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열풍, 중장년층 음악도 충분히 가세할 수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 그 동안은 주로 해외 공연을 비롯한 콘서트에 주력했습니다. 아무래도 청중들과 직접 마주 대하고 서로 감정을 주고받는 과정이 가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현재 신곡을 준비중인데, 3월 말경에서 4월 경이면 아마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신곡은 요즘 분위기에 맞춰서 신세대들까지도 흡수할 수 있는 다소 빠른 템포의 곡이고, 제목은 현재 가제만 나와 있는데, '사랑만으로 행복하다고', 혹은 '삶', '삶이란', 이런 제목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 동안 애상적인 노래는 많이 해왔으니까, 이번에는 너무 축-처지는 감상적인 노래에서 탈피해 볼 생각입니다. 역시 임주리씨 하면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지금 이 명곡을 되돌아 볼 때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 처음 곡을 내놓았을 당시에는 그닥 나오지 않던 얘기인데, 이제 이 곡이 여러분께 사랑받은 지 10년, 곡이 첫 등장한지는 17년이 되는 해에 이르니, ''립스틱...'은 이 시대의 마지막 성인가요 히트곡'이라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제가 보기에도, 확실히 '립스틱...' 정도로 성인층과 청소년층에게 두루 사랑받으며 애창되는 히트곡은, 그 이후 나오지 않았던 듯도 싶어요. 좀 더 포괄적으로 보자면, '립스틱...'을 경계로 우리 대중음악의 판도가 중·장년층도 즐길 수 있는 발라드와 성인 가요 계열에서 힙합, 테크노와 같은 '신세대 음악'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아마 이런 '음악적 과도기'에 등장하여 여러분들 인상에 더 깊게 남으셨던 듯도 싶습니다. 어느 매체에선 '립스틱...'을 '언뜻 듣기엔 쉬워 보여도 실제로 따라부르기엔 힘든 노래'로 꼽았는데요,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립스틱...'은 분명 트로트 계열의 선상에 놓인 노래이지만, 제가 이해하고, 소화해내는 트로트는 정통 트로트에서 조금 비껴나간 '뉴-트로트' 패턴이거든요. 저는 처음부터 트로트로만 시작한 가수가 아니라, 먼저 '그룹-사운드'를 통해 팝계열의 음악을 섭렵했었고, 클래식도 즐겨 듣고, 또 실제로 소화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탓에, '립스틱...'에는 제 목소리가 가진 다양한 성향의 음악 패턴이 녹아들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정통적인 트로트 창법'으로만 '립스틱...'을 소화하려 한다면, 좀 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립스틱...'처럼 '음악사에 기록될 노래'를 남기신 탓에 다른 좋은 곡들이 묻혀져 버리는 일도 잦았을텐데,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언급하고 싶으신 곡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먼저 러시아곡을 옮긴 '백만송이 장미'가 있겠죠. 굳이 '우리 고유의 정서'에만 맞추지 않고, 범세계적인 센스를 부여하고자 불렀던 곡인데, 그런 탓인지 일본, 미국, 중국에 공연을 가면 많이들 알고 계시고, 또 반응도 좋은 곡입니다. '립스틱..' 뒤에 나와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한 곡이지만, 3집 앨범에 실린 '사랑의 기도'라는 곡도, '립스틱...'의 경우처럼 뒤늦게 떠서 요즘 노래방 등에서 자주 불리워지고, 또 사랑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시의아이들'로 잘 알려진 김창남씨가 작곡한 '제 2의 연인'은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삼바디스코풍의 노래였는데, 슬로우 템포의 곡만 하던 제가 빠른 템포로 춤도 추면서 노래를 부르니 많이들 놀라시고, 또 흥미롭다는 반응도 많아 기억에 남습니다. 임주리씨 음악의 향후 방향과 자신만의 음악관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 흔히 '트로트 가수'로서 저를 인식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제는 트로트니 발라드니 하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청중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달래줄 수 있는 곡을 그 나름에 맞는 스타일로 소화해내어 계속해서 새롭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노래내용도 천편일률적인 사랑 이야기보다는 인생 그 자체, 삶을 살아가는 고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네요. 이번 신곡도 바로 그런 이야기라 볼 수 있겠고요. 일례를 들자면, '립스틱...'도 사실은 1987년에 발표되어 7년 뒤인 1994년에 크게 빛을 본 곡이었습니다. 처음엔 중·장년층에게 인기를 얻다가, 이것이 젊은층에까지 번져가면서 빅히트를 기록하게 된 거였죠. 이런 맥락에서 팬층이 다양한 음악이란 결국 장르를 불문하고 가슴을 울려주는 진심이 담긴 곡이겠고, 그런 곡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 '진심'을 인정받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곡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끝으로, 임주리씨의 올해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 일단 곧 나올 신곡 활동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야심이 있다면, 우리 성인 가요가 비단 국내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까지도 뻗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볼 생각합니다. 흔히 신세대 음악들만이 '한류 열풍'의 주역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우리 성인 가요도 충분히 같은 아시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확신합니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는 중국·일본 시장 진출을 겨냥하여 일본어 버전 곡도 한 번 넣어볼까 생각중이고, 중국어도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 너무 어렵네요 (웃음). 우리 성인 가요가 범아시아적으로 뻗어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취재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사진 임한희 기자 lhh@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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