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제과 시작으로 내년까지 계열사 등기이사 모두 퇴진 수순

▲ 한 시대를 풍미한 롯데그룹의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의 퇴진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완승을 거두면서 롯데그룹의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퇴진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8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격호 회장은 한국 롯데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 등기이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지난 1967년 롯데제과가 설립된 이후 신격호 회장이 등기이사에 재선임되지 않는 것은 처음이다.
 
이에 롯데제과는 공시를 통해 오는 2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달 임기 만료를 앞둔 신격호 회장의 등기이사 사임 안건 상정 계획을 알렸다.
 
롯데제과 측은 안건 상정 배경에 대해 “현재 신격호 회장의 성년후견인 지정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기업의 중요한 경영사항을 판단하는 등기이사직을 연장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신격호 회장의 후임으로는 신동빈 회장의 측근으로 잘 알려진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이 선임된다.
 
◆신격호 회장, 계열사 도미노 퇴진 수순
신격호 회장은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다른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도 임기 만료에 따라 순차적으로 물러나게 될 예정이다. 사실상 퇴진 수순을 밟게 되는 셈이다.
 
롯데제과는 그룹 모태라는 상징성 외에도 그룹 지배구조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롯데제과는 롯데칠성과 롯데리아 등 식음료 계열사 지분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어 롯데그룹의 중간지주사 격인 회사다.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고리 67개 중 롯데제과가 포함된 고리는 54개에 달한다.
 
롯데제과 외에 등기이사 임기 만료가 남은 계열사는 이달 중 롯데호텔과 오는 11월 부산롯데호텔, 내년 3월 롯데쇼핑과 롯데건설, 내년 5월 롯데자이언츠, 내년 8월 롯데알미늄 등 총 6곳이다. 이다. 적어도 내년 내로 그룹 경영 일선에서 아예 손을 떼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 6일 형제간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으로 여겨졌던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빈 회장 측이 종업원 지주회의 지지를 재확인하며 완승을 거둔 것에 따른 행보로 풀이되고 있다.
 
당시 임시 주주총회에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현 경영진의 해임안을 상정했지만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반면 신동빈 회장 측은 종업원 지주회 측의 지지를 재확인하며 사실상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오는 6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동일 안건을 재상정할 것을 예고했지만 두 차례에 걸쳐 종업원 지주회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만큼 큰 의미가 없다는 평가다.
 
더욱이 신동주 전 부회장 측에 서 있던 것으로 알려졌던 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최근 마음을 돌려 신격호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인 지정에 찬성 입장을 표하고 나섰다. 신격호 회장의 넷째 여동생 신정숙 씨가 지난해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했고 신영자 이사장 역시 입장을 바꾸면서 신격호 회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 껌 한 통을 팔아가며 기적을 일궈낸 신격호 회장은 한국 롯데그룹을 계열사 80개를 거느린 연 매출 83조원의 재계서열 5위 ‘롯데왕국’으로 일궈냈다. ⓒ롯데그룹
◆껌 팔던 신격호 회장이 일군 기적, 격세지감
이처럼 사실상 생존해 있는 유일한 창업 1세대 신격호 회장의 말년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그것도 아들에 의한 퇴진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아지면서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이가 늘고 있다.
 
신격호 회장은 1922년 경남 울산 태생으로 1941년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문과 우유배달로 생계를 유지하다 1944년 일본인 사업가로부터 군수용 선반 오일 공장 설립을 조건으로 5만엔을 출자받기도 했지만 공장을 채 짓기도 전에 미군의 폭격을 받고 빚더미에 올랐다.
 
다시 우유배달을 하던 신격호 회장은 광복 이듬해부터 도쿄에 공장을 짓고 비누크림 등을 만들어 팔면서 빚을 다 갚아내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후 1948년 제과회사인 롯데를 설립했다. 롯데라는 이름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따온 이름으로 작가의 꿈을 키우기도 했던 신격호 회장이 롯데가 샤롯데처럼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를 바랐던 것에서 비롯됐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면서 껌 사업이 인기를 끌자 신격호 회장은 껌 사업에 뛰어들고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1963년 롯데의 매출액은 90억엔을 돌파해고 현재까지도 일본에서 껌 시장점유율 70%를 넘기는 부동의 1위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신격호 회장은 1961년 초콜릿 사업에 뛰어들었고 캔디, 비스킷 등 제과 부문에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이후 신격호 회장은 롯데상사와 롯데부동산, 롯데아도, 롯데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상업과 유통업을 망라한 일본의 10대 재벌에 오르는 기적을 일궈냈다.
 
◆한일수교 이후 롯데왕국 건설…황제경영 등 폐해도
1965년 한일수교로 고향인 한국에 대한 투자가 가능해지면서 신격호 회장은 1967년 국내에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이어 호텔롯데(1973년)와 롯데칠성음료(1974년), 롯데삼강(1977년), 롯데쇼핑(1979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1979년) 등을 창업·인수하면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식품·유통·관광 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는 서울 잠실에 호텔 롯데월드를 개관, 호텔롯데를 세계 10위권 호텔로 성장시켰고 같은 해 호텔롯데 면세점도 개점하면서 유통·관광산업을 확장시켰다. 1990년대에도 편의점(코리아세븐), 정보기술(롯데정보통신), 할인점(롯데마트), 영화(롯데시네마) 등으로 사업 다각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2000년대 롯데는 글로벌 사업에 뛰어들었고 2010년 평생의 숙원사업으로 여겨졌던 제2롯데월드 및 롯데월드타워 건립에 나섰다.
 
껌 한 통을 팔아가며 기적을 일궈낸 신격호 회장은 한국 롯데그룹을 계열사 80개를 거느린 연 매출 83조원의 재계서열 5위 ‘롯데왕국’으로 일궈냈다. 일본 롯데는 자산규모가 3144억엔(3조원 가량), 한국 롯데쇼핑은 40조원에 이른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의 일상 생활에서 롯데를 빼놓고는 생활할 수가 없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롯데의 지배력은 상당하다.
 
다만 신격호 회장 체제의 롯데그룹은 황제 경영, 폐쇄적 경영구조 등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0.05%에 불과한 보유 지분으로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구조가 이번 경영권 분쟁의 단초가 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었다는 식의 해석으로 롯데그룹의 순환출자고리는 최근 수 년 전까지 무려 10만개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경영권 분쟁이 부각되면서 크게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수준이다.
 
또한 상장을 극도로 꺼릴 정도로 기업 공개를 선호하지 않았던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다. 상장을 선호하지 않았던 것은 기업공개를 할 경우 외부 간섭을 받아야 하고 1인 주도의 경영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 37곳은 단 한 곳도 상장된 곳이 없고 한국 롯데그룹 역시 상장사는 9개에 불과하다.
 
기업 문화에 대한 이미지도 대기업 치고는 좋지 않은 편이다. 황제 경영이라는 비판을 들었던 신격호 회장처럼 롯데그룹이 전반적으로 수직적이고 군대적인 문화가 정착돼 있고 업무 강도에 비해 정직원들의 보수나 복지도 충분치 않다는 얘기는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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