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영원한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

마돈나에서 패리스 힐튼까지 `옷을 벗은 비너스` `성녀 혹은 악녀` 마릴린 먼로를 자신의 육체로 되살리려는 노력은 계속 돼 왔다. 그렇지만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7년 만의 외출` 등에서 먼로와 호흡을 맞췄던 영화감독 빌리 와일더는 "누구나 또 다른 마릴린 먼로를 만들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신은 마릴린 먼로는 오직 하나이며 이 세상에 넘치는 것은 복사품(imitation)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62년 8월 5일 베벌리힐스 저택의 킹사이즈 침대 위에서 마릴린 먼로가 샤넬 넘버5만을 `입은 채` 시신으로 발견된 지 올해로 꼭 44주기가 됐다. CBS뉴스는 먼로 죽음 직후 행해진 관련자들 및 지인들의 증언 녹취 테이프를 최근 공개해 여전히 미스터리에 싸인 그녀의 사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녀의 유해가 안장된 LA 웨스트우드 묘지를 `성지순례`하는 팬들의 추모 움직임은 조용하다. ▶ 불행했던 노마 진 베이커 먼로의 얼굴을 수십 장 찍어 붙인 앤디 워홀의 작품처럼 이미지는 끊임없이 복사되고 소비됐지만, 불행하게 살다간 한 여인 노마 진 베이커는 서서히 잊히고 있다. 마릴린 먼로는 26년 노마 진 베이커라는 본명으로 LA에서 출생했다. 금발의 마릴린 먼로는 모든 남성으로부터 추앙받고 찬미되던 `20세기의 육체`이었지만 갈색 머리의 노마 진 베이커의 몸은 가혹하게 학대당했다. 8세 때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16세 때 첫 결혼이 실패한 후 자살을 시도한 것을 비롯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시도한 횟수만 두 번이며 생전에 여섯 번이나 강간을 당했다. ▶ 화려했던 마릴린 먼로 생계 때문에 나선 사진모델 시절 누드사진으로 주목받은 먼로는 47년 `쇼킹 미스 필그림`을 시작으로 몇 편의 할리우드 B급 영화에 출연하다 50년 이후 `이브의 모든 것` `나이아가라`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7년 만의 외출` 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금발에 파란 눈, 완벽한 몸매, 뇌쇄적인 포즈로 당대의 `섹스 심벌`로 떠올랐다. 먼로가 발산하는 성적 매력에 대해 출판인 로이 크래프트는 "모든 남자에게 그녀가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지게 만드는, 마술적인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예 경력은 화려했지만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 극작가 아서 밀러로 이어진 결혼과 이혼 등 사생활은 불행했다. 먼로는 "스타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지만, 많은 감독이 "그녀는 진정한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어했다"고 증언할 만큼 연예계에 대한 태도도 모순적이었다. 연예계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를 소비했지만 그녀의 책장에는 톨스토이와 휘트먼이 꽂혀 있었고 베토벤을 즐겨들을 만큼 정신적으로 고양되길 원했다. 먼로 죽음의 진정한 비밀은 아마도 불행했던 노마 진 베이커와 화려했던 마릴린 먼로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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