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야당, 노 대통령은 우물안 개구리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미국실패론'을 노무현 대통령이 옹호하고 나서면서 참여정부의 대미견제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미국과의 혈맹관계를 느슨하게 하는 대통령의 태도를 꼬집으면서 연일 포화를 퍼붓고 있고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청와대를 비롯해 한명숙 총리까지 나서 대미견제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것.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비춰볼 때 대북 강경노선을 채택한 미 부시 행정부는 최소한 북한 미사일 사태에 관해서만큼은 공조 대상이라기보다는 설득 대상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대미 설득의 모양새가 대통령과 총리, 통일장관 등이 모두 나서 미국과 각을 세우는 식이어서는 미국 설득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한미간 골만 깊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 대통령이 미국과의 혈맹관계를 느슨하면서 까지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자칫 미국이 우방에서 등을 돌릴 경우 동북아의 균형추를 자임하겠다던 노 대통령의 부푼 꿈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참여정부에서 등장한 '미국실패론' 현재 참여정부 내에서는 북한 미사일 정책과 관련한 이종석 통일장관의 '미국 실패론'을 노 대통령이 사후 추인하고 한명숙 총리가 공식화하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을 겨냥한 발언 수위가 갈수록 높아가고 내용 또한 구체화하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무위원들을 향해 국회 답변과정에서 "의원님은 미국이 일절 오류가 없는 국가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라고 지시하는 선에 그쳤으나, 한 총리는 27일 "미국 정부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총리는 참여정부의 대미 자세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에는 "개별 사안에 대해 자기 나라의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한미간 공조가 깨지거나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그런 상황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큰 흐름에 공조를 같이할 때 건강한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과의 외교마찰을 우려해 간접화법을 사용한 노 대통령과 달리 한 총리는 직설적으로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한 총리의 이날 언급으로 노 대통령의 25일 발언은 '준비된 메시지'였음이 확인됐다. 노 대통령이 북한 미사일 사태를 계기로 한미 공조가 필요한 시점에 미국과 '거리 두기'를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총리는 "(미국의 대북 강경기조로) 우리나라의 외교안보정책 기조에 우려가 생길 수 있다"면서 "우리의 실익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이날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무엇이 불안을 부추기는가'라는 글을 통해 "동맹은 일체(一體)가 아니고, 맹종은 더더욱 아니다"며 "공조할 건 공조하고 지적할 건 지적해 나가면서 이견을 조정하고, 그렇게 같이 걸어가는 것"이라고 노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설명했다. 한 총리는 미·일 양국이 유엔헌장 7장(군사제재 조치 포함)을 원용한 유엔안보리 대북 결의안을 추진할 당시 우리 정부가 설득해 이를 완화시킨 것을 모범 사례로 들었다. 그러면서 한 총리는 "지금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미국 내에서도 굉장히 국민적 비판이 일고 있다"는 말도 했다.
이처럼 갑자기 참여정부에서 '미국실패론' 등장한 이유는 북한미사일 발사 사태 이후 노 대통령이 대북정책과 대미·대일 외교에 있어 당혹감에 빠져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대북 햇볕정책과 전통적 남방3각 동맹외교의 틀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대화우선' 원칙을 고수하며 미·일의 대북 강경자세를 누그러뜨리려 애를 쓰고 있지만 국내외 반발에 아직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실패론에 여권 내 반발 기류 5.31 지방선거 패배와 7.26재보선 참패로 여권에서는 강한 반노기류가 흐르고 있다. 어찌됐던 참여정부의 실정으로 민심이 등을 돌렸고 민심이반이 선거를 통해 나타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열린우리당이 입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참여정부에서 흘러나온 미국실패론은 가뜩이나 불안한 한반도 정세 속에 안정감을 원하는 국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는 것. 안정감을 원하는 보수층이 늘고 있는 가운데 다가올 대선을 앞두고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대 통령의 미국실패론 옹호자체가 불만인 것이다. 노 대통령이 몸을 담고 있는 이상 어쨌거나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참여정부의 실정을 함께 짊어지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열린우리당 초·재선의원 39명이 노무현 대통령의 '민심 외면'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는 등 청와대에 대한 노골적 불만을 드러냈다. 여당과 청와대 간 '선 긋기'가 노골화되고, 5·31 지방선거와 7·26 재·보궐 선거 완패를 놓고 책임론까지 벌이는 양상이다. 여권에서는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과 청와대, 국무총리가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으며 초·재선의원들 사이에 "이번에도 노 대통령이 민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탈당을 요구할 것"이란 강경 발언과 함께 "오죽했으면 국민이 탄핵의 주역을 살려줬겠느냐"는 탄식이 절로 나오고 있다. 여당 의원들의 반발 기류가 전에 없이 강경하다는 점에서 정가에서는 조기 정계개편까지 거론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여권 내 반노(反盧) 정서가 확산 일로인데도 대통령과 정부는 국정과 외교안보, 대북 문제에 민심이 반영된 대책을 내놓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아예 미국실패론을 내세운 것이다. ◆물 만난 야당, 노 대통령은 우물안 개구리 노 대통령의 무리한 도박에 한나라당 등 야 3당은 "(노 대통령이)아직 뭘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맹비난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그 장관에 그 대통령이고 지금은 이 장관을 껴안을 때가 아니라 수재민 껴안기를 해야 할 때"라고 노 대통령을 겨냥, 융단폭격을 가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25일 "우물안 개구리들이 참여정부에 많으면 우물만 시끄럽다"며 "국무회의 자리는 장관들과 정책토론을 해야하는 자리이지 과외 수업하는 자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무능력한 장관을 감싸기보다는 수재민들을 감싸야 할 때"라며 "무책임함의 극치이자 (노 대통령이) 의회민주주의에 대해 도전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국회 통외통위 소속 남경필 의원은 "문제는 지금 대북정책이 잘못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노 대통령이 나홀로 역주행하는 것"이라며 "이러다 북으로부터는 무시받고 국제사회로부터 왕따가 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이어 "노 대통령이 인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이 장관이 사퇴하고 외교, 안보라인이 바뀌더라도 무의미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 의원은 또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장관을 질타하고 하는 것은 국민의 비판으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질책하는 것인데 그걸 듣지 말라고 하니, 자기 귀를 막고 반성이나 여론수렴 없이 코드정치하겠다는 생각밖에 더되느냐"고 꼬집었다. 통외통위 한나라당 측 간사인 진영 의원도 "당체 이 장관의 그런 이야기를 소신발언으로 보는 것은 소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고 (노 대통령이)아직 뭐를 잘못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김정현 부대변인도 "이 장관의 발언은 적절치 못한 것인데 우리나라를 외교적으로 대표하는 대통령이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을 좀더 신중하게 해야한다"며 "구체적으로 북 미사일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외교적 고립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현명하고 사려 깊은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도 이날 국회 현안브리핑에서 "노 대통령이 '한국장관이 미국의 정책이 성공한 게 아니라고 말하면 문제 있냐?'면서 장관들에게 국회에서의 소신발언을 주문하기까지 했는데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듯 하다"며 "문제는 이 정권의 언행불일치에 있지 장관의 소신발언이 문제는 아니다"고 꼬집었다. 그는 "대북정책과 관련해 국민이 불안해하는 것은 정부가 상황을 통제할 능력과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 미국과 한국이 다른 접근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면서 "국민들은 우리 정부가 미국과 다른 어떠한 정책과 행동을 추진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노 정부는 보안법폐지, 조세개혁 등 이 정부가 말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아 국가적 혼란을 겪었던 많은 사례처럼 이번 대북관련 정책도 말은 독자노선을 걷고 행동은 대미추종노선을 따르고 있다"며 "생각과 행동의 양극화이자 전략과 실천의 부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맹 비난했다. 이어 "지금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때이고 미·일의 대북봉쇄전략과 달리하는 한국정부의 실천이 요구된다"며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장관들에게 국회 출석 자세에 대한 집중과외지도를 하기 앞서서 '언행일치'라는 오래된 덕목을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먼저 갖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미국실패론 국민들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미국의 정책실패를 지적한 발언에 대해 정치권의 분위기와는 달리 일반 국민들의 여론은 찬반 양론이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은 28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realmeter.net)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이종석 장관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의견은 42.5%로 잘했다는 의견 39.2% 보다 3% 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교적인 발언 수위로서 부적절하다는 여야 의원들의 입장과 다르게, 일반 국민들로부터는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은 과감한 발언이라고 긍정 평가한 의견이 적지 않았다. 지지정당별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의견이 많았고,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지지자들이 긍정평가하는 의견이 많았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고, 광주.전남 지역에서 긍정평가하는 의견이 높게 나타났다. 한편 이 조사는 지난 26일 전국 유권자 421명을 대상으로 조사됐으며 표집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 4.8%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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