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산인프라코어의 무차별 희망퇴직이 크게 이슈화되면서 두산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고 있다. 신입사원들까지 희망퇴직으로 내몰았다는 논란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서 1·2년차들의 희망퇴직을 중단하라고 했다지만 신입사원들을 보호하라는 얘기는 순수한 ‘희망퇴직’이 아니었다는 것을 오히려 자인하는 것인지 그 의미는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실시된 이번 희망퇴직에 잠시 가려져 있지만 두산은 원래 구조조정을 잘 하는 그룹으로 소문이 나 있다. 여기서 ‘잘 한다’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다. 역대 최장수 그룹으로 기네스북에까지 오른 두산은 시대 변화에 따라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탈출하고 그룹의 색깔을 바꿔서까지 생존해 온 기업이다. ‘카멜레온 두산’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두산은 1896년, 그러니까 무려 120여년 전 박승직 창업주가 종로4가에 면직물을 취급하는 작은 점포를 만들면서 태동했다. 당시 점포 이름은 자신의 이름을 딴 ‘박승직상점’이었다. 이후 장남인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은 1946년 박승직상점을 이어받아 두산상회(두산글로넷)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두산(斗山)이라는 단어는 ‘한말 한말 차근차근 쌓아올려 산처럼 커져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두산은 박두병 회장 체제 아래 1950년대에 동양맥주주식회사(OB맥주)를 설립하고 무역업 및 운수업 등으로 사세를 크게 확장하는 데에 성공했다. 1960년대에는 두산산업개발·두산음료·두산기계를 잇따라 설립, 한국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OB맥주는 미국에 수출됐고 코카콜라와 환타도 생산·판매를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생활문화산업의 선두 지위를 굳게 하면서 건설과 기계, 전자사업까지 중흥기를 맞았다. 당시 한국오크공업(두산전자)과 두산개발, 동양농산(두산타워) 등이 탄생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출판과 광고까지 영역을 넓혔다. 창업 이래 거칠 것이 없었다는 표현이 제격인 셈이다.
 
하지만 창업 100주년을 앞둔 1995년 두산은 위기의 조짐을 미리 감지하고 본격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80년대 본격화된 경제성장 속에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기업간 경쟁이 격화된 여파였다. 두산은 차입금 증가 등의 재무 부담이 만만치 않았던 1996년 29개 계열사를 23개로 축소하고 보유 부동산은 물론 3M과 코닥, 네슬레 지분을 매각했다. 주력 기업이던 음료사업까지 코카콜라에 넘기는 대규모 수술이었다. 당시 정리된 소비재브랜드만 20개에 달한다.
 
그룹을 수 십여 년 이끌어 온 소비재 사업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수술은 수 년 뒤 크게 빛을 발했다. 바로 뒤이어 IMF 사태가 온 것. 두산이 선제적 구조조정의 교과서로 불리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대규모 차입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해온 대기업들은 국가 부도 사태에 줄줄이 무너졌다.
 
당시 30대 기업 중 과반수가 무너졌지만 예방 주사를 맞은 두산은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IMF 사태 당시부터 두산은 남은 23개 계열사를 ㈜두산과 두산산업개발, 두산포장, 오리콤 등 단 4개 회사로 대통합, 또 한 차례의 수술을 단행했다. 당시 구조조정의 밑그림을 그린 인물이 이번에 여론의 뭇매를 한 몸에 맞고 있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당시 기획조정실장)이다.
 
선순환적 성장을 이어가기 위한 카드로 두산이 선택한 것은 중공업이었다. 이후 두산은 2000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고 중공업그룹으로 변신하는 데에 성공했다. 10여년 만에 소비재 주력 그룹에서 중공업 그룹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셈인데 그룹 체형 자체를 바꿔버린 일은 대한민국 기업사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다. 이 과정 역시 박용만 회장이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아 주도했다. 99년 말 1조8000억원의 매출은 2013년 22조원으로 10배 넘게 성장했다.
 
두산은 이제 또 한 차례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짙어진 글로벌 경기불황에 건설과 조선, 중공업 기계 등의 주요 사업들은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다. 결국 두산이 면세점 카드를 꺼내든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이제 유통사업을 그룹의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중공업 중심의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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