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朴 대통령 겨냥 ‘선진화법 통과’ 비판…친박 격앙

▲ 서청원 최고위원이 28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의 ‘권력자’발언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28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지난해 10월 공천 룰 문제로 친·비박계가 충돌한 최고위원회의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 듯했다.
 
그 당시처럼 이날도 서청원 최고위원이 김무성 대표의 옆에 앉아 작심한 듯 김 대표를 겨냥해 직설적으로 비판했고 김 대표 역시 묵묵부답이었지만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듯 보였다.
 
다만 지난해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당시엔 청와대까지 직접 나서서 연일 지원사격을 한 데 비해 이번엔 김 대표의 선공에도 청와대가 자제하고 있다는 인상만 풍긴 채 친박계만이 김 대표에 맞서고 있어 그 배경을 두고 노동법과 경제활성화법 처리 등 산적한 현안이 남아 있어 여당과의 협조가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또 일각에선 총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당내 친·비박 갈등 수준을 넘어 당청갈등으로까지 비화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야권에게는 호재가 될 것이란 판단에서 청와대가 특별한 반응을 내놓지 않는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최근 공천 룰을 비롯해 첨예하게 대립할 만한 사안에서도 어느 정도 비박계의 의사가 반영되는 선에서 매듭짓는 등 김 대표에 일견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던 친박계 최고위원들까지 직접 나서서 김 대표를 성토했다는 점에서 이번에 불거진 ‘권력자 발언’ 파문이 일회적인 비판에 그칠지, 아니면 계파 갈등 재발의 단초가 될지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권력자 발언’ 김무성, 총선 전 논란 자처한 이유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2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중장기 경제 아젠다 전략회의’에서 최근 여권에서 개정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당시 ‘권력자’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새누리당에선 현재 정부여당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노동법안과 경제활성화법 등 각종 쟁점법안을 처리하는 데 난항을 겪는 첫 번째 이유로 현재 원내 구성 비율상 야당의 합의를 요하게끔 규정한 국회선진화법을 들고 있다.
 
여당이 고려한 최후의 수단인 직권상정조차 국회선진화법에서 엄격히 제한해 놓음으로써 현재 새누리당에게 있어선 가장 먼저 개정해야 할 대상이 국회선진화법인 상황인데 그 법을 19대 국회 초반에 통과시킨 주역이 바로 박 대통령이란 것이 김 대표 주장의 요지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우선 국회선진화법을 망국법으로 규정한 뒤 “우리 당내 거의 많은 의원들이 반대했는데, 당시 권력자가 찬성으로 돌자 반대하던 의원이 전부 다 찬성으로 돌아버렸다”며 여기서 ‘권력자’란 그 때 선진화법에 찬성표를 던진 박 대통령이었음을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2030 공천설명회’에서 “과거에는 공천권이 당의 소수 권력자에 의해 좌지우지됐다”며 “젊은 인재들이 정치를 하고 싶어도 구태 정치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능력과 열정보다 권력자에게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얘기에 용기를 못 냈을 것”이라고 연일 ‘권력자’ 발언을 이어갔다.
 
과거엔 이른바 ‘권력자’가 총선 공천권을 쥐고 흔들어 계파에 따라 공천 여부가 결정됐다는 점을 지적한 이 발언 역시 지난 18대, 19대에 걸쳐 낙천한 김 대표 자신의 경험에 기인한 데서 나온 것으로 분석되는데 이 중에서도 19대 총선을 맡은 지도부가 당시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박 대통령이었단 점에서 한편으론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김 대표는 ‘상향식 공천’키로 결정한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야권의 ‘인재영입’까지 거론하며 전략공천을 연계시키려는 친박계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을 것으로 여기고 친박계가 아닌 박 대통령을 직격했다는 것인데 이 같은 해석은 그간 청와대와 정부 출신 친박 신인들을 원내 입성시키기 위해 박 대통령 측이 공천권을 둘러싸고 김 대표와 오랜 기간 대립해 왔다는 데에 근거를 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발언 시점조차 쟁점법안이 여전히 처리되진 않았으나 총선은 가까워져 청와대 입장에서 정치권의 협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19대 국회 말미를 택해 김 대표의 선제 도발에도 청와대가 맞대응에 나설 수 없게 만들어 외형상 여당 대표가 당청갈등을 일으켰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으면서도 식물국회의 원인이 된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책임은 청와대로 몰아감으로써 현 정국에 대한 책임도 피해갈 수 있는 명분을 만들었다.
 
게다가 26일의 국회선진화법 관련 ‘권력자’ 발언에 이은 27일의 공천권 관련 ‘권력자’ 발언을 연계해 살펴본다면 상향식 공천의 당위성을 강조해 ‘공천권 투쟁’이란 비판을 피하면서도 여전히 전략공천 가능성을 살피며 김 대표를 자극하는 친박계부터 청와대까지를 겨냥해 ‘과거’ 폐해에 비쳐 이제 공천권에 대한 미련은 접으라는 일종의 선전포고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김 대표의 ‘권력자’ 발언은 내용 자체의 진위여부를 떠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에 의도적으로 던진 ‘정치적 제스처’인데 연일 직격탄을 맞은 친박계에선 당장 그의 발언 내용부터 시시비비를 따지며 역공을 펼쳤다.
 
◆ 친박 “모든 친박이 국회선진화법 찬성한 건 아냐”
 
26일 김 대표가 국회선진화법의 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있단 식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발끈하고 나선 자는 청와대 정무특보까지 지낸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인데,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황우여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장에서 (선진화법에 대해) 설명했고 찬반토론이 있었는데 나는 의총에서 반대한다고 발언했으며 본회의장에서도 반대에 투표했다”고 말해 친박이 박 대통령의 결정에 뒤이어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김 대표의 주장을 반박했다.
 
친박으로서 지난 2012년 국회선진화법 처리 안건에 기권표를 던졌던 유기준 의원도 28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출석 의원이 192명이었는데 그 중 127명이 찬성했고, 반대나 기권한 의원이 65명이나 된다”며 “새누리당 의원들이 (반대하거나 기권한)그 중에 많이 있는데, 반대하던 의원이 전부 찬성으로 돌아버렸다고 말하는 건 팩트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5월 2일 국회선진화법 통과 당시 찬성 측에 황우여, 조원진, 현기환, 유승민(당시 친박) 등 친박계 의원이 찬성표를 던진 건 맞지만 찬성 측에 이상득, 홍준표 등 비박계 의원도 있었을 뿐 아니라 친박인 윤상현, 김영선, 박보환, 이경재 등은 반대를 고수했고 최경환, 유기준, 이철우 등은 기권표를 던져 특정 개인의 결정에 휩쓸리기보다 각 의원들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자유롭게 의사를 표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김 대표 발언 내용의 사실관계만을 놓고 비판하던 수준을 넘어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김 대표를 직접 언급하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서 최고위원은 “그동안 당은 여러 가지로 자중자애하며 야당도 분열된 상황에서 우리 당은 참 조심스럽게 겸손한 마음으로 가자고 다짐하고 있다”면서도 “그런데 최근 김 대표가 왜 이런 얘기를 해서 분란을 일으키는가. 당에 어떤 혜택이 돌아오는가. 여당인 새누리당의 권력자는 김 대표 스스로 아닌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이어 “여당의 모든 인사권을 가지고 있고 금년도 대권 후보 1위 반열에 오른 이 이상 권력자가 있는가. 그런데 왜 입에서 이런 권력자 소리가 나오는 지 이해할 수 없다”며 “평당원이 권력자란 말을 쓴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김 대표는 다시는 이런 얘기해서 당 분란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한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 김태호 최고위원은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대표를 겨냥해 “지금 저희 당이 희화화되고 있다. 누가 진짜 권력자인가 수수께끼를 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뒤이어 김태호 최고위원까지 김 대표를 겨냥해 “지금 저희 당이 희화화되고 있다. 누가 진짜 권력자인가 수수께끼를 하고 있다”며 “집권여당이 왜 이리 정제되지 못하고 경박한가. 더 이상 계파간 갈등으로 자기 이익 챙기는 모습으로 국민에게 비춰진다면 미래가 없다”고 날을 세웠다.
 
끝으로 이인제 최고위원마저 “우리 의회민주주의의 과거를 언급할 때 그 과거는 오늘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 그 때 과거는 치열한 현재가 아니었나. 과거 하향식 공천도 그때 그 수준이 현실이었다”며 “자꾸 과거를 현재 기준에 맞춰 자기 편리한대로 거론하는 것은 당내민주주의나 의회민주주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도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김 대표를 질타했다.
 
오히려 이 최고위원은 김 대표가 강조해온 상향식 공천을 겨냥해 “지금 당장 아주 이상적인 제도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우린 현실 속에 있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지난 이틀간 김 대표의 발언으로 쌓인 감정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듯 이날 최고위에서 쏟아낸 뒤에도 친박계는 김 대표를 향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는데 이에 반해 청와대는 확연히 대비될 정도로 냉정한 반응을 보여 이목이 집중됐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김 대표의 최근 ‘권력자’ 발언에 대해 별 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는 데 대해 “일일이 대꾸하지 않겠다”고 일축한 대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개혁 관련 4법, 테러방지법 등 쟁점법안들을 하루속히 통과시켜서 민생과 경제, 국민안전을 위한 국민들의 여망을 하루속히 담아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해 당장은 그 어느 것보다도 쟁점법안 처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비록 김 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자신을 향한 비난이 쏟아져도 특별한 대응 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지만 이번 갈등이 이날 하루의 성토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아직 양 계파 간 남은 쟁점인 공천관리위원장직을 놓고 점점 격화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될 것으로 보인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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