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신용불량자 구제책 제시... ‘선심용’ 논란도

3월 10일,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은 개별 은행의 채무재조정과 '배드뱅크(Bad Bank)' 등을 통한 다중채무자 구제, 법원의 개인회생제 및 개인파산제 등 3단계를 통한 신용불량자 구제 방안을 골자로 하는 '신용불량자 현황 및 대응 방향'을 발표했다. 재경부는 우선 다중 신용불량자 235만명에 대해 연말까지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 워크아웃을 통해 20만명, 다중채무자 공동 채권 추심 프로그램을 통해 10만명 등 30만명을 구제하기로 했다. 신용불량자 딱지를 떼어주는 '배드뱅크' 이와 함께 여러 금융기관에 5천만원 미만을 3~6개월 연체한 다중채무자 140만명 가운데 40만명에 대해서는 자산관리공사와 금융기관이 공동으로 설립하는 배드뱅크를 통해 신용불량자 딱지를 떼어주기로 했다. 이들 다중채무자는 채무액의 3%를 선납하면 바로 신용불량자에서 제외되며, 배드뱅크에서 최장 8년의 장기로 저리의 신규 자금을 대출받아 빚을 갚아나가게 된다. 재경부는 이와 함께 상거래와 관계없는 세금체납자 14만5천명을 신용불량자 명단에서 제외하고 이동통신요금 때문에 서울보증보험을 통해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18만5천명에 대해 신용불량등록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재경부는 하나의 금융기관에만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137만명은 금융기관별로 심사를 거쳐 일정 기간 상환을 유예해 주기로 했다. 재경부는 은행의 자체 신용 회복 프로그램과 배드뱅크 등의 다중채무자 구제책을 통해서도 신용불량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법원의 개인회생제와 개인파산제를 활용하기로 했다. 또한 소액 연체 때문에 청년층의 취업 기회가 원천적으로 제한되는 일이 없도록, 신용정보업자(CB)가 고용 목적의 신용 정보를 제공할 때 100만~200만원 미만의 신용 불량 정보는 한시적으로 제외하게 된다. 한편 재경부는 각종 신용 회복 지원 프로그램 운영할 때에는 채무 상황 의지에 따라 지원 여부를 결정하고 성실한 채무자에게는 인센티브를 부여해 원리금의 일부 감면이 가능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채무액 5천만원 미만, 채무금 3%를 선납해야 신청 가능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신용불량자 대책의 핵심인 '배드뱅크'는 다중채무자의 연체 채권을 한데에 모아 처리하는 기구. 과거 대우 등의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 자산을 모아 기존 기업과 분리하기 위해 설립했던 '배드컴퍼니'를 차용한 구상이다. 금융기관들이 다중채무자에 대한 채권을 개별적으로 회수하기 어렵기 때문에 배드뱅크에서 연체 채권을 넘겨받아 대표로 채권을 추심(회수)하는 것이다. 채권자들로서는 '버린 돈'으로 치던 채권에서 일부라도 건질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고 채무자들은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나는데다 장기 분할 상환과 이자 경감 등의 채무재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소액 자본금은 자산관리공사와 은행 등 각 금융기관이 갹출해서 내고, 공사는 이와 별도로 채권을 발행해 최대 5천억원의 유동 자금을 조달한다. 배드뱅크는 일단 설립되면 각 금융기관에서 연체 채권을 넘겨받고 공사에서 빌린 돈으로 연체 채권 액면가의 9~15% 정도를 현금으로 해당 금융기관에 지급한다. 채무자는 배드뱅크로 채무가 이전되면 신용불량자 딱지가 떨어지는 대신 채무재조정을 받는 기록이 개인신용평가회사로 넘어가 금융거래 등에 활용된다. 배드뱅크의 채무재조정 대상은 연체기간이 3개월 혹은 6개월 등 일정 기간 이상 여러 금융기관에 빚을 진 다중채무자로 채무액이 5천만원 미만인 경우다. 일단 채무의 3%를 선납해야 신청이 가능하며 나머지 채무는 최장 8년에 걸쳐 연 6% 이자로 분할 상환하게 된다. 채권 추심은 노하우가 많은 공사와 서울보증보험이 맡고 상환을 독려하기 위해 2~3년 동안 잘 갚으면 원금 및 이자 경감 등의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재경부는 앞으로 3개월여에 걸쳐 금융기관들과 채무재조정 조건 등에 대해 정리한 뒤 6월께 설립되면 이후 3~6개월간 채무재조정 신청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P,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 보다 원활할 것" 한편 국제신용평가기관인 S&P사는 한국 정부가 추진중인 배드뱅크 제도가 빠른 시일 내 시행된다면 카드사 부실자산 감축과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이 보다 원활히 될 것으로 평가했다. 3월 11일 S&P는 '신용불량 기업의 증가가 한국 신용동향에 미치는 영향'이란 자료에서 "신용불량기업수의 사상 최고치 기록과 GDP 5.5% 성장 전망은 상반된 뉴스로 비추어지고 있으나, 이는 지난해 내수부진으로 인해 나타난 후행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경제시스템상 위기로 부도가 속출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신용불량건수가 늘어나는 현상은 일반적 경기침체기후 후행적으로 발생한다는 뜻이다. S&P는 그러나 "국제 원자재가격 인상과 금리 인상으로 한국 경제상황이 둔화되는 상황이어서 개인 신용불량자나 법인 신용불량건수는 당분간 지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국내 경기 회복세가 계속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 상당수 시중은행들의 경우 현재 수익을 기반으로 중소기업 여신연체의 악영향을 완화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S&P는 카드 연체채권을 한데 모으는 배드뱅크 제도와 관련, "빠른 시일 내 시행된다면 부실자산 감축이나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을 보다 원활히 해결할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카드사가 소구부 권리와 후순위채 매입 등과 같은 신용보강 수단을 유동화증권 발행사에 제공해 매각자산 위험을 계속 떠안게 된다면 효과는 희석된다"고 지적했다. '실효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그런데 이러한 배드뱅크가 신용불량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근본적 방안과 연계 없이 각종 '인센티브'만 남발, 실효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버티면 더 좋은 방안이 나올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배드뱅크에서 채무 상환 의지가 있는 신용불량자만 채무재조정을 해준다고 하지만, 소득증빙 서류 제출도 없이 이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빚 갚을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상황에서 연체액의 3%인 '선불금'을 낸 신용 불량자에게 곧바로 신용불량 등록 해제와 함께 채무재조정을 해 주는 것은 일시적으로 신용불량자를 줄이는 효과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해 채무자가 스스로 신용불량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하는데, 이 부분은 정부의 대책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빚을 갚는 도중에 실직 등의 이유로 일정 기간 연체를 하면 신용 회복 절차가 중단되고, 신용정보업체에 이를 기록으로 남겨 불이익을 준다는 계획도 배드뱅크 이용을 크게 제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는 150여만명에 이르는 5000만원 미만 다중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선불금을 먼저 내도록 한다는 방침. 그러나 최대 150만원(5000만원 연체 시)의 선불금만 내면 신용회복이 가능해, 신용불량자들이 이후 고의로 연체를 하는 등의 '버티기'로 나와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소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버티던 '배째라' 채무자들이 신용불량자 해제에 따른 혜택만 누리고 빚은 다시 갚지 않는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 최장 8년의 분할 상환 기간에 2~3년 동안 성실히 갚으면 원금을 일부 탕감해주는 정책도 나머지 신용불량자들에게는 버티면 더 좋은 방안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키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문가들은 "돈을 안 갚고 버텨봐야 더 이상 원금 탕감 등의 신용불량 대책은 절대 없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해야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신용불량자를 양산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신용불량자 등록제가 2년 내로 폐지될 전망이다. 3월 11일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기자 간담회에서 "현행 신용불량자는 제도상의 피해자"라며 "신용불량자 등록제를 2년 내로 폐지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현행 신용불량자들은 일정 요건만 되면 자동으로 신용불량자가 되므로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측면이 있어왔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신용불량자가 소득과 재산이 어느 정도 되는지 어떤 이유로 대출금을 연체했는지 등 개인 사정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어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신용불량자'라는 낙인만 찍히면 사실상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현행 신용불량자 등록제도를 조속히 폐지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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