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노오오오력’, ‘금수저·흙수저’. 올 한해 대한민국의 현실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신조어들이다. 부의 대물림 현상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살기가 팍팍하다보니 최근 들어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심화되는 듯하다. 포털 뉴스 댓글란에는 잘 나가는 사람들이 금수저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풍토가 정착된 지 오래다.
 
특히 당초 태어날 때부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 났다’는 말에서 유래한 금수저라는 단어는 원래 부유하거나 명망 있는 집안을 부러워하는 일종의 칭찬이었다. “누구 누구는 금수저라더라”하는 얘기가 주는 뉘앙스를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청년들의 취업난이 가속화되면서 이 부러움이 계급론으로 비화되고, 금수저와 대척점에 있는 소위 ‘흙수저’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젊은 층들이 많이 찾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급기야 ‘흙수저 갤러리’라는 게시판이 생겼다. 이 곳에서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사진으로 인증하고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가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단순히 칭찬이었던 단어는 어느새 공격적인 뉘앙스로 변모되고 있다. 유명 배우의 한 딸은 수 년간 오디션을 전전하는 무명 생활을 지속하다가 아버지와 함께 출연한 프로그램으로 인지도를 얻고 순식간에 주연 자리를 꿰찼다. 이 여배우는 연기력을 증명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 덕에 뽑혔다”, “무명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 금수저 덕 톡톡히 보네”라는 질타를 한 몸에 받았다. 이 쯤 되면 금수저라는 단어는 칭찬이 아니라 거의 낙하산이라는 단어와 동급이다.
 
문제는 이 같은 ‘수저 계급론’이 실제 대한민국의 단면이라는 점이다. 최근 발표된 동국대 김낙년 교수의 논문을 보면 부의 대물림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상속과 증여가 자식의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율이 27%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에는 29%로 늘었고 2000년대에는 42%로 폭증했다고 한다.
 
‘흙수저’ 집안의 자녀가 1억원을 모을 때 이미 ‘금수저’ 집안의 자녀는 4200만원을 깔고 시작한다는 말인데 결국 출발선부터가 다르다는 얘기다. 야구에 빗대 “흙수저가 1루에서 시작할 때 금수저는 3루에서 출발하는데 경쟁이 되겠느냐”는 얘기도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젊은층의 81%는 ‘노력해도 계층상승이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미 제대로 붙어보기도 전에 나가떨어지는 젊은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말인데 누가 과연 그들에게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정부가 비록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많은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용이 보장되고 일한 만큼 승진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아닌 바에야 결국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호언장담해도 실제 젊은층들은 1~2년 계약직으로 일하고 다시 원상복귀되기 십상이다.
 
과거 정부가 끝을 모르고 치솟던 학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며 내놓은 학자금 대출 장려 정책은 대출을 받았던 젊은이들이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이 시점에 상환 폭탄으로 되돌아 오고 있다. 서울시가 청년 취업 준비생들에게 수당을 준다고 하는데 이들이 몇 십만 원이 없어서 체념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정말 얼토당토 않은 착각이다.
 
돈이 돈을 낳고 계급이 계급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늘어나는 사회는 분명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노력으로 인한 성취가 활기찬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런데 이 같은 수저계급론이 많은 젊은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는 것은 분명 우리나라 사회의 계층 경직성이 심화되고 있다는 신호다. 그만큼 젊은이들에게 현재의 구조는 절망적이고, 앞으로 더 절망적이 될 것이라고 보이는 것이다. 수저 계급론까지 낳은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