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책임경영 차원”…시장서는 ‘윈-윈’론 등 해석 분분

▲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자본잠식에 빠진 삼성엔지니어링 살리기에 나서 그간 행보와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는 배경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뉴시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자본잠식에 빠진 삼성엔지니어링 살리기에 나서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계열사들을 과감하게 정리해 온 행보와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는 배경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8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사재를 털어 삼성엔지니어링의 1조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이는 현재 자본잠식에 빠진 삼성엔지니어링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대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것에 따른 결정이다.
 
전날 삼성엔지니어링이 이사회에서 결의한 내용에 따르면 이번 유상증자에는 1억5600만주의 신주가 발행된다. 이를 위해 이사회 직전 열렸던 임시 주주총회에서는 발행 가능한 주식의 총수를 기존의 6000만주에서 3억주로 변경하는 정관 변경이 이뤄졌다.
 
예정발행가는 발행가 산정 기준 및 할인률 15%가 적용돼 7700원으로 결정됐다. 유상증자안에 의결됐던 전날 7일 삼성엔지니어링 주가는 1만3950원이었다. 유상증자가 성공하면 삼성엔지어링이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은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증자 방식은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로 진행된다. 구주주에게는 1주당 3.3751657주가 배정되며 20%까지 초과청약이 가능하다. 구주주 청약은 내년 2월 11~12일로 예정됐다. 우리사주조합원에는 총 신주발행 주식수의 20%가 우선 배정됐다.
 
일반공모 청약은 내년 2월 15~16일에 걸쳐 진행되며 신주 상장 예정일은 내년 3월 2일이다.
 
당연하게도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들고 있는 삼성 계열사들은 이번 유상증자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SDI는 지난 10월 말 실적간담회에서 “1대 주주인 만큼 삼성엔지니어링 증자 참여가 바람직하다”면서 검토할 뜻을 내비쳤다. 삼성물산 역시 최근 회사채를 발행할 때 증권신고서에서 “삼성엔지니어링이 진행할 유상증자 배정주식에 대해 참여를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 계열사들이 낼 자금은 배정된 주식을 모두 소화할 경우 2600억 원 남짓으로 추정된다.
 
◆삼성 “책임 경영 차원…상폐로 인한 주주 피해 방지 목적”
하지만 승계 자금을 마련하는 데에도 현금이 부족한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사재를 털어 삼성엔지니어링 살리기에 나선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특히 선택과 집중으로 여러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정리했던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 살리기에 나선 이유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일단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의 유상증자 참여 결정이 책임경영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이 전혀 없는 이재용 부회장은 기존 주주가 청약을 다 하지 않은 실권주에 대해 일반공모 방식으로 최대 3000억원 한도 내에서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이 같은 전제는 현재 자본잠식으로 상장 폐지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삼성엔지니어링의 유상증자가 성공을 담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분 구조상 이번 유상증자의 성공에는 소액주주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구조에서 삼성 계열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22% 가량이다. 삼성SDI가 13.1%로 최대주주 자리에 있고 삼성물산이 7.8%, 삼성화재가 1.1%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 우리사주조합이 약 2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외국인이 10% 가량을 들고 있고 국민연금도 4%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절반에 가까운 지분이 소액주주의 몫인데 그간 소액주주들이 이번 유상증자에 대거 참여할 가능성은 크게 떨어진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워낙 삼성엔지니어링의 상황이 좋지 않고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점에서다.
 
소액주주들의 불참으로 실권주가 대거 발생하면 삼성엔지니어링도 자금 확보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된다. 이 경우 상장폐지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고 상장이 폐지되면 기존 소액주주들의 피해가 막심하다.
 
▲ 전문가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승계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탐대실하지 않고 주주 친화 정책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삼서엔지니어링
◆시장도 화답…증권가도 성사 가능성 높여
따라서 삼성이 밝히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유상증자 참여 이유는 삼성그룹의 삼성엔지니어링 살리기 의지를 시장에 과시함으로써 유상증자를 성공으로 이끌고 상폐 가능성을 차단하는 동시에 일반 주주들의 피해를 막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 같은 정책은 이재용 부회장이 최근 전개하고 있는 주주 권익 보호 원칙과도 맞닿아 있다. 특히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불거졌던 소액주주 무시 논란을 겪은 이후 잇따라 자사주 매입안을 발표하면서 주주가치 제고에 나섰다. 심지어 삼성전자는 11조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매입하고 이를 전량 소각하겠다는 충격적인 방안까지 내놨다.
 
전문가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승계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탐대실하지 않고 주주 친화 정책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번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 참여 방침 역시 이러한 최근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다.
 
시장의 반응도 대체적으로 우호적이다. 1년 전 까지만 해도 5만원대에 달하던 삼성엔지니어링 주가는 실적 악화와 업황 부진에 대규모 유상증자 추진설까지 겪으면서 52주 신저가를 경신하는 등 7일 1만39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유상증자 참여 방침이 알려진 다음 날인 8일 삼성엔지니어링 주가는 1950원(13.98%) 급등한 1만5900원으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일단 오너의 의지에 대해 시장이 화답한 셈이다.
 
증권가에서도 이재용 부회장의 유상증자 참여로 삼성엔지니어링의 유상증자가 실패할 가능성이 크게 줄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적어도 이재용 부회장의 유상증자 참여 카드가 기존의 암울한 상황에 반전을 가져다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도 미래도 암울한데 왜 안고 가나” 의문도
반면 이재용 부회장의 행보에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지난해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본격적으로 삼성그룹의 사업 재편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이 과감하고 빠른 결단으로 비주력 계열사들을 정리했던 점을 감안하면 왜 삼성엔지니어링만 유독 편애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삼성엔지니어링은 실적 악화는 물론 유상증자가 성공하더라도 향후 전망까지 좋지 않아 경영 정상화가 요원한 상황이다.
 
3분기 기준 삼성엔지니어링의 자본 총계는 -3746억원으로, 자본금 2000억원과 주식발행초과금 566억원을 모두 까먹은 완전자본잠식에 빠져 있다. 유상증자 성공으로 1조2000억원을 확보하게 되면 자본잠식은 벗어날 수 있겠지만 문제는 향후 전망이 참담한 수준이라는 점에 있다. 사실상 응급조치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올해 3분기 매출액은 8570억원으로 전년대비 61.2% 급락했다. 영업손실은 무려 1조5000억원으로 자본총계가 1조334억원에서 순식간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대규모 적자의 주요 원인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의 주요 저수익 현장에서 1조원을 훌쩍 넘는 추가 공사비와 공사손실충당금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2013년 위기를 불러왔던 저가 수주가 다시 삼성엔지니어링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더욱 암울한 것은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얼어붙은 중동 지역의 플랜트 발주 시장이 해동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OPEC의 감산 실패로 국제 유가가 20달러선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산유국의 재정수지 악화는 플랜트 발주 규모에도 악영향을 부를 것으로 전망된다.
 
소액주주들이 삼성엔지니어링을 외면할 것으로 전망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증권사들 역시 이재용 부회장의 참여로 유상증자 자체는 성공할 확률이 높아졌지만 삼성엔지니어링이 근본적으로 회생하기는 아직도 어렵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최대 주주인 삼성SDI는 유상증자 참여 방침을 밝힌 후 주가가 내리막을 걷기도 했다.
 
▲ 삼성엔지니어링은 실적 악화는 물론 유상증자가 성공하더라도 향후 전망까지 좋지 않아 경영 정상화가 요원한 상황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삼성중공업과의 합병이 재추진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삼성중공업
◆‘기-승-전-합병 재추진설’?…“삼성重과의 합병 포석” 해석도
이에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유상증자 참여 카드를 꺼내든 이면에는 주주 피해 방지 이외에 다른 의도도 숨어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삼성그룹이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합병을 재추진해 중공업 부문 구조조정을 마무리짓는다는 시나리오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자본잠식을 해소한 뒤 이후 삼성중공업과 합병한다는 얘기로 지난해 합병 무산 이후 끊임없이 제기돼 오는 합병 재추진설의 일환이다.
 
이는 이번 유상증자가 총액인수 방식으로 진행돼 실권주가 발생하면 증권사들이 일단 떠안는 구조라는 점에서 나오는 시나리오다.
 
지난해 10월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주들의 반대로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합병이 실패했음을 감안하면, 삼성그룹의 지원을 기대하고 실권주를 떠안은 증권사들이 삼성그룹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할 경우 합병 성사 가능성은 크게 높아진다. 수수료는 많지 않지만 합병을 통해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면 증권사들은 경우에 따라 큰 수익을 볼 수도 있다.
 
2016년 삼성그룹 임원 인사에서 나란히 3분기 조 단위 적자를 기록한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수장들이 유임된 것도 합병 재추진설에 불을 붙인다. 이번 삼성그룹 인사에서 지난해 합병을 추진했던 당시의 수장들인 삼성중공업 박대영 사장과 삼성엔지니어링 박중흠 사장은 퇴진 예상과는 달리 전격 유임됐다. 업계에서는 두 사장이 지난해 합병을 추진한 경험이 있는 만큼 합병을 완수하고 나서 퇴진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지배력 강화에도 도움”…‘윈-윈’론도 제기돼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을 살리면 결국 지배구조에 이득이 된다는 ‘윈-윈’론도 제기된다. 현금 보유가 절실한 이재용 부회장이 괜히 사재를 3000억원이나 내놓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일단 삼성그룹이 보는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영 정상화 가능성이 시장의 전망보다 높을 수 있다는 점이 거론된다. 삼성엔지니어링은 현재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사를 진행하는 등 관계사 수주 전망이 밝은 편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이 환경 및 바이오 분야에서 삼성그룹의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금액은 향후 2조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경영 정상화에 대한 확신도 없이 수 천억 원을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내 지배력 강화에도 적지 않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 참여 전망으로 주가가 내리막을 걸었던 1대 주주 삼성SDI나 2대 주주 삼성물산은 반대로 얘기하면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영 정상화가 달성되거나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경우 수혜를 받을 확률이 높다.
 
이 중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엔지니어링의 2대 주주인 삼성물산 지분 16.54%를 보유하고 있고 계열사 및 특수관계인들의 삼성물산 지분은 총 40%를 넘는다. 특히 삼성엔지니어링 최대 주주 삼성SDI는 2대 주주인 삼성물산의 지분도 4.77%를 보유하고 있어 삼성엔지니어링의 실적 개선시 직·간접적인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삼성SDI가 수혜를 입게 될 경우 삼성SDI의 최대 주주이자 삼성그룹 지배의 핵심인 삼성전자 역시 간접적으로 보유 자산 가치 상승 수혜를 입는다. 삼성전자는 삼성SDI의 지분 19.58%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삼성전자의 기업 가치 상승은 향후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시나리오로 거론되는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에 이은 삼성물산과의 합병 방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현재 삼성물산에 비해 삼성전자의 시장 가치가 현저히 낮기 때문에 이를 정상화시킴으로써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주들이 반발했던 이유인 합병 비율에 대한 반발 소지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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