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여행자의 “환”

굳이 보드리야르의 이름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시대에 '이미지'가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인간의 정서체계를 좌지우지하는 지에 대해선 모두들 통감하고 있을 듯 싶다. 이렇듯 '이미지 지배'의 시대에, 인물들 간의 선명한 대사 플레이와 직접적인 독백 구조로 이야기와 상념을 전달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연극' 장르도 드디어 '이미지 연극'이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비쥬얼로 상념을 전달하는 형식을 선택했다. 화제가 되고 있는 연극은 지난 2003년 "연 - 카르마"라는 작품으로 카이로국제실험연극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극단 여행자의 "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드"를 한국 역사에 맞게 번안한 이 연극은, 다국적 극단 '라센칸'의 단원으로 스페인, 일본, 인도 등지에서 활약한 바 있는 연출가 양정웅에 의해 완벽한 '비쥬얼 스타일리즘'으로 무장되어 우리 앞에 등장했다. 인물의 동선과 의상, 분장, 몸짓 등 모든 것이 정교하게 계산되어 연출된 왕의 행차나 장수들의 결투 장면 등은 이전의 단조로운 연극 연출 패턴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종류의, 그야말로 시각적인 비장미와 우아미를 띠고 있으며, 마치 종합예술인 '영화'에서나 언급되던 입체적 전달의 가능성, 즉 배우와 무대, 음악, 디자인과 효과 상의 모든 요소가 종합되어 전달하는 독창적인 감흥을 시도하고 있다. 극단 여행자의 간판 배우로서 알려져 있는 정해균과 김은희의 에너제틱한 연기를 다시 한 번 만나볼 수 있고, '제 1대 품바'로 잘 알려져 있는 정규수, 2004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에 빛나는 배우 최일화 등의 노련한 연기자들도 대거 출연해 자칫 '기획력만 있는 연극'으로 전락할 수 있었던 전제에 연극적인 파워와 무게감을 부여해내고 있다. '연극'이라는, 제한된 설정 속에서 배우들이 펼쳐보이는 '연기'의 향연마저도 폭압적인 이미지즘에 항복해 버렸다는 아쉬움이 일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어찌됐건 모든 예술은 변화하고, 변화해야만 할 운명에 놓여있기도 하다. 이번 "환"은 이런 '예술사의 변천'에 하나의 포인트로서 한 장르의 미래를 제시해 줄 수도 있을 법한 좋은 자리가 될 것이다. (장소: LG 아트센터, 일시: 2004.03.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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