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당의 공천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공정성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토록 당연한 것조차도 매번 총선 때마다 특정 계파 학살이니 사천이니 하는 구설수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잘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발표됐던 이번 공천 결과 역시 그렇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야를 막론하고 명백히 특정 계파에 치우친 결과로 공정성이 의심받거나 공천 탈락 근거가 불명확함에도 제대로 해명하지 않아 신뢰성이 훼손된 것은 물론 논란이 있을 만한 데도 공천 결과를 번복하는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컷오프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단 1명을 컷오프하더라도 계파나 친소 관계가 아닌 의정활동 실적이나 지역구를 위해 내놓은 성과 등 능력 중심의 평가가 이뤄져야 하는데 언론에선 경쟁적으로 어느 당이 더 현역을 공천 탈락시켰는지에 초점을 맞춰 컷오프 비율을 비교하는 보도까지 내보내고 있다.
 
아무리 19대 국회가 법안 발의만 최다일 뿐 가결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해 식물 국회란 불명예를 지게 됐다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만큼 여야 간 합의가 어려운 쟁점 법안이 어느 때보다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법안 처리 수만 놓고 통과된 법안이 극히 적었다고 나무라기 전에 과연 어떤 법안들을 처리시키려고 했는지 내용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보니 법안 처리 수만 마치 실적으로 해석하는 보도가 나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19대 국회의원들은 최대한 물갈이해야 한다는 ‘현역 물갈이’론이 대두됐으며 제대로 된 정치신인을 발굴해 세대교체를 이루려는 의도에서 이뤄진 컷오프가 아니라 컷오프 자체를 혁신으로 규정하고 대안도 없이 ‘칼질’을 하는 웃지 못할 결과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벌써 재적 의원 108명 기준으로 현역 물갈이 비율이 30%를 웃돌고, 안철수 의원 등 비노계 연쇄 탈당 이전 시점인 127석 당시를 기준으로 할 경우 현재까지 52명이 컷오프된 셈이어서 미증유의 40%를 달성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지만 처음에 내세웠던 친노계파 청산이 이뤄진 것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친노 핵심보다는 정세균계 범친노 인사들이나 송호창, 정호준 등 국민의당 인사들과 관계가 있는 의원들이 배제됐고 그나마 친노의 상징으로 컷오프된 인사들조차 친노 진영 내에서 문재인 전 대표마저 존중해야 할 만큼 껄끄러운 다선 중진들이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총선 후 돌아올 문 전 대표의 당내 영향력을 더 확고히 하기 위한 사전조치 아니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더민주는 컷오프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소위 ‘개혁’과 ‘쇄신’의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데에 열중하다보니 이해찬 의원에 대해선 평가기준상 3선 이상 하위 50% 수준에 포함되지 않는데도 예상보다 친노 계파 청산이 미흡하다는 언론보도나 세간의 평가를 의식해 ‘정무적 판단’을 내세워 컷오프하는 등 공천 자체가 공관위의 평가 기준을 근거로 하기보다 현재의 여론 동향에 치중하고 있다는 문제점도 노출했다.
 
아울러 평가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도 지적됐는데 공관위가 그동안의 ‘막말’을 문제 삼아 당 최고위원까지 지냈던 정청래 의원을 공천 탈락시킨 반면 마찬가지로 ‘비노 세작’ 발언으로 징계위에 회부됐던 김경협 의원이나 수차례 막말 논란에 휩싸인 설훈 의원 등은 컷오프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점도 의문을 낳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더민주는 재심 신청 수용 여부를 두고도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를 보여줬는데 3선의 전병헌 의원에 대해선 본인이 아닌 과거 보좌관의 비리로 컷오프한 뒤 재심 요청조차 기각시킨 데 반해 초선인 윤후덕 의원에 대해선 대기업에 자기 딸의 취업을 분명히 청탁한 사실이 있음에도 처벌할 시효가 이미 지나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이유로 구제해주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그나마 이런 저런 불만 속에서도 더민주의 공천 후폭풍 수준이 그저 몇몇 인사의 탈당으로 그쳤던 건 새누리당과 달리 일찌감치 당 주류인 친노와 갈등을 빚었던 비노 핵심 의원들이 국민의당으로 분당해 나간 데다 여권 인사로 비쳐졌던 김종인 대표를 중심으로 지도부가 새로 구성돼 ‘특정 계파 학살’이란 시선은 덜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반해 새누리당은 공관위가 7차례에 걸쳐 발표한 공천 결과를 살펴봤을 때 노골적인 특정 계파 학살이란 색채를 띠고 있어 총선 후보 등록일을 일주일도 안 남긴 현재까지도 공천안을 의결시키지 못한 채 계파 갈등의 정점에 달한 상황이다.
 
흥미로운 점은 비박계에서도 당권에 접근하지 못한 친유승민계나 친이계는 거의 전부 물갈이 대상에 포함된 반면 김 대표 측 인사로 분류된 인물들만은 낙천 칼날을 피해가는 결과를 보여줬다.
 
이렇게 비박계가 밀려난 자리는 여권 우세지역일수록 여지없이 친박계 신인들로 채우거나 단수·우선추천지역으로 꼽아 상향식 공천 원칙을 무색케 했다.
 
그동안 후보 간 경쟁할 수 있는 경선 기회조차 박탈하는 전략공천에 대해선 김무성 대표부터 상향식 공천을 강조하며 분명히 반대 입장을 밝혀왔음에도 본래 여성 의원이 있던 지역은 놔두고 진영 의원의 용산구처럼 남성 의원이 있는 지역을 당선 가능성을 떠나 굳이 여성우선추천지역으로 선정하는 등 명확한 기준 없이 단수추천과 우선추천을 공관위가 남발해 사실상 전략공천을 감행했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15일까지 전국 253개 지역구 중 250개 지역구에 대한 공천 결과를 7차례에 걸쳐 발표했는데 이 중 단수추천지역은 96곳, 우선추천지역은 16곳으로 도합 112곳에 이르러 전체 지역구의 44%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이 같은 ‘단수·우선 추천 남발론’을 증명해보이고 있다.
 
아울러 단수·우선추천을 통해 ‘신인 공천’, ‘현역 물갈이’를 적극 이뤄내겠다고 했으면서도 전체 지역구의 절반 가까이 이르는 단수·우선추천지역에 비해 컷오프된 현역 의원은 정작 새누리당 전체 의원 155명(18일 기준) 중 13% 수준인 20명(경선 탈락자 6명 제외)에 그치고 있어 ‘현역 물갈이’도 표면적 명분이었을 뿐 이번 공천이 그저 특정 계파 인물만 축출해내는 데에 목적이 있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좋지 않은 씨앗을 뿌리면 변변찮고 형편없는 작물만 나오듯 국회의원 후보를 결정하는 공천 과정부터 왜곡된 의도를 가지고 혼탁하게 진행한다면 이런 부조리한 풍조가 계속되는 이상 우리 정치권의 선진화는 요원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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