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향하여

한국을 넘어 일본을 정복중인 이승엽(29.요미우리)이 마침내 한.일 통산 400호 홈런을 달성했다. 이승엽은 1일 일본 도쿄돔에서 벌어진 2006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와 경기에서 1회말 개인통산 400호 홈런을 터뜨린 데 이어 2-2로 팽팽히 맞선 9회말 2사 1루에서 극적인 끝내기 2점 홈런포를 쏘아올려 401호를 작성했다. 지난 1995년 경북고를 졸업하고 연고 구간인 삼성 라이온즈에서 프로 데뷔해 9시즌동안 홈런 324개를 날린 뒤 2004년 일본으로 진출했던 이승엽은 이로써 2시즌 반만에 77호를 기록, 한.일프로야구 통산 400홈런을 돌파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또한 1976년 8월18일생인 그는 만 29세 11개월13일만에 400홈런을 달성, 일본 오사다하루(王貞治), 미국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서른 살 이전에 400홈런을 터뜨린 선수가 됐다. 요미우리로 이적한 올 해에는 30홈런을 훌쩍 넘어 50홈런을 바라보고 있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이 같은 성장을 한 이유와 비결은 무엇일까. ◆철저한 노력 이승엽이 홈런을 펑펑 쳐대자 일본 언론들은 ‘승짱 노트’에 주목했다. 이승엽이 앞에 언급된 약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난관을 극복했을 뿐이다. 경기 후 상대팀 투수들의 특성을 연구하면서 상대 투수 볼 배합을 읽고 구질과 코스를 미리 예견하는 ‘예측 타격’능력이 매우 좋아졌다. 초구를 공략했을 때 타율(0.563)과 홈런(11개)이 많은 것은 상대가 어떻게 던질지를 간파하고 타석에 들어간다는 반증. 어이없는 헛스윙이 시즌 초반에 비해 적어진 것도 낯설었던 센트럴리그 투수들의 성향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상대투수의 구종 구속 볼배합 변화구 등 꼼꼼이 적어놓은 ‘타격일지’다. 이승엽은 상대투수에 대한 분석을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일본 투수들에 적응해갔다. 3년째가 되면서 데이터의 축적량도 늘어났고 그만큼 일본야구를 자기 페이스대로 이끌어가게 됐다. ◆‘몸짱’ 이승엽 이승엽은 아시아 시즌 최다홈런을 기록한 타자이지만 힘에 의존하는 스타일은 결코 아니다. 유연성을 바탕으로 파워보다는 기교로 홈런을 생산하는 타자이다. 삼성 시절 홈런 라이벌이던 심정수(당시 현대)와 비교된 점이었다. 그런데 이승엽이 올해 달라졌다. 몸매가 ‘심정수 스타일’로 변했다. 그는 지난 겨울 요미우리 입성을 앞두고 국내에서 훈련할 때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근력 운동을 많이 해 ‘몸짱’으로 변신했다. 유연성에 파워까지 갖춘 셈이다. 그의 끝없는 노력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겨울 지독한 개인훈련 탓에 손바닥 깊게 못이 박인 것도 노력의 산물이다. 이승엽은 매년 겨울이면 대구 집 근처 한 헬스클럽에서 몸 만들기에 열중한다. 우선 웨이트트레이닝. 하루 1시간30분에서 2시간씩 꼬박 투자한다. 여기에 240㎏ 역기는 5~6회, 150㎏짜리는 30~40회씩 들고 내리는 운동을 하며 근력을 키운다. 하루 1000번씩 휘두르는 스윙도 허리와 어깨 근육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승엽의 팔뚝 둘레는 무려 42㎝. 말 그대로 '니 팔뚝 굵다'다. 체중을 늘린 것도 파워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을 했다. 2003년 88㎏에 머물던 몸무게는 현재 100㎏에 육박하고 있다. ◆좌투수에 약하다? 이승엽이 타격 슬럼프에 빠질 때는 약점을 바로 보였다. 포크볼에 약하고 좌투수의 바깥쪽으로 휘어지며 떨어지는 볼과 몸쪽 높은 직구에 헛스윙을 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노출했다. 하지만 최근 이런 모습은 상당부분 사라졌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커트를 하고 삼진은 줄고 볼넷은 늘었다. 선구안이 좋아졌다. 선구안이 타격폼을 안정되게 하고 그런 안정이 선구안을 좋게 하는 상승 작용을 낳고 있다. 또한 일본 언론에서 제기했던 좌 투수에 대한 약점이 없어졌다. 일반적으로 좌 타자는 좌 투수에게 약하다는 게 통설. 지난해까지는 이 같은 ‘왼손의 법칙’이 이승엽 에게도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이승엽은 우완을 상대로 0.273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좌 투수에겐 0.216으로 약했다. 30개 홈런 중 좌 투수에게 뽑아낸 홈런은 단 4개였다. 하지만 올해 34개의 홈런 중 13개를 왼손을 상대로 터뜨렸다. 왼손 투수를 상대로 한 타율도 0.352(145타수 51안타)로 우완 상대 타율(0.316·225타수 71안타)보다 훨씬 높다. ◆정신적 안정감과 자신감 이승엽은 지바 롯데시절 타순이 들쭉날쭉하고 좌 투수가 나오면 빠지는 플래툰 시스템의 희생양이 됐다. 그러나 요미우리에서는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4번타자 겸 1루수로 붙박이 출전을 하고 있다. 감독의 신임이 홈런포 양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이승엽 자신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일본 3년째 정신력도 강해졌고 자신감도 생겼다. 친정팀 지바 롯데 팬들의 야유 속에 홈런포를 쏘아올린 뒤 “야유를 즐겼다”는 그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국인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요미우리 자이안츠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 이승엽. 역대 거인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던 그 어떤 타자보다 훌륭한 업적을 쌓아 가고 있다. 일부 일본 언론들은 초반의 냉담한 반응에서 요미우리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고 메이저 리그 최고 명문구단인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 마쓰이 히데키를 뛰어 넘고 있다고 연신 보도하고 있다. 과연 이승엽이 3년전 아시아 홈헌 신기록을 작성하고도 자신의 자손심에 상처를 입혔던 메이저 리그에 최희섭, 추신수에 이어 세 번째 한국인 메이저 타자가 될지 야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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