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위안부 합의 무효” - 與·政 “이번 합의가 최선”

▲ 한일 위안부 합의 결과를 두고 31일 정부여당은 최선을 다한 결과라며 수용할 것을 호소한 반면 야권은 규탄대회를 여는 등 총공세에 나서면서 정국이 또다시 정체 국면에 빠져들 기미를 보였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선거구 획정 및 쟁점법안에 대한 연내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음에도 여야는 여전히 어떤 합의안도 도출해내지 못한 상황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라는 또 다른 화두를 계기로 갈등을 거듭하고 있어 내년 초까지 국회 공전 사태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우려한 청와대까지 직접 나서 31일 조속한 입법 정국 정상화를 촉구하는 한편 이번 ‘한일 위안부 합의’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사태 진화에 부심했으나 야권에선 한 목소리로 ‘수용 거부’ 입장을 거듭 피력하면서 안철수 신당까지 여론전에 가세해 점차 혼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야의 선거구 미획정으로 인해 기존의 전국 선거구가 무효화되는 ‘입법비상사태’가 1일 자정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작 국회가 해야 할 현안 처리는 뒤로 미루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野 “위안부 합의, 대통령 사과하고 장관 사퇴해야”
 
야권은 이번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한 목소리로 규탄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문재인 대표의 ‘위안부 합의 무효’ 선언에 이어 31일 국회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우리 측 협상대표였던 윤병세 외교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위안부 재단 설립을 위해 일본 정부의 자금이 아닌 국민 모금을 하자고 제안하는 한편 오후엔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나눔의 집을 직접 방문해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는 등 ‘위안부 합의’를 놓고 전방위적인 공세에 나섰다.
 
앞서 문 대표는 지난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안과 관련, “위안부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법적 책임에 기초한 사과와 배상”이라며 “국회 동의가 없었으므로 무효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일본 측이 이번 합의를 계기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 이전(혹은 철거)을 요구하는 데 대해서도 “소녀상은 철거 대상이 아니라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 그 자리에 새긴 역사의 교훈”이라며 “반성해야 할 일본의 요구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처사이고, 부당한 요구에 끌려 다닌 우리 정부도 부끄럽긴 마찬가지”라고 질타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문 대표는 31일 오전 국회에서 ‘위안부협상규탄대회’까지 열고 전날에 이어 “박근혜 정부는 가해자의 공식사과와 법적책임,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 그 어느 것도 얻지 못한 이번 협상의 실패를 인정하고 무효임을 선언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주권국가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정부 수반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라”며 “즉각 재협상에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또 문 대표는 “굴욕적인 협상 결과로 얻은 10억엔을 거부한다”며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재단 설립을 일본 돈이 아니라 우리 돈으로 하자”고 국민 모금을 제안했다.
 
아울러 그는 일본 언론에서 위안부 소녀상 철거가 10억엔 지급의 전제조건이라고 보도하는 것과 관련해 “이미 소녀상 철거를 이면 합의한 게 아닌지 진상을 밝혀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에 그치지 않고 더민주는 이날 오전 유승희 의원이 만든 위안부 합의 재협상 촉구 결의안에 대한 의원들 서명을 받고 이를 당론으로 정하는 한편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상임위(외교통일·여성가족)를 소집하고 관계 장관을 출석시켜 보고를 받는 것은 물론 내주 중으로 윤병세 외교부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까지 제출키로 입장을 밝혔다.
 
또 더민주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을 만나 위안부 협상 관련 본회의 긴급현안질의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사실을 전하며 “우리 당은 계속 본회의에 대한 긴급현안질의를 요구할 것이고 국제연대를 통한 반대도 구체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안철수 의원도 새 쟁점으로 떠오른 ‘위안부 합의 논란’에서 더민주 측에 선수를 빼앗기지 않으려는지 이날 자신의 트위터 글을 통해 “소통하지 않고 독단에 빠진 대통령과 정부가 외교참사를 불러왔다”고 입장을 내놨다.
 
더민주와 마찬가지로 안 의원 역시 “대통령은 국민과 위안부 어르신들께 사죄해야 한다”며 “역사적 상처는 정치적 선언만으로 최종적·불가역적을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與 “어떤 합의보다 잘 된 합의” 반박
 
반면 새누리당은 야권의 이 같은 반응에 대해 31일 의원총회에 우리 측 협상대표였던 윤병세 외교장관까지 참석시켜 이번 합의내용이 최선이었음을 강조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문 대표를 겨냥해 역공을 펴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윤 장관을 참석시켰는데, 윤 장관은 “과거 일본 측은 도의적 책임만 명시했는데 이번 합의에서 사상 최초로 일본군의 책임을 분명히 표명했다”며 “과거에도 노력했지만 진전이 없었는데 박 대통령 취임 후 한일 간 다각적 노력과 국제사회와의 공조로 최종 타결을 도출한 것”이라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를 회피했던 아베가 기자회견을 통해 28일 뿐 아니라 직접 우리 대통령께 전화로 사죄 반성을 표명했다”며 “명확한 사죄 표명을 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윤 장관은 이번 합의로 조성될 예정인 위안부 기금에 대해서도 “순수 일본 정부 출연으로 (과거 아시아 여성기금 때와) 차이가 있다”며 “정부 책임 통감, 사죄 반성 등을 보면 2010년 (일본)민주당 정부 시절보다, 사사에 안보다 진전됐다. 최선의 결과라 생각한다”고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그는 올해 9명의 위안부 할머니가 별세하신 점을 언급하면서 “이번 합의는 협상이 장기화되고 영구 미제로 남을 것이란 우려, 시급성이 작용했다”며 “국제사회도 이번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속하고 충실히 이행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같은 윤 장관의 설명을 듣고 난 김무성 대표는 이날 의총에 이어진 본회의를 마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장관 말 들으니까 충분히 이해가 간다. 모두가 다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그동안 어떤 (위안부 관련) 합의보다 잘 된 합의라고 본다”고 정부를 적극 옹호했다.
 
또 이날 새누리당은 국회 정론관에서 이장우 대변인의 현안 브리핑을 열고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역사적 아픔과 상처를 또다시 정쟁으로 이용하려는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문 대표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뒷짐만 지고서 외면했던 행동에 대한 반성이 먼저”라고 맞불을 놨다.
 
이 대변인은 “노무현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회피만 해왔다는 건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다”며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수석,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대표는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아울러 그는 “위안부 할머님들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 주는 일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며 “합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일본의 후속조치를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며 야권을 향해 공세를 자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문 대표의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 및 재협상 요구’에 대해 “엉뚱한 주장”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는데,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민생 문제는 지금까지 외면했으면서 외교적 결정까지 야당 대표의 허락을 받으라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야권의 주장을 일축했다.
 
원 원내대표는 이어 “과거 김대중 정부도 일왕을 천황으로 표현하는 등 파격 대우를 하면서도 공동 선언문에 위안부 문제는 단 한 줄도 넣지 못했다”며 “피해자가 생존해 있을 때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낸 (박근혜)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으로 높게 평가한다”고 두둔했다.

◆ 靑 “정부 최선 다해…대승적 차원서 이해해 달라”
 
▲ 청와대 측은 31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란 제하의 브리핑을 통해, “정부의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고 되돌리고자 한다면 이 문제는 24년 전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며 국민과 야당 측에 합의안을 수용해달라고 호소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런 와중에 청와대까지 논란에 가세해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공방은 한층 가열됐는데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전하며 “정부의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고 되돌리고자 한다면 이 문제는 24년 전 원점으로 되돌아간다”고 호소했다.
 
김 홍보수석은 “그동안 민간 차원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이 문제는 손대기도 어렵고 굉장히 힘든 난제”라며 “정부가 최선을 다한 결과에 대해 ‘무효’와 ‘수용 불가’만 주장한다면 앞으로 어떤 정부도 이런 까다로운 문제에는 손을 놓게 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또 소녀상 철거를 전제로 돈을 받았다는 등의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사회혼란을 야기시키는 유언비어는 위안부 문제에 또 다른 상처를 남게 하는 것”이라며 “사실관계가 아닌 것을 보도해 감정을 증폭시키는 건 양국 관계 발전과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김 홍보수석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평균 나이 89세의 고령이시고 한 분이라도 더 생존해 계실 때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드려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정부는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공식적인 반성·사죄를 받아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며 “대승적 차원에서 이번 합의를 이해해주시고 국자의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번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정치권의 양태는 몇 개월 전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역사 전쟁’과 비슷한 전개로 흐르고 있다.
 
당시에도 역사 교과서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립각을 세우면서 양측 세력이 내분을 잠시 접고 결집하는 모양새를 띠었는데 추가탈당을 잠재우기도 바쁜 더민주 측에서 이번 합의에 대해 특히 격한 반응을 내놓는 것을 두고 일각에선 ‘위안부 문제’란 민감한 현안에 대해 정부여당에 총공세를 펴면서 그 당위성을 통해 다시 야권을 결집시키고 동시에 내분을 수습하려는 의도에서 논란을 확산시키려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역사교과서 논쟁 당시 정부가 국정화 강행 방침을 굳히자 더민주(당시 새정연)의 문 대표는 비상상황임을 내세워 당내 계파 갈등을 잠시나마 잠재울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정의당·천정배 신당 측과 일시적인 연대까지 이뤘던 적이 있듯 이번 논란 또한 당내 추가 탈당 기류를 잠재우고 자당의 지지율을 잠식하는 안철수 신당과의 연대 가능성까지 열어두기 위한 더민주 측의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공천특위에서의 ‘안심번호제 불가 결정’를 놓고 김 대표 측과 계파 갈등이 재점화 될 조짐을 보이는 새누리당 역시 외부의 위기상황을 통해 내분을 수습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계산이 야권과 일치하고 있어 이번 논쟁이 자칫 과거 역사교과서 사태처럼 장기화되면서 쟁점법안 처리와 선거구 획정 등으로 갈 길 바쁜 국회가 또 다시 정체 상태에 빠지는 것 아닌지 벌써부터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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