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각계의 포스트월드컵에 대한 대책 마련이 분주하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월드컵대회가 우리 국민에게 남긴 것은 뜨거운 함성과 감동의 열기뿐이 아니었다. 그것은 IMF 이후 침체되어 있던 사회적 분위기와 강대국의 변방이라는 소외감에서 해방되는 진정한 축복과 희망의 메시지였다. 정부를 비롯한 사회 각계는 이러한 국민적 결집의 힘을 놓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상당히 고심하고 있는 모습이다. 향후 100년 안에 다시 오기 힘들다는 이러한 '월드컵 특수'를 단순한 국가적 추억으로 접기에는 그 가치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정부 "일류국가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것" 정부는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로 인해 국가 이미지가 크게 상승할 것으로 보고 일류국가로 도약하는 디딤돌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2일 '김 대통령은 월드컵이 끝난 뒤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를 국민화합과 세계 일류국가 도약의 발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다각적인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 대통령은 월드컵이 끝나는 대로 경제, 외교안보, 교육인적자원, 사회문화 등 4대 분야별 장관회의를 열어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 극대화 방안을 비롯한 `포스트 월드컵(Post Worldcup)' 종합대책을 수립, 시행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정부의 이 같은 의지는 월드컵 개막과 함께 시작된 각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김 대통령은 정상들과의 총론적 대화에 그치지 않고 경제분야의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외국의 고위 정책결정권자들과도 함께 만나 경제협력과 투자증진 같은 실질적인 협력문제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정보기술 분야의 기술적 우수성에 대한 이미지가 계속 상승해 향후 5년간 매년 약 20% 안팎의 수출실적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그는 "정보기술 분야 수출이 올해 510억 달러를 달성하고, 매년 20% 안팎 증가해 2006년에는 900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월드컵 외교가 '정보기술 월드컵 홍보'를 통해 세일즈 외교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 이 달 중에는 또 '아시아 25개국 정보기술장관회의'와 '한중 정보통신업협력회의(차관급)', '아시아 및 중남미 지역 20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운영자 포럼' 등이 열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추정한 이번 월드컵 경제효과는 직접투자와 소비지출을 합해 약 3조 5천억원이 넘는다. 또 생산유발효과 11조 6천억원, 부가가치 창출 5조 4천억원, 고용창출효과는 36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여 이번 월드컵이 최근 불기 시작한 국내 경기의 활성화에 상당한 탄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코리아 이미지 "업그레이드" 전문가들은 국가의 신용도를 올리는 것보다 세계 각국 소비자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국가의 이미지는 쉽게 변하기도 힘들지만 일단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미지 제고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직접적인 물품 구매로 이어지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으로 인해 해외무역관에서는 코리아의 국가 이미지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도 급상승하고 있다고 긴급 타전해오고 있다. 한국이 끈질긴 투혼으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하는 세기의 이변을 만들어내자 세계인들은 상당히 놀라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성숙된 국민의식은 물론 첨단 정보기술 및 디지털산업의 기반 위에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있는 월드컵은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으며 국내 기업들의 발빠른 마케팅 전략으로 인해 제품 인지도를 수직 상승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이는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한국이 놀라운 잠재력을 보이며 16강에 오른 데 이어 세계 강호들을 잇따라 물리치면서 아무도 장담하기 어려웠던 8강과 4강 진출까지 이뤄내 세계인의 시선을 붙들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고비마다 전문가 예상을 보란 듯이 깨버린 태극전사들의 선전은 세계인들에게 한국인의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전국을 뒤덮은 붉은색 응원 물결은 한곳에 힘을 집중하는 한국의 저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때문이다. 실제 정부 기관이나 기업의 해외망을 타고 속속 전해지고 있는 소식은 `한국과 한국상품에 대한 이미지가 뜨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해외에 주재중인 우리 기관들은 `코리아'에 대한 현지인들의 생각이 서서히 바뀌는 분위기가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라는 것이다. KOTRA 해외무역관을 통해 들어온 소식을 보면, 우리 상품의 수입시장 점유율이 1% 미만인 파리 무역관이 '한국팀이 월드컵에서 상승세를 보이면서 홍보 효과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평가한 것을 비롯해 다른 무역관도 비슷한 의견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포르투갈의 리스본 무역관은 "한·포르투갈전을 전후해 질서 있는 응원 등에 대해 우호적인 보도가 많이 나오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진 것 같다"면서 "국가 이미지의 상승이 기업들의 상품 이미지 제고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되며 활발한 스포츠마케팅을 벌여 수출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의 밀라노 무역관도 "한·이탈리아전의 심판 판정에 대해 불만이 제기됐지만 반한 감정이 우려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며 "아직까지 수출 등에 특이한 추세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산업자원부도 월드컵 개막식 당시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CEO)급 50여명을 불러 행사를 벌인 결과, 참석 CEO들을 한국의 `우군'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하는 한편 경기가 거듭될수록 `코리아 이미지'가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KOTRA와 함께 해외소비자를 대상으로 국가 이미지조사 실시를 추진과 함께 나아가 `IT강국', `비즈니스 중심지'로서의 이미지를 확산시키고 수출 및 경제협력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재계, 월드컵 마케팅 총력 삼성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코리아' 브랜드의 이미지가 개선되고 한국이 첨단기술산업 강국임이 입증된 것으로 판단, 삼성전자를 앞장세워 `삼성' 브랜드의 세계 일류화를 굳히기 위한 해외마케팅을 강화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IMT2000 등 차세대 이동통신장비 수주를 늘리고 일류 상품군에 속하는 휴대폰, DVD, 디지털TV 등 첨단제품의 수출을 확대하는 한편 부산 아시안게임의 공식스폰서로서 아시안게임을 활용한 스포츠마케팅도 본격화하기로 했다. LG 역시 국가위상 제고와 동시에 해외에서 `고급'으로서의 LG 이미지를 전파하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특히 LG전자의 경우 대회기간 한국, 프랑스, 러시아 등 3개국 월드컵대표팀에 대한 공식후원을 통해 중국과 중동, 중남미 등 해외 전략시장에서의 브랜드 인지도 상승세에 한층 힘이 붙을 것으로 기대했다. 중국과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해외 딜러들이 이번 월드컵으로 한국과 LG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높아졌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왔다는 후문도 들려오고 있다. LG는 이에 따라 높아진 국가 위상을 LG의 대외신인도 상승에 연결시키기 위해 앞으로 국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IR활동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또 현지화 전략을 바탕으로 폴란드, 러시아, 브라질 등 월드컵 본선 참가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전략시장에서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할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SK는 전략시장인 중국 내에서 SK에 대한 인지도가 상승함에 따라 한국, 중국, 일본 축구리그 후원, 아시아의 CDMA 벨트 형성, 정보통신 및 화학 분야 중국진출 등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월드컵 공식스폰서인 현대차는 월드컵 경기장 광고 등을 통해 해외에서 크게 높아진 브랜드 인지도와, 초청 및 자비 방한을 통해 경기를 보고 공장을 둘러본 2천여명의 해외 딜러가 쏟아낸 격찬을 바탕으로 다각적인 판매확대 방안을 모색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월드컵 경기와 공장을 보고 귀국한 딜러와 미니축구대회 참가자 등이 잇따라 감사의 편지를 보내오고 있다"며 "이들은 한결같이 한국과 현대차의 열성 팬이 돼 우리 나라와 현대차를 널리 알리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또 미국 판매법인인 현대모터아메리카(HMA) 노승욱 과장은 "한국팀 선전이나 현대차 후원 외에도 한국이 포르투갈에 승리, 미국팀이 16강전에 진출하게 된데다 언론도 최근 현대차를 잇따라 호평, 브랜드 이미지가 급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효성 관계자는 "최근 해외바이어들의 분위기가 월드컵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개선된 것을 느낄 수 있다"면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는 없지만 향후 제품이미지 개선과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히딩크 리더십(Hiddink Leadership) 각계 확산 현재 우리는 역사상 처음 경험하는 신명나는 민족 대축제를 즐기고 있다. 이 엄청난 국가적 축제의 마당은 우리 축구대표팀의 피땀어린 노력과 불굴의 정신력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는 말처럼 거스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리더십이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히딩크 감독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은 그 울림이 상당히 크고 길다. 정계나 재계 모두 그의 '리더십'을 학습하는 데 몰두하고 있으며, 여러 민간 경제연구소도 그의 리더십을 한국 정치나 재계에 접목시키는 논리를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히딩크 리더십의 핵심은 '도전정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5번이나 출전한 월드컵에서 단 1승조차 거두지 못한 국가대표팀의 감독직을 히딩크가 수락한 것은 모험 그 자체였다고 하겠다. 어찌 보면 자신의 화려한 이력에 흠집이 될 수도 있는 이러한 위험을 감수한 것은 그가 지닌 도전정신에서 비롯된다. 그는 월드컵 8강에 오르고도 여전히 '(승리에)배가 고프다'고 할 정도로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그의 이러한 도전정신은 우선 한국 선수들에게 뚜렷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모두가 16강의 꿈을 의심할 때 그는 '한국 선수의 자질은 충분하다'는 말로 선수들과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는 자질을 충분히 갖고 있기 때문에 잘 조직하면 16강이 가능하다는 논리인데 어찌 보면 스스로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는 말이기도 하다. 조직의 수장에게 카리스마적 지도력이 필요한 것은 이처럼 책임을 떠안는 부담까지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편, 히딩크가 유난히 강조한 것은 '체력'이다. 차두리나 설기현, 박지성 등에 대한 직간접적인 애정 표현은 비난도 많이 받았다. 국가 대표에게 중고등학생과 비슷한 훈련을 시키고 체력 단련이나 하고 있으니 마음 급한 사람이 보기에는 얼마나 한심했겠는가. 하지만 당장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체력'은 기업으로 치면 'R&D(연구개발)'와 비슷하다. R&D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성과를 내지 못하면 기업들도 주주들의 아우성에 괴롭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은 또 축구나 기업 모두에게 기본이 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기술이 없는 기업이 영생할 수 없듯 체력 없는 팀의 한계도 분명하다. R&D 투자는 '비즈니스 모델 확립'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히딩크의 독특한 체력 강화 프로그램은 승리를 위한 최소한의 요건으로 유럽 팀에 약한 변모를 일신시키려면 이러한 투자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래야만 최소한 '지지 않는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으로 치자면 부도를 내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다음에야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 기업들에게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 개발인 셈이다. 히딩크의 비즈니스 모델은 R&D 투자에서 얻은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빠른 조직 축구'라 할 것이다. 이는 지난 4일 장신 군단 폴란드와의 대결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불굴의 투지가 드러난 것이다. 히딩크는 '강인한 체력과 빠른 조직 축구'란 비즈니스 모델을 달성하기 위해 시스템 경영을 도입했다. 감독으로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이면서도 제1의 가치를 조직의 목표에 두고 이를 시스템으로 풀어나갔다. 타고난 신체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 즉 비즈니스 모델이 히딩크에겐 '조직 축구'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튀는 스타의식에 대한 경고다. 걸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타의식 때문에 자칫 조직 축구에 해를 끼칠 것으로 우려됐던 안정환과 김병지에 대한 오랜 경고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안정환과 김병지는 1년 가량 대표팀에서 탈락한 뒤에야 히딩크호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될 수 있었다. 투명경영은 지금까지 한국 대표팀을 맡았던 국내 어느 감독보다 히딩크가 지닌 강점으로 부각된다. 그에겐 어느 선수에게도 학연이나 지연이 있을 리 없었다. 오로지 비즈니스 모델을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선수만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체력'과 '기량'이었던 것이다. 차두리나 박지성을 발탁했을 때, 또 안정환이나 김병지를 제외시켰을 때, 간혹 불만과 의혹이 일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같은 불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에겐 팀 내외를 막론하고 부정과 의혹이 개입할 소지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이방인으로서 국내 축구인으로부터 질시의 대상이었을 그는 어디서도 부정을 저지를 수 없는, 그래서 척박한(?) 경영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히딩크 리더십은 '원칙주의'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른바 '정도경영'이라고도 할만한 이 원칙은 비리로 얼룩졌던 국내 기업들에겐 큰 교훈이 되고 있다. 월드컵 후유증 극복이 관건 한국 축구가 계속해서 일을 내고 있다. 8강을 넘어 4강 이제는 우승을 바라보는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해외 언론의 말처럼 국가대표팀의 승승장구는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저돌적이다. 불붙은 가속은 이제 제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차분히 월드컵 이후를 대비하자는 목소리는 너무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칫 상승일로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해당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다. 지금은 모처럼 맞은 '국운융성'의 호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보다 냉정하고 차분한 자세가 필요하다. 목표를 초과달성한 우리의 화려한 잔치는 곧 끝난다. 시점이 경기의 패배이든 월드컵대회 폐막이든, 열병과도 같은 6월 한 달은 종국을 향해 달려간다. 성취감과 포만감의 뒤편에 상실감과 허탈감이 통과의례처럼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월드컵에 집착하고 열광하는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게이트와 정치권의 소모전은 국민을 낙망하게 했다. 세무조사로 타격 받은 일부 언론도 작심한 듯 이 같은 난타전에 끼어 들어 신나게 부채질을 해댔다. 통합조정 기능을 잃은 정치는 더 이상 국민의 구심점이 될 수 없었다. 지방자치 선거투표율 48%는 이에 대한 분명한 국민들의 태도를 보여준다. 대통령 아들의 비리연루는 민주당의 참패를 초래했다. 반사적으로 한나라당이 대승했으나 그렇다고 국민의 '우호적 지지'를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전개된 월드컵대회 개막과 한국대표팀의 선전은 국민을 극도로 매료시켰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 꽉 막힌 체증의 해소라고나 할까. 현실의 실망은 스포츠에 대한 열망으로 전이됐고, 이는 갈수록 상승작용을 일으켜 지금과 같은 '과열현상'을 낳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이 정신적 활로이자 탈출구였던 셈이다. 우리 국민은 이번 월드컵에서 정말 가슴 벅찬 경험을 하고 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저력을 확인함은 물론 '민족이 하나로 화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발견했다.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통쾌함도 덤으로 맛보았다. 그러나 이제 내려가는 일도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다. 기우일지 모르나 며칠 앞으로 다가온 7월에 우리는 어쩌면 깊은 공허감에 빠져들지 모른다. 단꿈에서 깨어나 다시 만난 현실이 일장춘몽의 허전함을 안겨줄지 모른다. 하산길이 그래서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공허감의 요체는 '구심점 상실'이 될 것이다. 대망의 월드컵 첫승에서 16강, 8강으로 내달리며 부풀어 오른 고무풍선이 한 순간에 바람을 잃어버리는 심리적 공황상태라고나 할까. 집안 대사를 치른 뒤 홀로 남은 주인의 허탈함일 수도 있다. 월드컵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한 구심점이 돼 있었다. 위기는 기회라고도 하고 기회 역시 위기라고도 한다. 우리는 어쩌면 기회이자 위기, 위기이자 기회인 시점에서 선택을 갈림길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월드컵으로 인해 모처럼 찾아온 국민화합과 재도약의 기회를 공허하게 날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사회 각계, 국민 모두가 합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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