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가 나서 기업들의 부패 척결을 외치게 된 계기가 됐던 포스코 수사가 이제야 마무리 됐다. 8개월 전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포스코건설의 해외 비자금 의혹이 불거지자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고, 검찰을 위시한 정부는 일제히 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걸었다. 수사 과정에서 각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포항제철 시절 국가 경제를 지탱해 국민기업으로 불리던 포스코 내부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게 된 계기이자 부패와의 전쟁의 첫 단추가 됐던 포스코 수사는 그래서 특히 중요하다 할 것이다. 정부와 언론의 관심도 지대했고 하지만 어제 마무리된 검찰 수사의 결과는 실망스럽다. 8개월 간 온갖 의혹이 쏟아져 나왔고 전 정권의 실세들까지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막상 딱히 이뤄낸 게 없다.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치권의 부당한 개입과 거래 업체들과의 비리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구조적 부패를 꼬집는다기보다 정준양 전 회장 등의 개인 비리에 가깝다. 국민 기업인 포스코의 비정상을 정상화하겠다더니 “정준양 전 회장이 이상득 의원에 의해 포스코 회장에 임명됐다”는 식의 결과가 전부다. 전례 없이 8개월 간 수사를 벌여 놓고 정권과의 유착 구조는 제대로 건드려보지도 못했다.
 
결국 정준양 전 회장 등 핵심 인물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번번이 기각되면서 이상득 전 의원을 포함한 핵심 인물들이 모두 불구속 기소됐다. 구속 수사가 능사는 아니지만 이 정도의 사안이라면 검찰은 적어도 거물급들의 구속을 반드시 이끌어냈어야 한다. 하지만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과 동양종합건설 배성로 전 회장은 영장이 기각되면서 5차례나 소환한 정준양 전 회장의 영창은 청구도 해 보지 못했다. 이상득 전 의원은 고령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으니 대체 뭘 했나는 비난이 나올 만하다.
 
또한 기업 비리 수사는 치밀한 준비와 내사를 통해 증거를 확보한 후 단시간에 수사에 착수해 속전속결로 마무리지어야 한다. 하지만 준비없이 시작된 장기간의 수사는 혼란만 초래했다. 경영진에 죄가 있지 임직원들과 주주들에게 죄가 없지 않은가. 8개월 간의 수사로 포스코는 이미 만신창이다. 동국제강 등의 수사까지 겹치며 가뜩이나 어려운 철강산업의 피해도 만만치 않게 발생했다.
 
제 발이 저린 탓일까. 검찰은 별도 자료를 통해 “주요 선진국의 경우 구조적 비리 적발을 위한 수사에 2~3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기간은 공개 수사 이전에 소요된 시간까지 다 포함된 것이다. 공개적으로 수사에 착수해 8개월 동안 관련 인사들을 마구잡이로 소환하고 곳곳을 압수수색한 끝에 내놓은 결과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초라하다. 상황이 이러니 일각에서 검찰이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죽음으로 수사 개시와는 달라진 정치적 상황을 우려해 몸을 사린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퇴임을 앞둔 김진태 검찰총장이 이달 초 확대 간부회의에서 마치 포스코 수사의 잘못을 지적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한다. 기업 전체를 의사가 종합진단하듯 수사하면 표적수사라는 비난만 초래한다는 지적인데, 이는 2년 전 취임사에서 환부만 정확하게 도려내는 사람 살리는 수사를 하자고 발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외부 인사도 아니고 포스코 수사에 책임을 져야 할 수장이 내놓은 발언치고는 너무 남 얘기하듯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