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결함, 독점 이어와…“경쟁력 갖춰야”

▲ 현대로템 및 협력사들은 최근 정부 차원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정부의 제도적, 외교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뉴시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철도제작사 현대로템이 극심한 해외 수주 가뭄을 겪고 있다. 위기를 느낀 현대로템 및 협력사들은 최근 정부 차원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특히 이들은 정부의 제도적, 외교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업계 일부에서는 이같은 수주 부진에 대해 정부의 지원과는 별개로 현대로템의 경쟁력 부족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특히 ‘잦은 결함’과 ‘독점’이 이어져 오면서 신뢰를 잃은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현대로템 철도 부문의 해외 수주는 6000억원 규모로, 2012년(1조7000억원)과 비교해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올해 수주는 더 처참하다. 3분기 누적 수주액은 불과 800억원 수준이다. 이 기간 철도 부문은 17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현대로템이 ‘존폐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와 함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현대로템은 지난달 26일 창원공장에서 회사 임직원과 협력사인 성신RST, 케이비아이테크 등을 초청해 ‘위기에 처한 국내철도산업의 현실’이라는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정하준 현대로템 국내영업팀 부장은 이 자리에서 “창원공장의 생산량이 급감해 일부 생산라인의 가동이 멈출 것으로 예상한다”며 “의장공장을 기준으로 내년 1월 생산량은 69량으로 가동률이 103%이지만, 수주 부진이 장기화하면 2017년 12월의 생산량은 14량으로 가동률이 21%까지 급감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현대로템의 수주 부진은 중국 철도사의 저가 공세 영향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 철도제작사는 전 세계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내수를 바탕으로 저가수주로 점유율 확대에 나서는 상황이다.
 
중국의 양대 철도제작사인 CNR과 CSR가 합병한 ‘CRRC’의 탄생은 현대로템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CRRC은 지난해 168억유로(약 20조6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정부 나서서 지원해야” 호소
 
여기에 중국 정부의 자국 업체 지원사격까지 더해졌다. 중국 정부는 동남아시아에 100억달러(한화 약 11조원)의 인프라 관련 대출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독보적이며, 절대적 우위에 있다는 평가다.
 
중국의 이같은 약진은 일본을 자극했다. 일본은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협조해 아시아 인프라 확충에 1100억달러(약 127조원)를 지원하겠다고 응수했다.
 
프랑스와 중국, 일본 등 철도 제작사를 보유한 국가는 자국의 철도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금융지원과 비즈니스 외교를 통해 철도기업의 해외 프로젝트 수주를 지원하는 상황이다.
 
미국은 철도차량을 제작할 때 60% 이상을 자국에서 생산하는 자재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했고, 중국의 경우 현지화 70%를 달성해야 함은 물론 자국과의 합작법인은 필수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같은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부조달협정(GPA)에 가입한 뒤 정부기관 발주를 모두 국제 공개경쟁입찰로 전환했다. 국내 철도시장의 민간투자 및 국가조달사업 등은 국내외 업체 간 가격경쟁으로 진행된다. 이에 따라 지난 2003년 인천도시공사 순환열차(IAT) 사업, 2008년 대구 3호선의 물량 등은 가격경쟁력에서 우위에 있는 일본 업체들(각 미쓰비시, 히타치)이 따냈다.
 
▲ 업계 일부에서는 이같은 수주 부진에 대해 정부의 지원과는 별개로 현대로템의 경쟁력 부족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특히 ‘잦은 결함’과 ‘독점’이 이어져 오면서 신뢰를 잃은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현대로템
◆기술로 승부? 잦은 결함 경쟁력 없다
 
현대로템 및 협력사들은 우리나라도 국산 부품 사용 의무화 같은 제도적, 외교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또 철도 노후차량 교체에 대한 법 개정도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현대로템의 수주 급감의 원인은 품질 개선을 소홀히 한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현대로템은 국내에서도 해외처럼 최저가 입찰제도가 아닌 기술력, 운영실적 등 종합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이 회사는 잦은 결함으로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따르면 현대로템이 지난 2010년에 제조·납품했던 KTX-산천 고속철도 차량에서 총 131건(올 8월말 누적 기준)의 장애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84%인 110건이 제작결함이었다.
 
KTX-산천 차량은 2010년에 28건을 시작으로 ▲2011년 36건 ▲2012년 21건 ▲2013년 15건 ▲2014년 16건 ▲2015년 8월 누적 15건 등 총 131건의 장애가 발생했다.
 
이는 프랑스 업체에서 설계하고 국내에서 제작된 열차 ‘KTX-1’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KTX-산천의 장애건수는 2004년부터 운행되고 있는 KTX-1의 약 5.4배에 달한다.
 
이같은 잦은 결함 탓에 양사는 법원을 오가기도 했다. 코레일은 지난 2011년 KTX-산천 납품열차의 제작결함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 1심에서 일부 승소해 지연반환료 등 직접손실액과 리콜영업손실액 등 약 69억원을 돌려주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로템은 그간 잦은 결함 등으로 신뢰를 잃은 모습”이라면서 “결국 가격 및 기술경쟁력이 부족하니 정부의 보호아래 사업을 이어나갈 요량”이라고 지적했다.
 
◆독점으로 안정적 수익 이어와
 
국내 독점 시장 체제만 믿고 안주한 결과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난 1999년부터 15년 동안 코레일 열차 1398량 전량을 현대로템이 독점 공급했다고 밝혔다. 계약금액은 총 1조4443억4326만원이다.
 
이 중 현대로템이 경쟁을 통해 계약한 것은 2건, 152량(1680억원)에 불과했다. 일선 지자체의 열차 구입도 현대로템이 장기간 독점 중이다.
 
서울시는 열차 881량 가운데 7400억원 상당인 756량(86%)을, 인천시와 부산시는 각각 총 74량(6142억원)과 178량(2191억원)을 현대로템이 독점했다. 대구시는 도시철도 2호선 168량(1556억원)을 현대로템이 따냈다.
 
이 의원은 당시 “현대로템 출현 이후 지금까지 철도시장에서 약 90%를 독점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철도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간 독점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데 익숙한 탓에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며 “원가절감과 기술력 향상 등이 제대로 이뤄져야 정부가 지원에 나섰을 때 재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시사포커스 / 신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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