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결성한 '나는 못난이', '또 만나요'의 "딕훼밀리"

'딕훼밀리'. 신세대들에게는 '완전히 낯설은' 이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 단 한곡만 들어보아도 무릎을 탁-치는 순간이 찾아올 것. 언뜻 '음악'과는 전혀 상관 없어보이는 장소에서도 행사를 끝마치는 그 순간 울려퍼지는,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로 시작하는 '또 만나요'를 부른 이들이 바로 '딕훼밀리'다. 70년대 중반에 등장하여, 첫 앨범에 '나는 못난이', '또 만나요', '작별', '흰구름 먹구름' 등의 대중가요 명곡들을 모두 쏟아버리고, 결국 80년대 초반에 1기 멤버 해체를 겪은 전설적인 밴드 '딕훼밀리'. 벌써 첫 데뷔로부터 30여년이 흘러 모두 대중가수로서의 1기 멤버들은 이미 '정년'을 넘어선 이들이, 그간 2기, 3기에 걸친 멤버 보강을 통해 테너 섹스폰에 이박무, 기타에 이천행, 베이스 방현용, 싱어 황성택, 키보드 최윤주, 드럼 정재형에 이르는 '다세대적 멤버 구성'으로 새로운 '신구의 조화'를 기획하고 있다. 부푼 꿈과 기대를 안은, 아직도 '소년의 눈'을 지닌 이들 대중음악계의 '전설'을 기자가 만나보았다. 먼저 주옥같은 명곡들을 남긴 '전설의 밴드'를 다시 보게 되어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이번 3기 멤버 보강을 통해 재결성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 (이천행) 먼저 요즘에는 음악 풍토가 지나치게 10대 위주로 흐르고 있어, 정작 중·장년층이 즐길 만한 음악 기반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또 날카롭고 계산적인 기계 음악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점차 정감있고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라이브 음악은 쇠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런 시기이기에, 우리는 라이브 그룹사운드를 캐치프레이즈로, 새로운 멤버들의 보강을 통해 신구의 조화를 이뤄, 젊은이와 중·장년층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을만한 음악을 해보고자 다시 뭉쳤습니다. '딕훼밀리'는 다소 퇴폐적 성향이 강했던 1970년대 그룹사운드 풍토에서 거의 유일하게 건전한 노랫말과 정감있는 멜로디를 구사해 범대중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당시의 어지러운 정세에 정확히 대치된 이런 긍정적인 방향을 택한 까닭은 무엇이었습니까? - (이천행) 저희가 데뷔하여 인기를 모으던 시기는 유신시절이었죠. 정부시책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암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시기일수록 대중들에게 위안을 주고, 보다 긍정적으로, 진취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음악은 언제나 '재미있는 음악'이었습니다. 이런 부드럽고 정감있는 접근방식이 대중들에게 잘 받아들여져 크게 어필한 것 같습니다. - (이박무) 당시 우리 멤버들 중 '전형적인 그룹사운드' 출신이 없었다는 점도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팀 리더였던 서성원씨는 종교음악가 출신이었고, '나는 못난이'를 작곡한 이요섭씨도 YMCA에서 활동하던 분이었습니다. 건반을 맡았던 문옥씨는 성악을 전공한 친구였고...정말 건전하고 건강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 밖에 없었죠. (웃음) '딕훼밀리'의 1집 <작별/또 만나요> 앨범은 'MBC 인기 가요'에서 4주 연속 1위를 하는 등 어마어마한 대중적 인기를 누렸습니다. 당시 '딕훼밀리'의 극성팬들도 많았을 듯 싶은데, 요즘의 팬덤과 비교하자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이박무) 예전 팬들은 요즘처럼 적극적이지 않고 다소 소극적인 편이었죠. 요즘처럼 기획사나 팬클럽 문화가 체계적으로 정착되어 착착 움직여지는 시기도 아니었고...우리도 사실 나이트클럽이나 방송에서 쏟아져오는 출연요청 때문에 팬들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기억나는 게 있다면, 저희가 어딜 출연하거나, 어디서 잠깐이라도 공연하게 되면, 어디다 알리고 가는 것도 아는 데도 팬들이 귀신같이 알고 찾아와 우리 공연을 보고 가는 겁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밴드 공연 일정을 공개하는 게시판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희한합니다. (웃음) '딕훼밀리'는 수많은 올드 밴드들 중에서 현재 신세대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노래를 만들어 시간과 세대차를 이겨낸 밴드이기도 합니다. 바로 '또 만나요' 이야기인데요, 당시에 이 곡이 이토록 오랜동안 사랑받으리라는 걸 예상하셨습니까? - (이박무) 전혀 못했죠. 당시엔 '나는 못난이'가 가장 대표적인 히트곡이었고...그런데 십수년이 지난 뒤였나, 남대문시장에 옷 사러 한번 들렀더니, 파장할 때 시장 스피커에서 '또 만나요'가 흘러 나오더라구요. '아, 이 노래가 이렇게도 쓰일 수 있구나'하는 걸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좀 지나니 나이트클럽이고 어디고, 파장할 땐 '또 만나요'가 반드시 나오더라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룹 <터보>가 리메이크했다는 얘기도 들었구요. 그 곡 발표할 당시에, 우리가 음악 밖에 모르고, 철없고 순진해서 그랬지, 아마 로열티 같은 거라도 감안해서 계약했더라면 엄청나게 부자됐을 거란 생각은 들었습니다. (웃음) 끝으로, 이번 <딕훼밀리>의 재결성이 현재 활동을 중단하고 있는 여타 올드 밴드들에게 모종의 자극을 줄 수 있을 듯한데,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이천행) 외국같은 경우엔 50줄, 심지어 60줄이 넘어선 가수들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바로 중·장년의 팬층이 확고히 대중문화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죠. 우리같은 경우에는 이런 팬층을 먼저 나서 끌어들이려 하는 입장이지만, 우리가 좋은 반응을 얻어내서 다른 올드 밴드들도 용기를 얻어 다시 활동을 재개했으면 합니다. '올드 밴드' 붐을 한번 일으켜 보는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팬들입니다. 현재 중·장년층은 어찌보면 경제·사회·문화적인 소외계층이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문화의 경우, 향유할 만한 문화 아이템이 전무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우리는 이들 중·장년층에게 다시 즐거움을 안겨주고, 또 올드 밴드와 올드 팬들 모두에게 나이와 관계없이 의욕만 있다면 반드시 자기분야에서 재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취재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사진 임한희 기자 lhh@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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