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가 우리나라 첫 고속도로로 이름을 올린 지 불과 수 십여 년밖에 안 됐는데 어느새 우리나라에 개통된 고속도로가 총 42개나 된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다. 개수가 상당한 만큼 이름이 지어지게 된 사연도 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경부고속도로나 경인고속도로, 또는 영동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등 고속도로가 이어주는 또는 통과하는 지역의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들이 대다수다.
 
그런데 유독 독특한 이름을 가진 고속도로가 있으니 바로 88서울올림픽을 위해 영호남 화합 차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88고속도로다. 1981년 10월 착공해 1984년 6월 개통된 88고속도로는 고속도로임에도 유일하게 편도 1차선에 불과하고 시멘트 포장으로 시공됐던 것은 물론 중앙분리대도 설치되지 않았다. 고속도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제한속도가 시속 80Km에 불과했고 정체에 피로감을 느낀 운전자들이 졸다가 사고를 내기 일쑤여서 갓길에는 ‘졸면 죽음’이라는 깃발이 곳곳에 세워진, 말 그대로 ‘죽음의 도로’로 악명이 높았던 고속도로다.
 
대구와 담양을 연결, 영호남을 이어주던 이 ‘죽음의 도로’가 오는 20일 역사적인 편도 2차선 확장 개통을 앞두고 있다. 굽어 있던 일부 노선도 바로잡혔고 광주까지 새로 신설된 구간에서는 깔끔한 아스팔트 포장에 중앙분리대까지 놓여있다고 하니 많은 운전자들은 88고속도로가 이 ‘죽음의 도로’라는 오명을 벗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제한속도도 100Km로 높아졌고 구간 직선화로 구간 길이가 오히려 단축됐으니 주행 시간 단축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 새 도로의 명칭을 둘러싸고 ‘아이.서울.유’에 이어 또 하나의 촌극이 빚어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국토부는 고속도로 명명 원칙상 지역과 지역의 이름을 따야 한다면서 ‘광주대구 간 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88고속도로라는 이름을 대체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줄이면 ‘광대’가 되는데 광대고속도로라니. 조롱감밖에 더 되겠는가.
 
더욱이 어감도 뜻도 너무도 훌륭한 ‘달빛고속도로’라는 제안이 광주시와 대구시에서 제시됐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누가 보면 모든 고속도로들의 이름이 원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지 알겠지만 이미 88고속도로 자체가 그 원칙의 예외이고 중부고속도로나 영동고속도로 등 지역과 지역의 이름을 따지 않은 예외도 엄연히 존재한다.
 
달빛고속도로라는 명칭은 대구의 옛 명칭인 달구벌과 광주의 옛 명칭인 빛고을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명칭이다. 국토부의 주장처럼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이름은 아니지만 어감이 워낙 탁월하고 그 뜻 역시 지역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에 이 이름을 채택해도 전혀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더욱이 지리산을 통과해 영호남을 바로 잇는 도로라는 점에서 예쁘고 어감 좋은 명칭은 지역감정 완화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명문팀인 광주의 KIA 타이거즈와 대구의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최근 들어 우호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달빛동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팬들 사이에서 이에 대한 반응들이 매우 좋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이름이 주는 심리적 효과를 감안하면 달빛고속도로가 광대고속도로에 밀린다는 사실이 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당장 광주시·대구시 의원들과 지역 주민·언론들은 물론이고 한글문화연대까지 달빛고속도로의 채택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한글문화연대는 원칙이나 규정만을 따지지 말고 우리말로 지은 옛 지명인 달구벌과 빛고을을 살려 쓰는 일에 앞장서 달라는 입장을 밝혔는데 백 번 공감하는 바다. 이미 우리는 88고속도로를 통해 수 십년 이상 가는 고속도로의 이름이 갖는 효과를 백 번 체감한 바 있다. 국토부가 부디 여론에 귀를 기울여 현명한 결정을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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