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20대 총선 첫 호남 유세서 민심도 ‘환대-비판’ 극명하게 갈려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8일 첫 호남 지원 유세에 나선 가운데 이날 오전 방문한 5.18민주묘지에서 방명록를 쓰기 전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장고 끝에 호남행에 나서기로 결단을 내린 가운데 ‘대선 불출마’ 가능성까지 열어둬 이 승부수가 총선 판도에 어떤 변화를 미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문 전 대표의 호남행은 그동안 호남 내 ‘반문 정서’로 인해 그 자체로 논란이 된데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겠다”면서도 문 전 대표에 대한 호남 민심이 좋지 않다고 덧붙여 사실상 만류까지 해왔던 만큼 단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졌으나 문 전 대표는 끝내 지난 7일 호남 지원 유세에 나서겠다며 정공법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8일부터 9일까지 1박 2일 간 이어갈 호남 유세를 위해 문 전 대표는 이날 오전 일찍 첫 방문지인 광주로 향했는데, 호남 내에서도 광주는 국민의당 돌풍의 중심지로 정당 지지도부터 지역구 판세까지 국민의당에 유리한 상황이어서 첫 방문지로 현재 더민주에 가장 불리한 이 곳을 택했다는 점 역시 상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문 전 대표의 호남 행보가 총선 막판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김홍걸 “文 호남행, 지금이라도 잘한 결정”
 
문 전 대표가 호남행을 결정한 것을 두고 김대중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더민주 국민통합위원장은 8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이라도 결정한 것은 잘한 것”이라며 “그동안 당이 혼란스럽고 무기력해보였던 부분, 탈당 사태를 잘 막지 못한 것 등에 대해 진솔한 사과를 하고 정권교체를 위해 쇄신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한다면 좋은 반응이 있을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김 위원장은 문 전 대표의 호남 방문에 대한 반대 목소리에 대해서도 “그렇게 적극 반대하는 사람들은 별로 못 봤다”며 “시민사회 원로들 등은 ‘더 빨리 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오기로 결정한 것은 잘한 일’이란 의견”이라고 말해 문 전 대표의 호남행에 시큰둥한 김 대표와는 온도차를 보였다.
 
또 그는 현재 호남에서 선전하고 있는 국민의당을 향해서도 “벌써 호남을 석권한 듯 교만한 모습을 보이는 건 유권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라며 “몇 석을 할 수 있다고 함부로 말하는 건 건방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처럼 문 전 대표의 결정에 호의적 태도를 보인 김 위원장은 이날 문 전 대표의 호남행에도 동행했는데 광주에 도착해 첫 일정으로 치러진 5.18민주묘지 참배 자리에서도 문 전 대표와 나란히 나서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호남 출신 대통령인 김 전 대통령의 친자인 김 위원장과 친노 운동권 세력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문 전 대표가 각각 호남과 운동권을 대표해 더민주에 돌아선 호남 민심을 향해 읍소하는 장면을 연출한 셈인데, 그간 충돌 끝에 분당사태까지 불러온 호남과 친노라는 더민주 내 양대 축이 화해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호남 유권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도에서 굳이 두 사람이 함께 참배한 것으로 관측된다.
 
◆ 문재인 “호남지지 거두면 차기 대선 불출마”
 
문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광주가 제게 보내줬던 과분한 지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며 “그 지지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다. 광주시민들이 제게 실망하고 질책하시는 것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선 패배로 실망을 드렸고 이후에도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정권교체의 희망도 안겨드리지 못했다. 최근엔 야권이 뭉쳐 단합해도 모자랄 판에 당이 분열되고 총선에서도 단일화를 못 이루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거듭 반성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그동안 광주를 실망시킨 짐은 제가 다 지겠다. 더민주와 더민주가 낸 후보들에게 짐을 지워선 안 된다”며 “그간 실망도 많이 드렸지만 그래도 새누리당에 맞서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정당은 더민주밖에 없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이는 마치 대구에서 고전하고 있는 새누리당 진박 후보들을 위해 지원 유세에 나선 최경환 의원이 “후보들이 마음에 안 들어도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며 “대구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와 성원만이 박 대통령을 지킬 수 있다”고 읍소한 것과 유사한 전략을 내세웠다고 할 수 있다.
 
‘정권교체’ 등을 명분삼아 감정에 호소하던 문 전 대표는 “정치권이 단일화를 못하면 광주 시민의 힘으로 단일화를 시켜주셔야 한다”며 전략투표까지 요청했는데, 정권교체가 가능한 정당은 더민주 뿐이라고 주장한 만큼 전략 투표를 하게 될 경우 후보 경쟁력을 떠나 국민의당이 아닌 더민주에 표를 몰아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문 전 대표는 이후 이동한 광주 충장로에서는 미리 준비한 ‘광주 시민들에 드리는 글’을 발표했는데 외부 인사를 적극 영입·공천한 부분 등을 내세워 “호남 기득권 정치인의 물갈이를 바라는 호남 민심에 우리 당은 호응했다”며 “저에 대한 섭섭함 때문에 유능한 인재들을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특히 그는 “저에 대한 여러분의 실망과 섭섭함에도 불구하고, 더민주에 대한 여러분의 애정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그 애정에도 불구하고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저는 미련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라고 대선 불출마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다만 문 전 대표는 “진정한 호남의 뜻이라면 저에 대한 심판조차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면서도 “그러나 제게 덧씌워진 ‘호남홀대’ ‘호남차별’이란 오해는 부디 거두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호남과 호남 바깥의 민주화 세력을 이간해 호남을 다시 고립화시키려는 사람들의 거짓말”이라며 “호남과 호남 바깥의 민주화 세력이 다시 굳건하게 손을 잡을 때만이 세 번째 민주 정부를 만들어낼 수 있다. 호남만으로도 안 되고, 친노만으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문 전 대표는 총선 이후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도 “앞으로 당권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더 이상 국회의원도 아닌 만큼,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정권교체의 역량을 키워날갈 것”이라고 밝혀 대선 준비에만 매진하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 文 방문에도 갈라진 호남 민심, 곳곳서 표출
 
지난해 11월 이후 142일만에 이 같은 문 전 대표를 접한 호남 민심은 근래 국민의당의 약진 때문인지 분명하게 둘로 나뉘어졌다.
 
문 전 대표가 지나가는 곳은 대체로 지지자들로 둘러싸여 환호 일색이었지만 이들을 바라보며 간간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심지어 욕설까지 날리는 사람들도 나와 호남 민심이 예전과 같진 않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
 
이날 오후 양동시장에서 문 전 대표를 만난 한 40대 여성 유권자는 “힘내주십쇼. 진짜 시민들이 다 힘을 실어줘야 돼”라며 살갑게 대했고, 광주대교 위쪽의 팔각정으로 이동 중 문 전 대표의 지지를 부탁받은 50대 남성이 “그럽시다. 더민주가 살아야 호남이 살지”라고 호응하는 등 반기는 모습도 적지 않았다.
 
특히 광주공원에서는 50여명의 노인들이 문 전 대표를 연호하며 공원 입구에서부터 크게 환대했고, 앞서 청년들과 만나기 위해 문 전 대표가 방문한 전남대에선 사방에서 ‘대통령 문재인’을 외치는 등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광주천 다리를 지나던 중엔 한 중년 여성이 “여기 뭐하러 와. 무슨 염치로 와”라고 일갈했고, 전남대에서는 ‘대통령 문재인’이란 소리가 울려 퍼지자 한 대학생이 “대통령 끝난지가 언젠데 문빠들이 XX”라고 욕설을 던지기도 했다.
 
또 수십명의 노인들이 문 전 대표를 환영했던 광주공원에서도 일부 노인들이 문 전 대표를 냉대하며 “사과를 하러 왔으면 무릎 꿇고 사과를 해야지”라고 비꼬자 다른 노인이 “그런 말은 천정배 박주선한테나 가서 하라”며 언쟁이 벌어지는 등 분열된 호남 민심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 안철수 대표는 8일 오전 대전 유세를 위해 서울역을 찾은 자리에서 역내 사전투표장을 먼저 방문해 시민들의 투표를 독려한 뒤 기자들을 만나 “문 전 대표의 호남행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사전투표 독려는 많은 사람들이 할수록 좋은 일”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한편 문 전 대표의 호남행이 현재 국민의당에 유리한 총선 판세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가장 촉각을 곤두세울 안철수 대표는 이날 오전 대전 유세를 위해 서울역을 찾은 자리에서 역내 사전투표장을 먼저 방문해 시민들의 투표를 독려한 뒤 기자들을 만나 “문 전 대표의 호남행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사전투표 독려는 많은 사람들이 할수록 좋은 일”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다소 엉뚱한 대답으로 비쳐질 이 답변은 자신이 어떻게 맞대응하든 문 전 대표의 호남행에 대한 여론의 관심만 집중될 뿐이라 판단한 안 대표가 호남에서의 파장을 의식해 그 의미를 축소할 의도로 문 전 대표의 호남행은 그저 이날 시작된 사전투표 독려 목적이라고 답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주요 야권 정당끼리 호남이라는 핵심 지역을 두고 일대 혈투를 벌이면서 양측은 단일화는커녕 갈등만 점차 깊어지고 있는데 이런 경향이 총선 이후에도 큰 후유증으로 남게 된다면 향후 대선 정국 역시 야권 후보 간 표심 가르기로 흐를 가능성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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