 재산에 대한 문제제기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데 예전 한 때 매니페스토 운동이 화두가 되며 공약 중심의 선거 문화를 정착하려 했던 모습과 달리 이번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인신공격과 같은 난타전이 이어지고 있어 예년보다 포지티브보다 네거티브가 이번 선거운동의 주류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이렇듯 네거티브가 잦다보니 네거티브가 아님에도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무조건 상대의 네거티브 공세라며 아전인수식으로 차단하고 나서는 경우도 있을 정돈데 이런 점에서 20대 총선은 역대 최악이라던 19대 국회 못지않은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그 시작부터 유권자들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 與野, 자기 공약보다 상대 흠집 진위 공방에 매진
 
지난달 31일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이래 가장 먼저 불거진 논란은 경기 수원무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후보의 쌀 포대 배포 의혹이다.
 
수원무는 이번 총선 전 선거구 조정으로 수원 지역 의석이 5석으로 늘면서 수원을에 수원정의 일부가 합쳐져 새로이 생긴 지역구로 3선에 도전하는 새누리당 정미경 후보와 노무현 정부 시기 경제·교육부총리를 지냈으며 3선 의원 경력이 있는 김진표 후보 간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는 지역구다.
 
그런 만큼 초반부터 선거판이 과열되는 양상을 띠었는데 김 후보의 쌀 포대 배포 논란은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논란의 핵심은 김 후보가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지난 2월 13일 경기 이천 설봉산에서 지역구 주민인 태장동 산악회원 30여명과 만난 가운데 자신과 동행한 조병돈 이천시장(더민주 소속)이 5kg짜리 지역 특산미를 한 포씩 나눠주자 해당 주민들을 향해 “우리 태장동 주민들을 위해 도울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겠다”라고 발언한 것인데, 논란이 일자 김 후보 측은 “덕담 수준”이라고 “우리 당 법률지원단 소속 선거법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은 결과 출마나 지지 호소가 없으므로 선거법 위반 소지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지난 1일 수원 지역 후보 5명이 함께 성명을 내고 김 후보의 대국민 사과와 후보직 자진사퇴를 촉구하면서 “더민주 소속 이천시장이 김 후보가 아니면 왜 일요일날 생판모르는 수원시민들 산악회까지 찾아와 쌀을 돌리겠냐”고 일침을 가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같은 날 김무성 대표까지 직접 나서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70년대 고무신 돌리듯 쌀을 돌린단 말인가”라고 지원사격에 나서면서 논란은 한층 확산됐는데 김 후보 측에선 조병돈 이천시장이 이천쌀 홍보차원에서 5kg 쌀을 정식 회계처리한 뒤 나눠 준 것이어서 특산물 홍보행위일 뿐이라고 반박했으며 더민주도 강희용 부대변인을 통해 “새누리당의 열세 지역으로 분류된 수도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더민주 후보를 일방적으로 깎아내리거나 사실을 부풀려 혼탁선거를 주도하고 있다. 네거티브 막말 지원유세를 중단하라”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5일 김 후보를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수원지방검찰청에 고발하면서 사태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 후보가 쌀 포대 논란에 휩싸인 지난 1일 국민의당도 권은희 의원의 SNS상에 ‘박근혜 잡을 저격수, 권은희지 말입니다. 다음은 국보위 너다’라는 내용의 포스터를 올려 구설수에 올랐는데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에 총구를 겨눈 듯한 이 포스터에 “금도를 벗어났다”며 “책임지고 권 후보는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 확산을 경계한 국민의당은 4일 안철수 대표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해당 포스터는 자원봉사자가 SNS에 올린 것이라고 해명하는 한편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려 끼쳐 죄송하다”고 직접 사과함으로써 어느 정도 정리되는 듯 했으나 불과 하루만에 안 대표의 해명과 달리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권 후보 캠프 홍보 담당자가 올린 것으로 드러나 거짓 해명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에 호남 지역을 두고 국민의당과 일대 결전을 벌이는 더민주까지 권 후보가 선거운동용 명함에 ‘하남산단 혁신산단 사업 2994억원 예산 확보’라고 허위 사실을 기재한 뒤 다수의 유권자에 배포했다며 8일 광주시 선관위에 고발하는 등 서로 물고 물리는 고발이 일어났다.
 
▲ 용인정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후보는 예기치 않게‘동성애·포르노 합법화 논란’에 휩싸여 진땀을 흘리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이밖에도 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받은 논란 중 하나인 ‘동성애·포르노 합법화 논란’은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의 영입 인사 1호로서 용인정에 출마해 순항하던 표창원 후보를 둘러싸고 벌어졌는데 이 지역 역시 새누리당이 접전을 벌이고 있는 곳으로 표 후보가 정치 입문 전 기독교에 대해 쏟아냈던 비판적 발언과 최근의 동성애 합법화 지지 발언 등이 빌미가 되어 새누리당 지지자들과 기독교도들을 중심으로 한바탕 들끓어 올랐다.
 
새누리당의 이 같은 압박에 직면한 표 후보는 6일 “인신공격이나 비방 등 네거티브 없이 오직 정책 공약과 희망과 신뢰를 드리는 긍정적 선거운동을 펼쳐나가겠다”며 애써 무시했지만 여론이 점점 심상치 않자 하루 뒤인 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성폭력 범죄의 예방 및 처벌, 피해자 보호를 위해 일해 온 사람으로서 이 논란이 무척 당황스럽다”면서 “우려와 불안을 느끼셨을 부모님들과 종교인들께는 깊이 사과드린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계속되자 표 후보는 11일 ‘포르노 합법화 찬성’과 ‘동성애 찬성’ 논란에 대해 “앞뒤 맥락을 잘라 왜곡한 정치 공격”이라고 정면으로 맞받아치면서 ‘동성애’와 관련, “동성애가 이 사회에 확산되는 건 저도 반대한다”면서도 “성 소수자들을 사회적 약자로 보고 그들에 대한 공격과 혐오는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아울러 ‘포르노 합법화’ 발언 역시 “진위가 왜곡됐다”며 “학부모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청소년에게 포르노가 무분별하게 허용되는 상황이 근절된다는 전제, 특히 포르노에 거부감이 강한 종교계의 합의와 동의가 전제된다면 성에 대한 담론을 개방화해서 포르노 양성화 논의가 시작돼도 좋겠다는 맥락의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그간 방송활동 등을 통해 이미지 관리에 어느 정도 성공했던 표 후보가 수년 전 발언에 홍역을 치르며 제동이 걸리는 등 선거판 공방은 점차 격해지고 있다.
 
◆ 네거티브, 후보 차원 넘어 당 대표까지 가세
 
이런 경향은 비단 개별 후보 간 신경전에 그치는 게 아니라 후보들 지원 유세를 다니는 각 당 대표들 사이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야권 표심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더민주 김종인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격한 설전을 벌여가며 이를 증명하고 있다.
 
호남에서 세 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는 안 대표는 지난 6일 김종인 대표가 삼성미래차 산업을 광주에 유치하겠다고 승부수를 띄우자 이에 대해 “정치가 시키면 기업이 무조건 따라할 거라고 생각하는 5공식 발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감정이 격해진 김 대표는 이런 안 대표에 대해 “그 사람은 정상적인 사고한다고 생각을 안 한다”며 맹비난했다.
 
양측 갈등의 간극이 깊어져 가는 가운데 11일에 이르면 김 대표는 대국민성명에서 “가짜 야당이 아닌 진짜 야당 더민주를 지지해달라”고 노골적으로 국민의당을 ‘가짜 야당’으로 지칭해 국민의당으로부터 크나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렇게 야권 대표들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은 10일 안형환 중앙선대위 대변인이 개최한 당사 브리핑에서 더민주 김 대표를 겨냥해 “중앙선관위 재산신고에 따르면 김 대표는 금 8.2kg을 갖고 있고, 신고액만 3억 2천만원”이라며 “서민은 상상할 수 없는 양의 금을 가진 것이 김 대표의 경제민주화인가”라고 꼬집었다.
 
예상치 못한 일격을 받은 더민주는 즉각 반박에 나섰는데 김성수 대변인은“모든 재산을 투명하게 신고한 내역을 놓고 선거 막판에 의혹이 있는 것처럼 문제제기하는 저의가 아주 치졸하다”며 “김무성 대표의 저질 막말 공세가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처럼 재산 내역을 문제 삼으며 논란이 일어난 건 지역구 후보 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는 더민주 김부겸 후보를 겨냥해 “김 후보가 12세에 경북 영천 화남면에 2만4000여㎡의 땅을 샀는데 자금 출처를 밝히라”면서 “이 땅 가운데 현재도 소유 중인 임야 390㎡는 선관위에 재산등록도 안 돼 있다”고 주장하며 문제 삼은 바 있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도 대표적인 네거티브 공세 중 하나인 해묵은 ‘색깔론’도 어김없이 등장했는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10일 서울 강동구 강동우체국 앞에서 열린 새누리당 신동우 후보 유세 도중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가 울산에 가서 그 지역 2명의 더민주 후보를 사퇴시켜 통진당 출신이 이번에 출마했다”며 “또 문재인이 통진당 종북세력과 손잡아 연대했다”고 비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김 대표는 문 전 대표를 가리켜 “종북세력 진출한 것에 사과도 안 하고 또 연대해서 못된 짓을 하고 있다”며 “더민주는 통진당과 연대해 한국 국회에 종북세력 10명 이상을 잠입하게 만든 당”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는데 이는 최근의 대북관계 등 안보상황을 내세워 새누리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굳히려는 의도에서 나온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에 더민주는 “아무리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선거판이지만 집권여당 대표에 유력 대선주자라는 분이 저질 선거판을 앞장서 주도한다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라며 “도저히 집권여당 대표의 언행이라고 믿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맞받았다.
 
그러면서도 더민주 역시 최근 발생한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 관련해 이에 대한 ‘긴급 발표’를 청와대가 지시했다는 일각의 의혹 제기를 놓고 “과거 보수정권이 선거 때마다 악용했던 북풍을 또 한 번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라며 확인되지 않은 의혹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여 여야가 한 치도 다를 것 없이 네거티브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미 치러진 사전투표율에 비쳐 볼 때 이번 총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예전과 달리 상당하다는 점이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치권은 새로운 모습보다는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진흙탕 싸움’에 집중하는 실망스런 모습만 보여줘 이 역시 투표율에 또 다른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