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을 대로 곪은 코드인사 … 들러리를 세워 편법 공모형식

"공단 이사장 공모제는 3류 쇼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권이 말기에 접어들면서 낙하산 논란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최근 논문표절시비에 휘말린 교육부총리, 부산정권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임명 움직임, 5.31선거에서 낙선한 이재용 전 환경장관의 건보공단 이사장 공모, 증권업계 경력이 전무한 여권 출신 회계사의 증권선물거래소 상임감사 내정까지 임기 말 노무현 정권의 막무가내식 보은. 낙하산 인사가 지탄을 자아내고 있다. 시민단체와 야당, 심지어 여권에서까지 이같은 낙하산 인사를 꼬집고 나서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오히려 '낙하산도 성공한 케이스가 있다'고 하는 등 고집을 부리고 있는 양상이다. 뿐만 아니라 야당 반발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총리에 앉힌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제자 논문을 베껴 쓴 것이 들통나 파문을 야기하는 등 노 대통령의 말처럼 성공한 케이스인지 의문이다. 더구나 잇따른 선거참패로 가뜩이나 민심이반이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의 실정에 있다고 여당이 울상을 짓고 있는 가운데 부산정권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문 전 수석을 천정배 전 법무장관 후임으로 밀어붙이는 분위기여서 여당내 반발마저 낳고 있다. 문제는 노 대통령의 코드인사가 임기 말 선심성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참여정부 출범부터 행해진 것으로, 그동안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왕의 남자로 불린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KBO(한국야구위원회) 신상우 총재 내정까지 한 두번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열린우리당에서는 의원들은 성명을 통해 '국정쇄신'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노 대통령은 "외부 인사가 아니면 폐쇄적 인사를 하는 게 더 좋다는 것이냐"고 당당하게 나서고 있는 상태여서 불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 결국 국민과 시민사회 단체, 여야를 막론한 국정쇄신 요구, 그 어떤 것도 노 대통령의 코드인사 추진에 제동장치가 되지 못하고 있다. }◆건보공단 이사장에 이재용 前장관?… 발탁 들러리說 뒤숭숭 '노 대통령의 사람은 끝까지 보은을 받는다'는 공식이 성립되는 듯하다.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보은·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고 있는 것. 이 전 장관은 안종주 현 공단 상임이사와 함께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공모에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자리는 추천위원회가 3명을 추천하면 복지부장관이 이중 2명을 대통령에 제청하고, 심평원장은 추천위원회로부터 3명을 추천받아 복지부장관이 직권으로 임명한다. 따라서 보건의료단체와 노조 등은 기관장 임명을 앞두고 이른바 '내정설'과 '들러리설'이 마치 예정된 시나리오처럼 들어맞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사회보험노조는 성명을 내고 "두 명만 응모한 결과는 공단 이사장이 이미 (이 전 장관으로) 내정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라며 "보건복지부는 3류 저질 이사장 공모 쇼를 즉각 중단하라"고 맹비난했다. 사회보험 노조는 또 "공모 마감시간까지 다른 지원자가 없자 이 전 장관과 동향인 현직의 공단 A모 상무이사가 들러리로 지원해서 각본대로 짜고 치는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규탄했다. 의료단체의 한 관계자는 "뭐라 변명하든 복지부가 인사권을 장악하려 한 시점에 특정 인물들의 내정설이 흘러나왔고 실제 그 인물들이 유력 후보로 부상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상층부에서 내정자 정보를 흘려 다른 이들이 지원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공모제는 형식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낙하산, 보훈인사를 하면서 이제는 이를 감추기 위해 들러리까지 동원했다"며 "정부가 민심과 여론을 무시한 인사의 결말이 어떤지 알면서도 또다시 국민을 외면하는 일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노 대통령이 낙하산 인사도 성공한 사례가 있다고 했는데 과연 이런 인사를 국민이 성공한 경우로 볼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은 2004년 총선에서 대구에서 여당으로 출마해 낙선한 뒤 환경부장관에 기용됐고 다시 지난 5월 지방선거 때 대구시장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노조는 유시민 장관 취임 이후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의 이성재 이사장이 수차례 갈등을 빚었던 것도 결국 '입맛에 맞는 사람을 이사장 자리에 앉히기 위했던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유야 어떻든 이 전 장관이 건강보험관리공단 이사장 자리에 앉게 된다면 현 정권은 코드인사의 주홍글씨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게다가 '17대 총선 출마 낙선→환경부 장관→5.31 지방선거 대구시장 출마 낙선→건강보험관리공단 이사장'이라는 이력이 현실화되면 '희대의 보은인사'라는 비판도 나올 법하다. 이런 가운데 노 대통령의 25일 국무회의장 발언은 이 전 환경부장관의 건강보험관리공단 이사장 임명을 위한 '길 닦기'라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라고 하는데, 코드가 안 맞는 인사를 하면 잘 된다는 것이냐"며 "외부 인사가 아니면 폐쇄적 인사를 하는 게 더 좋다는 것이냐"고 코드인사 논란에 대한 비판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은 "정부혁신에 대한 이해를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을 원칙적으로 우선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혁신을 제도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에, 이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우선 발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또 하나의 원칙은 참여정부 정책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며 "예를 들면 공기업 정책과 관련해 참여정부 정책과 무관한 사람이 임원에 임명된다면 해당 공기업을 무책임하게 운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이런 원칙하에 해당 공기업의 성격에 맞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증권선물거래소도 문제… 靑 낙점說 상임감사 후보 건보공단도 난리지만 한국증권선물거래소도 5·31 지방선거에서 여당 측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 캠프의 정책팀장을 지낸 회계사 김모씨를 상임감사에 내정되자 노조가 '정치적 낙하산'이라고 반발하고 나서는 등 정권코드인사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노조가 낙하산 철회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밝히자 증권선물거래소는 지난 25일 상임감사 선임을 재검토하기로 했지만 논란은 쉽사리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권 인사의 증권거래소 감사 임명 시도자체로도 '자리주기', '끼워 맞추기' 등으로 인한 후유증이 남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증권거래소가 노사간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낙하산 예찬' 발언을 하자 후유증의 통증이 나타나고 있는 것. 사무금융연맹은 청와대의 '낙하산 예찬' 발언에 대해 27일 논평을 내고 "26일 청와대가 '낙하산의 본질은 개방이다', '정치인 출신이 일을 더 잘 한다'는 궤변에 가까운 브리핑을 했다"면서 "이는 낙하산인사로 가열된 논란을 무마시키기보다는 불난데 더욱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연맹은 또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의 노 대통령 발언을 꼬집으면서 "이는 최근 증권선물거래소 상임감사 내정과 문재인 전 정무수석의 법무부장관 기용설 등 다시 불붙고 있는 현 정권의 낙하산 인사 및 코드인사 논란에 대통령이 직접 쐐기를 박은 것이다"면서 "대통령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망국적인 낙하산 인사를 옹호하고 나선 것은 실망과 분노를 넘어 할 말을 잃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연맹 정용건 위원장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낙하산 인사의 망령이 개혁을 표방하는 참여정부에서 더욱 횡행하고 있어 걱정이 태산이다"면서 "망국적인 낙하산 인사를 대통령이 옹호하고 청와대 인사관리비서관이 찬양하고 앉았으니 참으로 점입가경이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청와대 비서관의 논평과 노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거래소 상임감사 낙하산 인사에 청와대가 직접 개입했음을 공식적으로 시인하는 것"이라며 "청와대에서 주식회사인 증권선물거래소의 상임감사 인선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 행위인가"라고 따졌다. 한편, 사무연맹은 논평에서 증권선물거래소노조의 총파업 선언으로 보류되었던 증권선물거래소 상임감사 낙하산 인사가 강행될 경우, 역사상 초유의 자본시장 중단을 각오하고 사무연맹의 조직적 역량을 총동원해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애초에 논란의 불씨가 되었던 '낙하산 감사'는 선임이 보류됐지만 노 대통령과 청와대 인사들의 이 같은 발언으로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에 대한 논란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증권거래소 인사와 관련된 기자들에 질문에 대해 "청와대와 증권거래소 인사는 무관하다"면서도 "밖에서 사람이 들어오면 '낙하산 인사'이고 안에서 뽑으면 잘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과거 정부의 '낙하산 인사'에 대한 시각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으로 이런 접근법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곪을 대로 곪은 코드인사 코드인사의 전형으로 불리던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논물표절 시비는 노 대통령의 독선인사가 실패작으로 끝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교육부 수장이 제자논문을 베껴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다 꼬리를 무는 의혹들이 취임 2주도 안돼서 터져 나오면서 청와대와 교육부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 이런 가운데 천정배 전 법무의 후임으로 부산정권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문재인 전 청와대 수석을 앉히겠다는 움직임이 흘러나오면서 반발이 극심해지고 있다. 김병준 교육부총리 임명 과정에서 당내 반발 여론을 청와대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온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28일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김성호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과 임내현 법률구조위원장 등 두 사람을 후임 법무부 장관 후보로 건의했다. 노 대통령의 '코드 인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전달한 것이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참여정부 2인자로 불리는 문재인 전 수석이 장관에 기용되면 또다시 민심을 거스른 '코드 인사'로 간주돼 여당의 '민심 껴안기' 노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청와대는 일단 8월 둘째주나 돼야 후임 인선이 이뤄질 것이나, 수해 피해 복구와 8·15 경축사 준비 등을 감안하면 8·15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에 따르면, 당초 청와대는 '7·26 재·보선' 직후 문 전 수석을 임명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 장관 사표가 수리될 무렵엔 문 전 수석과 이종백 부산고검장, 정홍원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등 3인으로 압축됐다고 한다. 이에 앞서 청와대는 7월초부터 김성호 국가청렴위원장, 임내현 열린우리당 법률지원단장, 박정규 전 민정수석도 후보자로 검토해왔다. 노 대통령의 철학에 누구보다 정통한 문 전 수석을 즉시 내정하지 못한 이유는 김 의장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까지 노골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나선 것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또한 코드 인사 논란을 빚은 김 교육부총리의 '베끼기·겹치기 논문'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복잡하게 꼬여 버린 것이다. 노 대통령이 휴가를 마친 뒤 문 전 수석을 끝까지 밀어붙일지 주목되지만 아닐 경우, 대통령의 또 다른 검사 친구인 이종백 고검장이 유력후보라는 얘기가 청와대와 법조 주변에서 나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당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겠지만 인사에 대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과 판단도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전 수석을 밀어붙여 법무장관에 앉힐 경우 여권 내 반발기류는 물론이고 부산정권 발언으로 민심이반을 일으킨 전력이 있는 터여서 이에 따른 국민들의 등돌림도 노 대통령은 코드인사를 위해서라면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