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4차례 희망퇴직…사원·대리급 무차별 퇴직 질타

▲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8일부터 오는 18일까지 국내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무직 300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및 1년 무급휴직 신청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인프라코어
최근 두산그룹의 대표 계열사이자 국내 대표 건설 중장비 제조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가 올해 들어서만 4번째 희망퇴직 접수에 나서면서 내외부에서 “너무하지 않느냐”는 강한 불만에 직면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8일부터 오는 18일까지 국내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무직 300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및 1년 무급휴직 신청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인프라코어의 희망퇴직은 올해 들어서만 4번 째다. 지난 2월과 9월에는 과장급 이상 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고 지난 달에는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던 생산직 전 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세 차례의 희망퇴직을 통해 회사를 떠난 인원은 기술직 450여명을 포함, 600여명 가량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회사 측은 건설경기 부진에 중국 시장의 침체까지 겹치면서 수익성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또 한 차례 희망퇴직에 나섰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매출 감소와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사업 정상화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이 밖에도 브라질공장의 생산을 중단하는 등 해외 적자 법인의 생산을 중단하고 판매를 최소화하는 한편 불필요한 업무 제거, 사업의 우선순위화 및 선택과 집중, 구매 혁신 등으로 연간 3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줄이겠다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섰다.
 
손동연 두산인프라코어 사장은 시장 상황에 맞게 조직과 인력을 조정하는 것은 사업 정상화를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조치라고 밝히고 하루 빨리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시장 등 위기 곳곳에서 감지
실제 두산인프라코어의 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올해 건설기계 시장은 지난해보다 25%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두산인프라코어가 집중해 온 중국 시장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50%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중국 내 굴착기 시장 점유율은 판매량이 50% 넘게 감소하면서 2010년 15%에서 최근 7~8%까지 반토막났다. 경기도 좋지 않은 데다가 싼이중공업 등 중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보폭을 넓힌 영향이다.
 
이에 두산인프라코어는 중국 옌타이에 위치한 굴착기 생산라인 3개 중 1개 라인을 이미 올해 상반기 가동 중단했다. 생산 규모 역시 연간 3만여대에서 1만대 후반으로 반토막났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224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447억원에 비해 35%나 감소했다. 당기순손실이 246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55억원 흑자에 비해 급반전했다. 연결기준으로 두산인프라코어의 올해 3분기 매출액은 1조7300억원을 기록, 3.4% 감소했고 당기순손실이 2121억원에 달해 적자전환했다.
 
◆공작기계까지 판다…전사적 자구노력 中
 
▲ 이번 희망퇴직으로 최근 노동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쉬운 해고’ 논쟁과 맞물려 두산그룹의 이미지 실추 가능성까지 감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는 상황인데다 향후 전망도 어둡다는 점에서 전사적 차원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두산인프라코어는 희망퇴직 외에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알짜 사업부인 공작기계사업부(이하 두산공작기계·가칭)를 떼어내는 것을 전제로 경영권 매각까지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두산공작기계는 최근 3~4년간 10%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왔다. 매출액은 조 단위를 뛰어넘고 세계 4위의 우량 매물이다.
 
올해 2분기 두산공작기계의 매출은 3567억원으로 두산인프라코어의 전체 매출 18.1%를 차지했고 영업이익은 42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11.9%로 건설기계 부문(5.6%)이나 엔진 부문(2.5%)를 압도한다.
 
이에 두산인프라코어가 처음 두산공작기계의 매각을 추진할 당시만 해도 지분 49%만 팔고 경영권은 유지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두산공작기계의 존재감이 상당했던 셈이다. 하지만 경영권이 포함되지 않은 지분 매각에 대해 시장의 반응이 차갑워 두산은 울며 겨자먹기로 지분 100%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그만큼 두산인프라코어의 구조조정 의지가 가볍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두산공작기계의 가치는 총 1조8000억원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현재 치열한 인수전이 물밑에서 벌어지고 있다. 두산그룹 측은 최대 2조원까지 바라고 있으나 인수 후보인 MBK파트너스 등 대형 사모펀드들은 1조원대 초반을 바라고 있는 분위기다. 본입찰은 오는 21로 예정돼 있다.
 
◆“희망퇴직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지적도
이처럼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영 정상화 노력은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그만큼 회사의 위기의식이 남다르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만 4번째 진행되는 희망퇴직의 경우 직원들의 생계와 직결된 만큼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600여명이나 짐을 쌌는데 한 해가 지나가기도 전에 또 사무직 전 직원을 대상으로 또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다.
 
특히 이번 희망퇴직은 사무직 사원과 대리급 직원을 총망라한 ‘전 직원 대상’이라는 점에서 힘들게 대기업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젊은 직원들이 퇴직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희망퇴직이 장기 근속자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
 
실제 내부에서는 젊은 사원들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두산인프라코어 직원들의 블라인드 캡처 화면에는 “사원·대리급은 90%가 전멸했고 중역 자제들은 잘 있다”는 내용이나 “29살에 명퇴 당하는 경험을 다 해본다”, “정직원 여사원 중 23세 최연소 명퇴도 있는 것으로 안다”는 직원들의 반응이 담겨 있다.
 
이에 누리꾼들은 두산그룹의 모토가 ‘사람이 미래다’라는 점을 재조명하며 “마지막이 돼야 할 사원·대리급들을 먼저 자른다는 회사가 제대로 된 회사냐”, “밑에서부터 짜르고 있다는 것은 기업의 존속을 생각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질타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주요 대기업들의 하반기 공채가 이미 마무리된 상황에서 1년여 정도의 급여만 받고 희망퇴직을 하게 된 젊은 직원들의 불만은 상상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최근 노동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쉬운 해고’ 논쟁과 맞물려 두산그룹의 이미지 실추 가능성까지 감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두산인프라코어 직원들의 블라인드 캡처 화면에는 “정직원 여사원 중 23세 최연소 명퇴도 있는 것으로 안다”는 등의 직원들 반응이 담겨 있다. ⓒ블라인드
◆“사실상 정리해고…야구단 운영할 때인가”
물론 두산인프라코어 측은 희망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희망퇴직이라는 입장이지만 회사 내외에서 부서별로 일정 인원이 할당됐다거나 희망퇴직자 명단이 선정됐다는 얘기 등이 끊임없이 나오면서 사실상 두산 측의 해명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앞서 이달 초 한 언론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는 노조 측에 생산직 희망퇴직 당시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은 20여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논의하자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찍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들은 대기발령 상태로 노조 측은 회사 측의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희망퇴직에서도 부서별로 25% 내외의 인원이 할당됐고 구매·구매 지원 등 일부 부서는 50%가 구조조정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더욱이 노조 측에 따르면 희망퇴직으로 지나치게 많은 인원이 빠져 현장에서 일이 잘 돌아가지 않아 최근 사측은 퇴직자들에게 1개월짜리 기간제 계약을 제시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대기업이 정규직을 내보낸 뒤 비정규직으로 활용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이냐는 비판이 집중되는 이유다.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이번에 퇴직하게 됐다는 한 직원은 댓글을 통해 “위기에 빠졌다면서 현장 직원들을 대거 내보내고 사원과 대리급까지 앞장서서 내보내는 그룹의 총수는 야구장에 가서 두산 베어스 야구단의 우승을 즐기고 몇 몇 선수에게 수 년간 100억원 가까운 연봉을 안겨주니 솔직히 상대적 박탈감이 엄청나다”고 울분을 토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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