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부산이다. 지난해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폭언과 인격모독을 견디지 못하고 경비원이 분신자살을 기도해 숨진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는데 일부 아파트 입주민들의 갑질이 끊이질 않는다. 이 기간 동안 언론에 보도된 아파트 경비원들에 대한 갑질 사례만 열 차례가 넘는다. 아파트가 사적 영역에 속한다는 공간적 특수성을 감안하면 실상이 보도된 것이 이 정도라는 것은 적지 않은 아파트에서 갑질이 만연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번 얘기도 언론이 아닌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최초로 알려졌다. 이 글에는 두 달 전부터 한 부산의 아파트 지하2층 지하철 연결통로에 나이 많은 경비원들이 출근길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접한 누리꾼들은 분노를 쏟아냈다. 10대 여학생에게까지 깍듯이 인사하는 사진에 담긴 경비원들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아파트 측은 인사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학생이 “우리 아파트의 갑질이 부끄럽다”는 글을 올리면서 아파트의 입장만 무색하게 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 배경은 이렇다. 일부 입주민들이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의에서 다른 아파트 경비원들을 거론하며 왜 우리 아파트 경비원들은 인사를 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한다. 이에 대표회의가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인사를 강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태가 확산되자 대표회의 쪽은 그런 적이 없다고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철저하게 을일 수밖에 없는 아파트 경비원들이 갑자기 출근길에 인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갑질 쪽에 좀 더 무게추가 기우는 것이 사실이다.
 
대다수 아파트 갑질 사례들도 그런 식이다. 지난해 분신자살을 기도했다가 숨진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은 일부 입주민들로부터 상습적으로 인격 모독과 폭언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입주민은 먹다 남은 빵을 5층에서 던지고 먹을 것을 종용했다고 하니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일인가 싶다. 올해 초 광주에서는 택배를 찾아가라고 재촉했다는 이유로 입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하는가 하면 쳐다본다는 이유로 아버지뻘의 경비원을 때리고 발로 차 코뼈를 주저앉히게 한 입주민의 사례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3년 아파트 경비원 등 전국의 55세 이상 감시·단속직 근로자의 인권상황 실태를 조사했더니 언어·정신적 폭력을 경험한 비율이 30%를 넘었고 가해자의 84%가 바로 입주민이었다고 한다. 세 동 중 한 곳은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얘긴데 이미 우리나라 국민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절대 쉽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주민들의 행태는 당연히 질타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관련이 없는 모든 입주민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매도하는 것도 옳은 해결책은 아니다. 이번 부산 아파트의 갑질 사례도 해당 통로를 이용하지 않던 많은 주민들은 몰랐다고 하는데 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오히려 부끄러움을 고백한 학생이나 한 방송에 출연한 이 아파트 입주민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온당치 않다.
 
결국 이 문제는 아파트 내부 갑과 을의 구조를 뜯어고쳐야 해결이 될 문제다. 노년층이 대부분인 아파트 경비원들이 철저히 을로서 자리잡고 있는 부분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경비원들의 모욕을 견뎌야 하는 것은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간접고용이라는 형태로 용역업체를 통해 파견되는 경비원들의 교체는 너무나도 쉽다. 불만을 제기했다가는 일을 그만둬야 하는 일이 일쑤다. 이러니 입주민을 상대로 법의 심판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해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숨진 뒤 몇 몇 아파트가 경비원을 직접 고용하거나 도급계약서에서 갑을 표현을 없앴던 일은 모범적인 사례다. 하지만 그야말로 일부 사례에 불과할 뿐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최저임금 100%를 적용하는 시행법이 발효되면서 전국의 많은 아파트가 경비원 인원을 감축했다고 하니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들에게는 임금을 올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용 안정이 우선이다. 하지만 모든 아파트들이 경비원들을 직접 고용하기란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다. 결국 해고 또는 교체에 대한 요건을 강화해야 경비원들이 부당한 행태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성북구의 한 아파트가 경비원들을 해고할 때 주민 동의를 거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던 취지를 본받아 정부는 하루 빨리 용역업체들이 경비원들을 마음대로 교체하는 것을 방지하고 최소한도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경비원에 대한 갑질 문제는 이제 사회적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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