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국내 항공사라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만 있는 줄로만 알던 국민들에게 비행기를 이용한 여행이란 사치의 산물이던 시절이 있었다. 서민들 사이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만 다녀와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과거 비행기 탑승료 부담은 만만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지난 2005년 외국처럼 저렴한 가격으로 비행기를 이용하는 대신 기내식이나 최상급 서비스가 생략된 소위 ‘저가 항공사’가 도입됐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저가항공사를 이용할 것으로 예상됐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만큼 비행기를 통한 여행은 소위 ‘고급진’ 여가 생활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저가항공사가 도입됐던 초기 사람들은 비용보다 안전을 중시했다. KAL기 폭파라는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국민들에게 운항 사고에 대한 불안은 업계의 예상 이상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가격에 혹하다가도 혹시 가격이 저렴한 만큼 기체나 운항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하고 우려한 끝에 결국 이용을 포기하기 일쑤였다.
 
2005년 옛 한성항공(현 티웨이항공)이 처음으로 취항한 지 10년이 지난 현재 저비용 항공사의 변신은 눈부시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제 비행기를 통한 여행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적 대형항공사의 국내 여객 운송은 106만명인데 비해 저비용 항공사들의 운송은 137만명에 달했다. 국내선 여객 분담률이 절반을 넘었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는 저비용 항공사가 나타나는가 하면 저비용 항공 업계의 향후 전망도 매우 밝다.
 
이 같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저가항공사들의 노력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저가항공사들은 이제 저가항공사가 아닌 저비용 항공사(LCC)로 불린다. ‘저가’라는 단어가 가지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과거에 비해 상당수 희석된 것은 물론이다. 경쟁 체제가 치열해지면서 국제 노선도 비약적으로 늘었고 서비스 면에서도 많은 향상이 이뤄졌다. 관광산업은 저비용 항공사들의 성장에 발맞춰 눈부신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비용 항공 업계가 비약적인 발전을 구가하고 있는 것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커다란 대형 사고가 없었다는 점에 있다. 초기에 안전을 걱정하던 국민들은 저비용 항공사들이 잇따라 취항에 나서고 수 년간 운항을 지속하면서도 우려할 만한 대형 사고가 발생하지 않자 서서히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현재 저비용 항공사들이 질주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초기의 어려움을 딛고 적지 않은 시간동안 쌓아온 나름의 신뢰가 바탕이 된 셈이다.
 
하지만 비행기를 이용한 여행객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최근 잇따라 불미스러운 사고 소식이 들려온다. 한 저비용 항공사는 최근 항공기 출입문을 제대로 닫지 않고 출발했다가 회항해 거센 질타를 받았다. 특히 승객들이 승무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음에도 운항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하니 출입문 근처에 앉았을 승객이 비행 시간 동안 겪었을 공포는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다른 저비용 항공사는 기내 압력조절장치 이상으로 급강하하는 사고를 냈다. 기체 이상으로 인한 회항 소식도 점차 그 빈도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사실 국민들이 실제 체감하고 있는 것보다 저비용 항공사들의 사고 발생 빈도수는 훨씬 많다. 2006년부터 2014년 사이의 1만회 운항 당 발생한 저비용 항공사들의 사고 발생 건수는 0.63건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4배에 가깝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저비용 항공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몇 대의 항공기를 계속 돌려막기하고 있고 정비도 상대적으로 부실하다. 숙련된 조종사보다는 아무래도 숙련도가 떨어지는 조종사가 투입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기억에 남는 커다란 대형사고가 없었던 것은 저비용 항공사들이 잘 했다기보다는 운이 좋았다고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이번에도 출입문이 제대로 열리기라도 했더라면 그 결과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저비용 항공 도입 이후 역사상 최고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저비용 항공사들로서는 당장의 이익과 승리에 심취해 안전을 도외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릇 대중들 사이에서의 불안감이란 바이러스와도 같고 대중들은 쉽게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에 의한 사고가 잇따른다면 오랜 기간에 걸쳐 어렵게 얻은 신뢰를 발로 걷어차는 것이나 다름없다. 잘 나갈수록 뒤를 돌아보라는 말이 있다. 저비용 항공사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모든 바탕에는 안전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사소한 것 하나에서부터 초심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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