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진화에도 비박계 반발 속 파장 확산…공관위, 불똥 튈까 ‘전전긍긍’

▲ 지난달 27일 지인과의 통화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 대해 욕설을 퍼부으며 공천 탈락시키겠다고 했다가 막말 파문에 휩싸인 친박계 윤상현 의원이 9일 김무성 대표에게 사과하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하자 발길을 돌리고 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여야를 막론하고 막말로 얼룩졌던 19대 국회가 그 끝을 바라보는 시점에 와서도 막말 논란에 휩싸여 정국을 들끓게 하고 있다.
 
지난해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바 있는 친박계 핵심인사인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지난달 27일 지인과의 통화에서 김무성 대표를 겨냥한 극언을 퍼부은 사실이 8일 한 언론의 녹취록 공개로 확인되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이에 윤 의원은 9일 자신의 지역구에서 즉각 상경해 취중 실언한 것이라고 해명하며 김 대표에게 사과하겠다는 뜻을 피력했지만 비박계는 윤 의원의 발언 중 ‘공천 탈락’을 암시한 점을 문제 삼아 윤 의원과 수신한 자가 누군지 밝히라며 친박계의 공천 학살 의도가 드러났다고 공세를 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김 대표마저 현재로선 윤 의원과 대면할 의사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윤 의원은 친박계의 비호에도 불구하고 궁지에 몰린 분위기다.
 
이번 사태는 그간 김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사이의 갈등을 통해 보여준 새누리당의 공천 전쟁이 정점에 다다른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는데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계파 간 충돌이 본격 표면화된 만큼 자칫 총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윤 의원의 발언이 단순히 대표 비방에 그친 수준이 아니라 민감한 시기에 특정인에 대한 낙천을 거론하고 이를 실현할 일자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그저 실언으로 덮고 가기엔 결코 가볍지 않아 향후 윤 의원에 대한 징계나 거취 문제는 물론 공천 결과에 대한 신뢰도 문제로까지 확대될 것인지도 주요 관심사로 꼽히고 있다.
 
▲ 비박계 이재오 의원은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의원 관련 녹취록 중 ‘비박계를 솎아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윤 의원과 통화한 자가 누군지 밝혀내야 하고, 밝혀지지 않을 경우엔 의총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당장 비박계 이재오 의원은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의원 관련 녹취록 중 ‘비박계를 솎아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꼬집어 “(윤 의원이) 비박계를 솎아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전화한 것이다. 공관위원이거나 공관위에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며 노골적으로 공관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처럼 이번 사태가 공천 신뢰도 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이 공관위원장은 이를 상당히 경계하며 윤 의원 파문조차 공관위가 아닌 윤리위가 다룰 문제로 넘기고 거리를 뒀는데 그간 이 공관위장과도 비박계가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던 만큼 윤 의원으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여권의 공천갈등이 어떤 결말을 맺게 될 것인지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윤상현 ‘자충수’, ‘살생부 파문’이 원인?
 
‘살생부 파문’의 여파가 윤 의원의 ‘막말 파문’이라는 또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며 그동안 입지가 좁아졌던 비박계에 정국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앞서 친박계 핵심인사로부터 김무성 대표가 공천 살생부를 받았다는 논란이 불거졌다가 이를 김 대표에 전해 들었다는 정두언 의원과 김 대표 간 진실공방으로 비화되면서 결국 김 대표가 사과하는 선에서 사태가 매듭지어졌는데, 대신 김 대표는 리더십에 크게 타격을 받으면서 이 비대위원장에게 공천 주도권이 크게 쏠리게 된 바 있다.
 
이렇듯 ‘살생부 파문’은 살생부가 실재했다면 김 대표가 언론 보도와 정 의원과의 공방으로 비록 자신의 리더십에 타격은 입을망정 ‘친박’발 살생부를 무력화시키고 이 위원장에 압박을 주는 육참골단의 전략을 편 셈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위원장을 압박할 목적으로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던 ‘살생부 루머’를 자작했다가 결과적으로 사과한 게 된 거라면 김 대표는 공작 실패로 역풍을 맞게 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자작극 실패’란 후자의 해석을 인정한 것인지 김 대표는 ‘살생부 파문’에 대해 사과했던 지난달 29일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정두언 의원에게 얘기한 건 사실이지만 (친박계로부터) 문건을 받은 것처럼 잘못 알려진 건 전혀 사실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밝혔고, 정 의원도 확인했다”며 ‘살생부’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이번 ‘막말 파문’으로 드러난 막후 상황을 고려할 경우 김 대표가 공식적인 ‘살생부’는 아닐지언정 ‘살생부 같은 내용의 이야기’도 있었다는 등 관련 논란의 모든 부분을 인정한 반면 그 전달 주체가 ‘친박계 인사였다’라는 점에 대해서만 부인함으로써 ‘살생부 파문’에 대한 모든 책임을 김 대표의 자작극으로 규정해 김 대표를 밀어내려는 역공작을 친박계가 펼친 건 아닌지 강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막말 파문에서 과거 ‘살생부 파문’을 굳이 거론하는 이유는 윤 의원이 9일 기자들에게 “제가 그날 취중에 얼마나 격분했나. 있지도 않은 살생부 파문 그걸 제 입장에서, (친박) 핵심인사라는 게 몇 명이겠나. 절대 그런 일 없는데 그게 대문짝만하게 뉴스 보도에 나오는데 여러분들 입장이라면 어떻겠나”라며 스스로 막말의 원인이 ‘살생부 파문’에 있었음을 밝힌 데 있다.
 
‘살생부 파문’에 대한 윤 의원의 이날 언급이 실재하지 않는 살생부와 관련됐다는 억울함에서 나온 진심어린 반응인지 아니면 결과적으로 친박계와 이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준 살생부 파문이 윤 의원 등 친박계가 김 대표를 상대로 펼쳤던 정치공작이었다는 의혹을 차단하기 위한 거짓말인지 아직 확인할 길은 없지만 윤 의원의 통화 녹취록에서 살생부 파문 당시 김 대표와 진실공방을 벌인 정 의원이 분명히 언급됐다는 부분은 눈여겨 볼만하다.
 
윤 의원이 누군가와 김 대표를 겨냥한 ‘막말’ 통화를 했던 지난달 27일 그는 당시 ‘살생부 파문’과 관련해 “(김 대표를) 내일 쳐야 돼! 내일 공략해야 돼”라며 “정두언이하고 이야기할 준비가 돼 있어”라고 정 의원과의 접촉까지 불사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를 증명하듯 정 의원은 9일 “그날(2월 27일 윤 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오긴 했지만 통화는 못했다”며 윤 의원이 정 의원과의 통화를 시도했었다는 사실에 대해선 인정했다.
 
◆ 공천 ‘칼자루’ 쥔 이한구, 친박계와 한통속?
 
또 취중실언이란 윤 의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27일 통화 녹취 내용에 따르면 “내일 쳐야한다”며 정확한 일자까지 암시했는데, 이 역시 다음날인 28일 김 대표와 신경전을 벌여오던 이 위원장이 당사에서 전격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한 공천을 해야 하는 사람이 ‘찌라시 딜리버리’, ‘찌라시 작가’ 비슷하게 의혹 받는 상황을 그대로 놔둘 수 없다. 우린 결코 친박이니 비박이니 구별하며 공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당 공식 기구에서 (살생부 파문을) 철저히 조사하기 바란다”고 정면 돌파에 나섰다는 점에서 이 위원장에게도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 같은 이 위원장의 회견 다음 날인 29일엔 오전 최고위원회의부터 친박계 맏형 서청원 최고위원이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살생부) 파동의 중심에 서 있는 김 대표께서 공개적으로 ‘그런 문건을 받은 일이 없다. 그런 말한 일 없다’고 해놓고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안 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김 대표에 사과를 요구했고 같은 날 친박계 김재원, 이장우 의원 등도 오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원사격을 펼치자 결국 이날 김 대표는 살생부 파문에 대한 사과를 하며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고 이후 정국 주도권은 이 위원장에게로 급격히 기울었다.
 
일례로 살생부 파문 이후인 지난 8일 이 위원장이 당사에서 “우리 당헌에 보면 정치적 소수자, 정치신인을 우대하게 돼 있는데 이미 (경선 비율이) 선정돼있다는 이유로 3대 7 방식을 우대하는 제도가 돼선 안 된다”고 밝히며 ‘현역 물갈이’ 바탕을 마련하려 하자 9일 오전 최고위원회는 비공개 회의를 연 뒤 공관위에 공천 경선 비율 결정권까지 위임하는 등 이 위원장의 권한을 대폭 확대시켰다.
 
이를 통해 보듯 윤 의원의 막말 시점에 맞춰 공교롭게도 이 위원장과 친박계의 공세가 이어졌고 살생부 사태에 대한 사과를 요구받고 당내 입지가 줄어든 김 대표가 침묵에 들어간 반면 이 위원장은 이후 공천 관련 권한을 거의 장악해갔다는 면에서 친박계와 이 위원장이 연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는 건 필연적인데 사실로 확인될 경우 공천심사에 대한 공정성 논란까지 불거질 수 있어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 새누리당 이한구 공관위원장은 9일 윤상현 의원의 막말이 공천 심사에 미칠 가능성에 대해 “너무 많은 요소를 감안하면 심사할 수가 없다”며 사실상 일축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또 이 위원장과 친박 인사들과의 관계에 대해 특기할 만한 부분은 친박 핵심인사인 윤 의원이 특정인 낙천까지 거론하며 공천 개입을 암시하는 내용의 막말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데도 이 위원장이 공천과 관련된 어떤 개입 의사에도 크게 반발하는 반응을 보였던 과거와 달리 9일 “친구와 술 한 잔 먹고 한 것 아닌가”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기는 모습을 보였단 점이다.
 
아울러 이미 녹취록까지 확인됐고 윤 의원 본인도 자신의 취중실언이라며 발언 사실에 대해선 인정한 상황인데도 이 위원장은 오히려 “자기들끼리 개인적인 얘기를 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 않느냐”며 발언 사실 자체를 의심하는 듯한 견해를 내비쳤고, 공천 심사에 영향을 줄 가능성에 대해서도 “너무 많은 요소를 감안하면 심사할 수가 없다”고 일축해 일견 윤 의원을 비호하는 것 아니냐는 인상까지 풍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오는 10일 2차 공천안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 공천안 발표 하루 전 벌어진 윤 의원 ‘막말’ 파문이 이 위원장과 공관위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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