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0년 연속 ‘더블 크라운’을 달성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연 매출 기준 27.5%, 판매 수량 기준 21.0%의 점유율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더블 크라운’은 매출과 판매 수량에서 모두 1위를 달성하는 것을 뜻하는 용어로 즉, 고급형과 보급형 모두 삼성전자가 10년 연속 세계를 제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에서 삼성 TV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과거 소니 등 일본 제품이 주로 보이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삼성전자 TV를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영원한 승자란 없는 법. 지난해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중국 업체들의 공세 속에 10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2위인 LG전자의 점유율을 합쳐도 한국 업체와 중국 업체들과의 격차는 6%p로 좁혀졌다. 이에 과거 세계를 호령하던 소니를 끌어내린 삼성은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이라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6년 와인잔을 형상화한 ‘보르도 LCD TV’로 1위에 올라 현재까지 10년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점유율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섰고 그 전에 세계를 호령했던 소니 역시 11년간 1위를 지켰다는 점은 세계 TV 시장의 패권이 이동할 조짐이 감지된다는 우려를 낳는다.
 
소니는 지난해 5.5%의 점유율로 5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 점유율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다지 멀지도 않은 과거에 소니 브랜드는 선진 제조국인 일본의 자존심 그 자체였다. 1968년부터 선명한 화면과 자연에 가깝게 색을 재현하는 독보적인 성능의 트리니트론 기술로 컬러 TV를 생산하기 시작한 소니는 지난 1995년 세계 TV 시장에서 1위에 올랐다.
 
TV에서뿐 아니라 70년대의 워크맨 신화를 필두로 카메라·캠코더, 플레이스테이션 등에서까지 소니는 프리미엄의 대명사로 통했다. ‘일제는 다르다’, ‘역시 소니’ 등의 문구는 1990년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통용됐다. 세계가 소니를 배우는 데에 열중했고 ‘소니 제국’이라는 말까지 등장하던 시절이다. 이를 기반으로 소니는 영화와 음악 사업에까지 진출, 하드웨어와 콘텐츠를 모두 아우르는 거대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굳혔다.
 
이처럼 첨단기술의 대명사로 통하던 소니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첨단기술을 등한시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소니는 TV부문에서 ‘트리니트론’ 기술에 집착한 나머지 2000년대 들어서 가속화되기 시작한 디지털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기존 아날로그 제품의 생산을 중단하고 디지털 신제품을 내야 하는데 자신의 기술에 지나친 자신감을 가진 나머지 ‘태세 전환’이 늦었다는 얘기다.
 
이는 당시까지만 해도 무명이나 다름없던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디지털 코드를 끌어안은 것과 대비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외친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전자는 품질 향상에 주력했고 독자 표준에 집착했던 소니에 비해 삼성전자는 잃을 게 없었다는 점에서 공개 표준을 공격적으로 수용하면서 소니 제국을 무너뜨리고 신화를 써내렸다. 소니는 음악 플레이어 시장에서도 MP3 플레이어의 중대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끝에 아이팟에 패권을 내줬다.
 
이밖에도 조직문화의 차이도 거론된다. ‘유쾌한 이상공장 건설’이라는 슬로건 속에서 소니에 관료주의가 확산되면서 과감히 도전하던 문화에 제동이 걸렸다. 사업부간 커뮤니케이션도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사분란한 리더십 하에 하나가 돼 움직인 삼성전자의 창이 소니라는 방패를 뚫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10년 정도면 삼성전자도 이제 ‘삼성 제국’이라는 얘기를 들을 만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10년 연속 더블 크라운이라는 대업 속에서도 아직 삼성의 브랜드파워는 과거 소니의 위상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기술력 면에서 세계 최고라고는 하지만 효율성이 높고 비용 절감에 중점을 두는 삼성전자의 철학은 과거 소니처럼 업계를 선도하는 업체의 비전으로서는 부족한 점이 있다.
 
이에 과거 도전자였던 삼성전자의 입장에서 추격을 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이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시점이다. 점유율이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삼성전자의 기술은 소니보다 다양성이 부족하고 벤치마킹할 수 있는 선두주자가 없을 때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진정한 ‘삼성 제국’을 건설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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