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꾸준히 부르짖고 있는 금융개혁이 은행권을 뒤흔들고 있다. 아무래도 정부와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없는 은행권이 그대로 따라가는 모양새인데 최경환 부총리의 은행 마감 시간 언급에 일제히 은행권이 반응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특히 금융개혁의 핵심 중의 핵심인 성과주의 도입은 은행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부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은행원들이 업무 성과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주변에서 은행원들이 업무 강도에 비해 억대 연봉을 쉽게 받는다는 볼멘 소리를 듣기란 어렵지 않다. 정부가 은행권에 성과주의 도입을 종용하는 것도 이 같은 지적에서다. 은행권의 생산성은 매우 낮은데 연공서열형 호봉제 탓에 타 업종보다 임금이 과도하게 높아져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연하게도 직원들이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이미 상당수 은행들은 이미 노조와 성과주의 도입을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곳곳에서 파열음이 감지된다. 주로 현행의 연공서열형 호봉제를 실적형 연봉제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보험사나 증권사에는 일반적인 형태지만 아무래도 은행원의 연봉체계라고 보기엔 무언가 어색하다. 맡은 업무에 따라 실적제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창구 수납 업무를 하는 행원들에게까지 성과주의라니.
 
은행은 타 기업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특성이 있다. 바로 안정성이다. 모든 국민들이 은행에 예금할 때 신뢰를 보내는 이유는 은행들이 안정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보험 계약을 할 때 보험설계사가 꼼수를 써서 피해를 입지 않을까 우려하고 또 꼼꼼하게 점검한다. 반면 은행에 돈을 맡기고 저축상품을 고를 때에는 별다른 고민이 없다.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은행원들조차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대신 돈 관리에 대한 책임이 요구된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고로 돈을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직종은 부패와 비리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급여가 높게 책정되는 것이 맞다. 그래야 함부로 남의 돈을 탐하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일반적인 가게에서조차도 캐셔 직종은 서빙 직종보다 급여가 많고 대신 마감과 정산 등에 대한 책임을 진다. 돈을 관리하는 사람이 생활고를 겪게 되면 자연스레 고객의 돈에 손을 댈 확률이 높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 아닌가.
 
더욱이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창구 직원들의 경우에는 어떻게 성과를 측정할 것인가. 모두가 용납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잣대가 마련되지 않으면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 뻔하다. 고과 점수를 높이기 위해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무리하게 카드나 계좌 개설을 요구한다거나 상담 과정에서 제출한 개인정보를 멋대로 활용해 고객들에게 상품 권유 전화를 거는 일도 빈번해질 것이다. 보험사와 카드사의 가입 권유 전화도 피곤한데 은행에서까지 광고 전화를 걸어댄다니.
 
게다가 업무 강도가 낮다는 것도 그다지 동의하기 힘들다. 많은 은행원들은 업무시간이 종료되고 나서도 밤 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일쑤다. 복잡한 절차로 이뤄지는 대출을 받아봤던 사람이라면 퇴근 후 밤 늦은 시간에도 은행에 직원들이 많이 남아 있는 광경을 한 두번쯤은 봤을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는 추세인데 은행원들의 일상화된 야근을 보고도 업무 강도가 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많을까.
 
집단 업무가 많은 은행 특성상 개인별 성과 측정도 쉽지 않을 것이고 한 직원이 개인별 성과를 내기 위해 돌출행동을 반복할 경우 조직내 분위기가 흐려질 것도 뻔하다. 이 모든 불안정성은 고객들의 불안감으로 돌아온다. 은행만큼은 성과급 제도보다는 호봉제를 기반으로 성과급을 가미하는 정도가 적당하다. 국민들의 돈을 관리하는 곳이고 사실상 국책기관이나 다름 없는 곳이다. 많은 반발을 무릅쓰고도 은행의 낮은 효율성을 꼭 성과주의로 해결해야 할까. 금융 당국이 얼마나 깊은 성찰을 했는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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