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사관 관저에 8층, 54가구 규모의 아파트 건립추진 계획은 미 대사관측이 해당 건물을 주택건설촉진법 적용대상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건설교통부에 요청하면서 공개됐다. 행정구역상 서울 중구 정동 미 대사관 관저 부대사 숙소에 건립하려는 이 아파트는 대사관 직원이 전량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미 대사관측은 작년부터 서울시측에 아파트 건립허가를 요청했으나 서울시가 20가구 이상 아파트의 경우 주택건설촉진법 시행령 적용대상인 만큼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이자 해당 아파트가 시행령 적용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건교부에 시행령 개정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국내에서 외국공관의 직원용으로 대형 아파트 건립이 허용된 적은 한번도 없다는 게 건교부의 설명이다. 미 대사관측은 주택건설촉진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서울시와 중구청에 정식으로 건축허가 신청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아파트가 최종 건립되면 국내에서 외국공관 직원전용 아파트의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외국공관이 아닌 아파트에 대해 예외조항을 인정, 국내 주택건설촉진법 시행령 적용대상에서 제외시켜 주는 것은 지나친 `눈치보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덕수궁 부근은 서울의 한 가운데로 아파트를 건설하기에는 최적지이나 주변이 단층건물 지역이어서 주변경관을 해칠 우려가 있고 덕수궁이라는 사적이 있다는 점에서 사업계획은 꿈도 꾸지 못했다”면서 “그런데도 정부가 해당지역에 8층짜리 아파트 건립을 허용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해당부지가 덕수궁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근접해 있어 8층 아파트 건립을 위한 토목공사 과정에서 석조전 등 덕수궁내 문화재시설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84년 ‘토지교환각서’ 통해 미 대사관측과 부지 교환 그러나 이같은 계획은 지난 84년 당시 서울시장과 주한 미 대사 사이에 ‘토지교환각서’를 통해 이미 예정된 사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주한 미 대사관의 직원아파트 건립 및 신축건물 확장 등의 계획들은 이미 지난 1984년 당시 염보현 서울시장과 주한 미 대사 사이에 체결된, 일종의 양해각서인 ‘토지교환각서’에 근거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양해각서는 서울시가 세종로 미 대사관 부지, 율곡로 대사관 직원 관사 등과 구 경기여고 부지를 교환한다는 것이 골자다. 따라서 덕수궁 뒤 구 경기여고 부지는 미 정부의 소유이며, 미 대사관측이 국내 현행법에 따라 직원아파트 등의 건축을 추진할 경우 건립자체를 막을 수 없는 형국이다. 시청 관계자는 “미 대사관측이 자국 소유의 땅에 건물을 짓겠다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으며 시민단체들이 민족적인 정서에 치우쳐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정책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 덕수궁옆 미 아파트 반대 민주당 김민석 서울시장 후보는 17일 “문화재 보호구역인 옛 덕수궁 터에 국내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미 대사관 직원용 아파트 건립을 허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 후보측은 대변인인 김성호 의원 명의의 성명을 통해 “미 대사관 아파트 건립은 서울시민과의 형평성, 문화재 보호구역이라는 특수성, 민족적 관점 등에서 볼때 허용될 수 없는 특혜”라며 “서울시는 건축허가 여부를 차기 시장에게 위임하라”고 촉구했다. 경실련 한 관계자는 “정동은 역사적인 문화재와 문화적인 숨결이 있는 지역으로 문화경관 보호에 대한 뚜렷한 대책 없이 미 대사관 직원용 아파트 건립을 추진할 수 있도록 현행법을 개정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 우선이고 누구를 위해 일하는 정부인지 모르겠다”며 당국의 처사를 반박했다. 김 간사는 이어 “단순한 법개정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화적 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대책위를 조성하고 있다”며 “건교부의 법개정 철회를 위해 전국민 서명운동 등의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고계현 실장은 “작년말부터 미 대사관 측이 이곳에 숙소를 짓기 위해 편의를 봐달라는 요청을 서울시에 올렸지만 부대시설 미비를 이유로 계속 허가가 반려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대사까지 직접 나서 그것도 현행법을 어기면서까지 특혜성 허가를 인정받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문화연대 김성한 팀장은 “숙소를 지으려는 부지는 조선시대 역대왕들의 초상을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던 옛 선원전이 있던 곳”이라며 “이곳은 현재 경복궁 주변에 대한 왕성 복원계획에 포함된 지역으로 유물 발굴 가능성이 높은데도 숙소를 먼저 건립한다는 발상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문화재보호법이 주택건설촉진법보다 상위법으로서 유물 발굴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사 숙소 건립허가를 내주더라도 문화재 발굴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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