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의 연말 예산집행 구태
지자체들의 연말 예산집행 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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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강수 칼럼니스트
예산이 없다며 정부 지원을 호소하는 많은 지자체들이 실제로는 편성된 예산조차 다 쓰지 못하고 있는 구태가 올해 더욱 심각하다는 씁쓸한 소식이 들린다. 더욱이 많은 지자체들이 의미 없는 지역 축제와 구조물 건립 등으로 예산을 낭비하면서 뒤로는 주민세를 올리는 등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현실이라 주민만 봉이냐는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하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의 예산 집행률이 11월 말 기준으로 80%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 쓰지도 못하고 내년으로 넘겨지는 예산이 수 천억원에 달한다고 하는데 예산 담당자들은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연도폐쇄기가 2개월 당겨진 연말로 변경됐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 그간 연내 집행이 다 안 됐던 금액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예산 집행률을 높이기 위해 연말이면 도로를 갈아엎는 익숙한 풍경이 옳은 것인지, 남겨서 내년으로 넘기는 금액이 많은 것이 옳은 것인지를 비교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이월 금액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는 반박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논쟁은 잘못된 예산 편성의 결과를 두고 벌이는 의미 없는 갑론을박에 지나지 않는다.

연말이면 반복되는 구태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지자체들이 예산을 나 몰라라 식으로 편성부터 하고 보기 때문이다. 방만하고 비계획적인 예산 편성과 집행으로 효율적인 재정 운영이 저해되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멀쩡한 도로가 엎어지고 문제가 없던 인도에 각종 구조물들이 설치되고 있다. 이게 다 주민들의 세금인데 애초에 예산 편성 단계에서부터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것 아닐까.

허술한 예산 편성은 정작 자금이 절실한 다른 사업의 발목을 잡아 행정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전국 모든 지자체는 나름의 시급한 현안들이 있다. 더 시급한 사업에 투입돼야 할 예산이 이런 저런 이유로 다 쓰여지지도 않은 채 보도 블럭이나 갈아엎는 데에 쓰이는 것은 단순히 남는 돈을 처리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적인 사업 진행을 가로막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 마포구에서는 수 백억원이 소요되는 도서관 사업이 첫 삽을 뜨자마자 구의회와의 사전 업무 조율은 물론 심지어 용역의뢰도 없이 증축안과 함께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건설을 담당할 시공사 선정시 예상 공사비용보다 수 십억원이 남았는데 이 돈을 증축에 사용하겠다는 것이 구청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구청의 사업계획, 용역 등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돈으로 다른 적절한 사업비용을 충당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계획에 없던 도서관 한 층을 더 늘리자는 얘기인데, 주민들의 지갑에서 나오는 예산을 어떻게 보기에 이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층이 더 늘어난다고 도서관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필요한 일이었으면 처음부터 한 층이 더 있는 계획으로 추진을 했어야 할 것 아닌가.

정부도 지자체들이 예산 타내기 경쟁을 벌이고 방만하게 경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최근 행자부가 지자체들의 예산 집행 속도를 높여주겠다며 시행령을 개정했다고 하는데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불용 예산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투명성과 공정성을 원칙으로 예산 심사를 철저히 강화해 적절히 예산을 분배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지자체들의 연말 예산 털기 관행이 도대체 언제적부터 제기된 얘기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지방자치 20년을 맞은 2015년 연말에도 변함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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