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브랜드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짧고 간단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함축시킨 브랜드 및 문구는 표현 대상의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하고 재치있는 브랜드가 화제가 되면 상당한 홍보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이에 시장에서뿐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들도 브랜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각 정부마다 ‘문민정부’, ‘참여정부’ 등으로 차별화를 꾀한 것도 어찌 보면 이 같은 ‘브랜드 전략’의 일환이다.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들도 고유의 특색을 드러내기 위해 각종 브랜드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어느새 우리 삶에서 지자체의 정체성이 내재된 브랜드를 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고양이를 활용한 고양시의 경우는 많은 누리꾼들의 찬사와 부러움을 받기도 한다.
 
반면 천만 인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새 브랜드는 공개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호된 질타를 받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이명박 전 서울시장 취임부터 14년 동안 사용한 하이서울(Hi Seoul)을 대체할 브랜드로 아이서울유(I.SEOUL.U)를 선택했다. ‘나와 너의 서울’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서울시 측은 브랜드를 교체하게 된 이유로 하이서울이 서울만의 특색을 잘 나타내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
 
물론 취지에는 공감이 간다. 서울 방문을 촉진하고 편안함을 주기 위한 하이서울의 취지는 이미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도 보인다. 구체적인 정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해가 가능한 수준이다. 한류가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마당에 더욱 강렬한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올 때도 됐다. 하이서울 문구 하단의 ‘Soul Of Asia’라는 문구가 자존심 강한 중국에서 허가가 나지 않았다는 배경도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왜 아이서울유인가 하는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 문법적인 면도 ‘콩글리쉬’나 다름없거니와 다른 지자체와 달리 수도 서울의 브랜드는 전세계인들의 공감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데 이 브랜드는 기본적으로 외국인들이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가 한국인 관광객을 고려해 ‘나.마닐라.너’라고 지었다고 생각해보자. 의미 전달도 안되고 조롱거리만 될 뿐이다.
 
위원회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I Amsterdam’을 유사 사례로 들었는데 이는 문구에 포함된 ‘I Am’ 부분을 절묘하게 활용한 위트있는 문구다. 앞뒤로 갖다 붙인 아이서울유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독일 베를린의 ‘Be Berlin’ 역시 ‘Be’를 활용한 문구고 이마저도 비문법적 표현도 아니다. 서울브랜드추진위원회는 선정 과정에서 아이서울유가 선택될 경우 ‘너와 나의 서울’이라는 의미가 외국인들에게 전달되도록 영·중·일 태그라인을 병기한다고 하는데 브랜드에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면 이미 그 자체로 힘을 잃는다. 구구절절이 “이건 이런 뜻이에요”라고 설명해야 한다면 무엇하러 브랜드를 만드는가.
 
하이서울을 대체할 만한 철학도 엿보이지 않는다. ‘너와 나의 서울’이라는 의미라고는 하는데 외국 관광객들까지 고려하는 문구를 짜려면 더욱 명확한 정체성이 함축돼야 한다. 홍콩의 ‘Asia's World City’나 영국의 ‘Cool Britannia’ 등이 좋은 예다. 유명 관광지인 필리핀 보라카이의 ‘I ♥ Boracay’는 단순 명료한 문구지만 발음의 용이성, 디자인 등에 힘입어 기억에 남는 브랜드다. 굳이 많은 의미를 함축하기 쉽지 않다면 차라리 이렇게 제정하는게 훨씬 낫다. 서울시의 공식 브랜드가 아닌 정책 슬로건에 불과했지만 ‘디자인서울’같은 문구가 그러한 예다. 정책 자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추구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하고 간단함과 명료함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쉽게 뿌리내리는 문구들이다.
 
이미 온라인 상에서는 아이서울유를 조롱하는 패러디가 쏟아져 나오는 역효과만 발생하고 있다. 빚이 많은 인천시의 상황을 빚대 ‘아이인천유’는 “너를 빚더미에 앉게 하겠어”라는 의미라고 한다. 시민참여형으로 1만6000여건의 응모를 받아 10만여명의 사전투표로 선정됐다고 하는데 이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다. 치열한 고민이 부족한 브랜드 선정의 결과로 앞으로 박원순 시장이 재임하는 2018년까지는 이 문구를 써야 할 처지에 놓인 서울시민으로서는 갑작스러운 된서리에 황당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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