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대한 민주노총을 위시해 진보연대, 전국농민총연맹, 한국청년연대 등 53개 단체 약 10만 명이 운집해 시위를 벌인 바 있다.
 
경찰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시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일 것으로 예상해 집회 수 시간 전부터 만약의 사태를 고려해 철저한 준비에 들어갔는데 시위 초반 서울광장에서 진행될 때는 기 신고한 바에 따라 법규를 준수하며 진행됐던 집회가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광화문 광장으로의 가두행진이 시작되자 점점 격화될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사실 이날 참여한 53개 사회단체 중 진보연대 등 19개 단체가 구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 범국민운동본부에 포함돼 있던 단체인데다 심지어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와 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등은 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이 내려진 곳이어서 이번과 같은 흔치 않은 대규모 시위를 반정부 투쟁의 기회로 여기고 경찰과 직접 충돌할 것으로 일찌감치 예고되고 있었다.
 
가두행진을 하던 시위대는 이미 준비된 경찰의 차벽으로 인해 광화문 광장으로의 진출이 예상대로 저지되자 이를 뚫는다는 명목 하에 일부 급진적 세력이 선봉에 서서 깃대로 방벽을 내리치는 등 전체 시위대의 흐름을 폭력시위로 유도했고 경찰의 경고방송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방벽으로 시위대가 몰려들자 경찰 역시 물 대포 등 물리적 대응에 나서겠단 방침을 방송을 통해 경고했다.
 
이날 우연히 현장에서 이 시위를 목도한 나로선 애초에 시위대의 가두행진이란 원인이 없었다면 과잉진압 논란 자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을 예견했는지 이미 시위대 중 일부는 전문 시위꾼처럼 철제 사다리까지 준비해 와 방벽에 걸치려는 모습을 보였고, 처음엔 빈 생수병을 투척하는 데 그쳤던 모습도 시간이 흐를수록 쇠파이프부터 벽돌에 이르기까지 과격해져갔다.
 
이미 이 정도 준비성을 보여줬다는 것부터 당초 폭력시위에 나서겠단 전제로 이날 시위에 참여했다는 것 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과격해져가는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경찰도 기계가 아닌 사람인지라 끓어오르는 분위기를 타고 함께 점차 과격해지는 모습이 보였다.
 
시위대가 극렬하게 나올수록 경찰 물 대포의 살포 범위 역시 방벽 근처에 붙은 시위대 뿐 아니라 벽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시위대에까지 무차별 살포하기 시작했고, 거리를 두고 관망하던 시민들이 있는 곳까지도 살포액에 섞인 캡사이신이 기침을 유발할 만큼 지척 거리까지 뿌려졌다.
 
이에 대응하는 시위대 역시 플라스틱 의자나 계란 투척은 물론이거니와 어디서 줄까지 준비해 와 방벽을 이루고 있는 경찰버스를 끌어당기기 시작했고 일부는 성공해 길이 뚫리자 방송차의 지휘에 따라 뚫린 곳으로 몰려들기도 했다.
 
이후로는 공성전을 벌이는 형태로 전개되며 시위대와 경찰 모두 서로를 향해 분노를 발산하고 있었는데 이를 지켜보면서 착잡한 감정 밖에 느낄 수 없었다.
 
세금으로 마련한 경찰 장비들의 파손은 차치하더라도 이렇게 갈등해서 잃게 되는 사회적 비용은 얼마나 될지, 또 이날 청와대로 진격하고자 광화문 차벽을 뚫으려던 시위대는 해외 순방 차 대통령도 출국한 상황에서 정작 누굴 만나기 위해 청와대로 진격하려던 것이며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의미없이 젊은 의경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인지 안타깝다는 생각뿐이었다.
 
꼭 폭력 시위를 통해서야만 시위대가 주장하는 바를 보여줄 수 있고 누군가 다치고 사경을 헤맬 정도의 시위가 되어야만 정부에 자신들의 뜻을 전달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오히려 폭력 시위가 여기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시민들에게 더 부정적인 인상을 주고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하던 시민들까지도 뒤돌게 만들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것인지, 모든 걸 감정으로 풀어내려 한다고 실질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인지 한번쯤 돌아봐야 될 일 아닌가 여겨졌다.
 
법과 원칙이 준수되지 않고 ‘떼쓰기’ 식으로 원하던 바가 이뤄진다면 나쁜 학습효과가 생겨 나중엔 습관화된 ‘떼쓰기’로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 ‘떼쓰기’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이 아니며 과격시위만이 정부정책 변화를 유도해 낼 수 있는 시민사회의 유일하고 바람직한 대안인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단계라면 가두시위에 의존해 나가던 수십년전 행태는 접어두고 이제 법과 원칙에 의거해 선진적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 것 아닌지 생각해 본다. 그런 점에서 몇 년 전 미국 뉴욕 월가에서 있었던 Occupy the Wall street란 평화시위가 우리 사회의 시위문화와 더욱 대비돼 보였다.
 
아무리 합당하고 옳은 주장이라 해도 방식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면 본의까지 퇴색되고 마는데 시위대가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오히려 그들의 주장조차 무색케 하는 게 아닐까.
 
이 문제로 말미암아 각종 민생 현안과 선거구 획정도 논의하기 바쁜 정치권까지 과격시위냐, 과잉진압이냐로 갑론을박하며 국정조사까지 언급하고 있어 답답할 뿐이다. 매주 사건 하나 하나 발생할 때마다 거기에 얽매여 정작 중요한 사안 처리까지 이미 늦어진 판국에도 더욱 미뤄지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모든 시위 자체를 반대한다는 게 아니다. 다만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가며 시위대가 이뤄내고자 한 바를 얻는다 해도 그게 이미 치러진 상당한 사회적 비용에 비해 우리 사회의 공익 향상에 어느 정도 기여하게 되는 것이며 법과 원칙은 소위 시위대의 ‘민주주의’ 앞에 유명무실해져도 되는 것인지 적어도 자성해보는 기회는 필요하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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