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이상 격론 끝에 친박계와 ‘공천 3· 무공천 3’ 타협 성사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5일 부산에서 급거 상경해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최고위에서 의결이 보류된 5곳의 공천장에 당 대표 직인을 찍지 않고 무공천 지역으로 남겨두겠다며 지난 24일 이른바 ‘옥새 파동’을 일으켰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대표직 권한 대행’을 통해 의결 처리하겠다는 친박계의 압박에 ‘30시간의 법칙’을 결국 깨지 못한 채 21시간 만인 25일 오전 11시 30분경 최고위를 개최했다.
 
4시간이 넘는 격론을 벌인 끝에 김 대표는 종전 단 한 곳도 공천하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나 이날 최고위에서 논의한 대구 4곳과 서울 2곳의 6개 대상 지역 중 대구 동갑과 달성군, 수성을을 공천 의결키로 하고 대구 동을, 은평을, 송파을만 무공천하기로 절충했다.
 
6곳 중 정확히 절반은 공천하고 절반은 무공천하겠다는 타협안에 합의한 것인데 이로써 탈당 거물들은 건진 김 대표는 어느 정도 체면치레는 하게 됐고 친박계 역시 핵심 인물들은 어떻게든 공천했다는 선에서 절반의 성과는 거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이날 긴급 최고위 결과는 양측의 항구적 화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총선 준비를 위해 부득이 일시적 공존을 택한 것이란 점에서 향후 또 다른 사안으로 갈등이 불거질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 최고위 개최 거부하던 김무성…돌연 개최, 왜?

 
당초 총선 후보 등록이 마무리되는 25일까지 최고위 개최 요구에 절대 응하지 않겠다며 24일 부산으로 내려갔던 김 대표는 불과 하루만인 이날 오전 비행기 편으로 상경한 것은 물론 친박계에서 요구한 긴급 최고위도 참석키로 결정했다.
 
이에 김 대표가 ‘30시간 법칙’이란 별명처럼 또 다시 백기 투항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지만 이번만은 ‘유승민 문제’ 등이 얽혀 총선 정국에 미칠 여파가 그 어느 것보다 큰 사안인데다 스스로도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만큼 김 대표가 과거처럼 순순히 친박계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또 김 대표가 기존 입장대로 아예 회의에 불응할 경우 이를 구실로 친박계에서 언론을 통해 대표직 권한 대행을 할 상황으로 몰아 친박계 최고위원끼리 모여 공천 의결을 진행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앉아서 당하지 않겠다는 뜻을 굳힌 김 대표가 차라리 최고위를 열고 직접 맞서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함에 따라 이날 비공개로 열린 긴급 최고위는 원유철, 서청원, 이인제, 김태호 등 친박계 의원들과 김 대표가 한바탕 일전을 벌이는 구도로 전개됐는데 도중에 회의가 한 차례 정회될 정도로 치열하게 진행됐다.
 
4시간 30분에 걸친 논의 끝에 김 대표는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과 이재오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입각해 현역 의원이 없는 서울 송파을 등을 무공천 지역으로 확정했다.
 
반면 친박 측은 유승민계 류성걸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갑과 친이계 3선인 주호영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을, 지난 1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종진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 등 대구지역 3곳을 공천 의결하는 데 성공했다.
 
◆ 평행선 달린 친박계와 김무성, 접점 찾은 배경은?

 
김 대표는 서울 2곳과 대구 1곳을, 친박계는 대구 3곳을 가져간 셈인데 친박계에선 수도권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퇴임 후를 위해서라도 확실한 지지 기반을 구축해야 될 대구의 중요성이 더 컸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의중이 반영된 듯 친박계는 이날 박근혜 정부에서 행자부장관을 지냈을 만큼 핵심 ‘진박’ 후보인 정종섭 전 장관을 대구 동갑으로 공천 의결시켰고,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추경호 전 실장을 박근혜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대구 달성군의 후보로 공천 확정했다.
 
또 본래 친이계 출신임에도 지난해 3월 친박 핵심인 윤상현 의원, 김재원 의원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정무특보 3인방 중 하나로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의원직 겸직 논란’에 휩싸이자 2달 만에 국회 예결위원장 도전을 이유로 정무특보직을 사임해 청와대에 밉보였던 3선의 주호영 의원이 자리 잡은 대구 수성을까지 이날 오전 급히 공관위에서 공천한 이인선 후보를 우선추천 후보로 끝내 확정·의결했다.
 
이에 반해 김 대표가 ‘무공천 방침’을 관철한 지역은 공천 파동의 핵심으로 꼽히는 유승민 의원의 대구 동구을은 물론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과 당내 경선여론조사에서 1위를 했음에도 친박 후보에 밀려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한 김영순 전 송파구청장의 출마지인 서울 송파을까지 3곳으로 꼽혔다.
 
이들 지역에 대해 친박계가 포기한 이유로는 당선 가능성과 친박계 핵심인사에 포함되는지를 우선 고려해 결정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는데 먼저 서울 송파을과 대구 동구을의 경우 친박계인 유영하 후보나 이재만 후보를 내보낸다고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듯 이들이 각각 김영순 후보나 유승민 후보를 이기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에서 이들보다는 차라리 당선 가능성이 더 높고 내각 출신의 정종섭, 추경호 등 친박 후보를 우선 구제하자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서울 은평을은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유재길 후보가 현 지역구 의원인 이재오 의원과 박빙을 이루며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앞서기도 하는 등 당선 가능성이 높아 당초 친박계의 의도대로 이 의원의 당선을 제지할 수는 있겠지만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의 친동생으로 친박 핵심 인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차라리 다른 친박 후보를 구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사료된다.
 
이렇게 양측이 이해관계에 맞춰 전략적 선택을 한 결과, 김 대표는 친이계 대표인 이재오 의원과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에 대한 새누리당 무공천 결정으로 이들의 향후 당선에 일조함으로써 비박계에 위신을 세울 수 있게 됐고, 친박계는 반드시 구해야 하는 진박 후보들만은 어떻게든 ‘장악’할 필요성이 있는 대구 지역에 공천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타협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최고위 공천 타협안’ 두고 상반된 평가
 
▲ 유승민 의원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재만 예비후보가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를 방문해 잠겨있는 공천관리위원회 출입문을 두드리며 최고위의 무공천 결정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하지만 이 같은 밀실 거래 결과와는 별개로 갑자기 출마 가능성마저 막혀버린 해당 후보들의 반발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도 당내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법률지원단장을 지내고 박 대통령 당선 뒤엔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한 바 있는 친박계 유영하 후보는 억울하지만 승복한다고 밝힌 반면 이재만 후보와 유재길 후보는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재만 후보는 이날 발표된 공천 의결 결과를 접하자마자 새누리당 당사를 급거 방문해 김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들과의 면담을 요구하면서 격분한 심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고 유재길 후보는 한층 더 격앙돼 “(법적 조치를 포함해)가능한 모든 수단을 찾아 최대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입장을 내놨다.
 
또 이번 타협안으로 ‘무공천 칼날’을 겨우 비껴간 정종섭, 추경호 후보 역시 이들과 한 목소리로 김 대표를 비판했는데, 추 후보는 이날 후보자 등록을 위해 대구로 출발하기 직전 기자들과 만나 “어떤 식이든지 국민들께서 준엄한 심판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정 후보 역시 “공당이 집권당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반면 비박계는 김 대표가 주요 비박 인사들 지역은 무공천 방침을 관철하는 데 성공한 것을 두고 어느 정도 괜찮은 결과였다는 반응을 내놨는데 정두언 의원은 “최악의 파국은 피했다”며 대체로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고, 새누리당 서울시당 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은 “김 대표가 홈런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시타 정도는 친 것 같다”며 “적어도 말도 안 되는 ‘유승민 사태’에 당이 한마디도 못하고 이를 방치했다는 그런 여론의 질타는 피할 수 있게 됐다”고 호평했다.
 
한편 이번 새누리당 공천 결과가 비록 공관위의 기존 안에서 김 대표가 걸러낸 보류지역 중에서도 절반의 ‘무공천’만 이뤄내는 데 그치긴 했으나 김 대표가 과거와 다르게 더는 뒤로 물러나기만 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는 데서 리더십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친박계 역시 이번 공천 결과 공관위가 공천한 253개 지역구 중 친박계 75명, 비박계 43명, 중립 성향이 40명으로 친박계를 압도적 다수로 배정하는 데 성공한 것은 물론 김 대표의 ‘옥새 투쟁’에 맞서 친박 핵심 후보만은 구제했다는 점에서 나름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양측이 간신히 타협점을 찾은 것일 뿐 화해를 이룬 것은 결코 아니란 점에서 총선이 끝난 뒤엔 그나마 긴장 속에 유지되던 김 대표와 친박계 간 ‘전략적 공존’관계도 사소한 정치적 사안을 구실삼아서라도 필연적으로 깨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여 향후 당 내홍이 재발될 가능성에 벌써부터 우려의 시선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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