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교과서’ 사회적 기구서 토의” 제안 與 일축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29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교과서 논란을 일임할 ‘사회적 논의기구’ 설치를 당청에 제안하는 한편 이를 수용할 경우 현재 진행되는 야권의 국정화 저지 투쟁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끌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사진 / 원명국 기자
‘국정화 비밀TF’ 논란으로 여론전을 이어가며 여권을 몰아붙이던 야당이 10‧28 재보궐선거 결과의 충격으로 갑자기 수세에 몰린 형국인데 반해 사실상 재보선에서 승리하면서 자신감을 가진 여당은 이 기세를 타고 ‘용공 카드’까지 꺼내들며 반격에 나섰다.
 
상황이 ‘대전환’에 이른 것을 직감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29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교과서 논란을 일임할 ‘사회적 논의기구’ 설치를 당청에 제안하는 한편 이를 수용할 경우 현재 진행되는 야권의 국정화 저지 투쟁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끌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사세가 변했다고 판단한 새누리당은 문 대표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이 같은 제안의 배경으로 야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재보선 패배에 대한 지도부 책임론’까지 거론해 거듭 문 대표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어 야당이 이 같은 국면을 돌파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10‧28 재보선 패배’로 삐걱대는 野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맞서며 정부여당을 몰아세우던 야당이 재보궐선거 패배라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 아연실색한 상황이다.
 
지난 28일 전국 24개 지역구에서 치러진 10‧28 재보궐 선거는 새누리당이 경남 고성군수 최평호 후보를 비롯해 15곳에서 승리한 데 비해 새정치민주연합은 무소속 당선지역보다도 적은 2곳에서 당선자를 내는 데 그치면서 사실상 여권의 압승이란 평가가 나왔다.
 
사실 이번 재보궐선거는 광역단체장이나 국회의원 선거구는 없으며 기초단체장 1곳 외엔 광역‧기초 의원 23곳을 선출하는 소규모 선거인 관계로 애초에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 데다 투표율조차 2000년 이후 재보선 사상 최저치인 20.1%에 불과해 선거결과가 전체적인 민심을 반영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야권이 연대공조체제를 구축하고 연일 장외투쟁을 벌여가면서까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로 여권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초미니’ 선거에서조차 패배하면서, 일각에선 ‘국정화’ 논란이 일부의 관심사안일 뿐 시급한 민생 현안과는 괴리된 이슈에 야권이 지나치게 집중했다고 지적하기도 하고 있다.
 
특히 야권 내 비주류에선 이번 선거 자체의 의미보다 선거 ‘패배’에 중점을 두고 이를 호기로 삼아 지도부 비판에 나서면서 여전히 봉합되지 못한 야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는데, 이는 국정화 이슈로 하나 된 듯 했던 야당이 아직도 외부 변수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야당 지도부에 또 다른 숙제를 안겨줬다.
 
이 같은 ‘불안요소’는 당내외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는데 먼저 29일 새정치연합 비주류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전날 재보선 패배와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작은 선거라 변명하지 말고 큰 책임을 져야 한다”며 문 대표에 일침을 가했다.
 
박 전 원내대표는 이어 “당은 선거를 위해 존재하고 선거는 이겨야 한다”며 “적당하게 또 넘기면 다음 총선에서도 또 적당하게 패배하고 이 기회를 놓치면 정권교체도 물 건너 간다”며 거듭 당 지도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그는 “아무리 지방선거라도 야당은 중앙당에서 체계적 지원을 해야 한다. 이것도 안 하면 대표는 왜 필요한가”라고 일갈해 이번 패배는 사실상 문 대표의 책임이라고 몰아붙였다.
 
안철수‧김한길 전 공동대표는 국정화 이슈에선 지도부와 한 목소리를 내며 여권을 질타하다가도 선거 패배에 대해선 여지없이 비판을 쏟아냈는데 특히 당권 회복을 노리는 안 전 공동대표는 그간 자신이 제시했던 ‘혁신안’을 강조해 현 지도부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안 전 공동대표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안철수·이동섭의 북콘서트’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10‧28 재보선 패배를 두고 “당이 아직 (국민의) 신뢰 회복을 하지 못한 결과”라며 “더 강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들을 느끼게 해준 결과라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제가 혁신에 10가지 구체적 제안을 했다”며 “그 중 하나가 지난 선거들을 돌아보고 뭘 잘못했는지, 어떻게 하면 다음 선거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지 살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이 현재 필요하다고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같은 당 김한길 전 공동대표 역시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정권교체를 위한 야당의 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 전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생각하고 걱정이 더 깊다”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이미 새정치연합을 탈당했던 무소속 박주선 의원은 같은 날 오전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는 문 대표 책임론이 잠깐 사그라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당이 앞으로 달라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본다”며 “내년 총선에서는 더 참담한 결과가 올 것”이라고 극언을 퍼부었다.
 
박 의원은 재보궐 선거 결과에 대해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더 이상 핵심지지기반인 호남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그나마 2석이라도 건진 것이 다행”이라고 조소를 보냈다.
 
◆ 與 ‘역사 논란’, ‘이념전쟁’ 전환 공세
 
이런 가운데 그간 정부여당의 지지율 하락 등 ‘국정화’ 여론전에서 밀리는 것으로 나타나던 여권까지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적극 반격에 나서면서 야당의 ‘국정화’ 공세에 제동을 걸었다.
 
특히 새누리당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과 관련해 북한이 야당과 동일한 입장을 보인다며 ‘용공’ 코드를 내세워 이념전으로 몰아가면서 보수층 결집에 나서는 한편 재보선 승리 여파를 확대해 야당을 뒤흔들고자 했는데 지난 28일 이정현 최고위원은 국회 예결회 전체회의 중 “지금의 교과서는 적화통일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뒤이어 29일 원유철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이 대남공작기관을 통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투쟁과 선동전을 하라는 지령문을 내렸다는 전날 문화일보의 보도를 언급하며 “현재 북한의 남남갈등 전술에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건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원 원내대표는 “야당의 교과서 투쟁은 민생은 물론 야당 스스로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백해무익한 투쟁으로 남남갈등을 지켜보는 북한만 즐겁게 하는 투쟁”이라면서 여권의 지지율 하락을 불러온 야당의 ‘국정교과서 반대’ 장외투쟁을 혹평했다.
 
여기에 황교안 국무총리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위에 출석한 자리에서 “(국정교과서 저지 투쟁 관련 북한 지령설이) 확인되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며 정부까지 여당의 ‘색깔론’ 공세에 힘을 실어주면서 야당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한 술 더 떠서 교육부는 같은 날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을 주도한 전교조 간부들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라고 29일 밝히면서 시국선언 서명에 참석한 교사들에 대해서도 “가담 정도에 따라 징계양정을 고려한 처분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 野 ‘교과서 논의 위한 사회적 기구’ 제안…與 거부
 
▲ 문재인 대표는 29일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 “정부여당이 현행 검인정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역사교과서 발행체제의 개선방안을 백지상태에서 논의하는 새로운 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이렇듯 당내외에서의 맹공에 내우외환의 위기에 직면한 새정치연합은 29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문 대표가 직접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 “정부여당이 현행 검인정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역사교과서 발행체제의 개선방안을 백지상태에서 논의하는 새로운 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역사학계와 교육계 등 전문가들과 교육주체들이 두루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 발행체제 전반을 검토하고 논의해 보자”며 “그때까지 정치권은 교과서 문제 대신 산적한 민생현안을 다루는 데 전념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문 대표는 “대신,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절차를 일단 중단해 주기 바란다”며 “그리 된다면 우리 당도 국정교과서 반대 서명운동을 잠시 접고 사회적 논의기구 결론이 나올 때까지 경제 민생 살리기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타협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야당의 제안에 대해 새누리당은 재고의 여지없이 거절하며, 같은 날 김영우 수석대변인을 통해 “교과서 문제를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고 와 정쟁을 지속시키겠단 정치적 노림수에 불과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그러면서 김 수석대변인은 “10·28 재보궐선거에서 완패한 야당 지도부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회피하고 야권의 분열을 막기 위한 전략”이라고 문 대표의 제안을 혹평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이날 경북 경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로부터 ‘문 대표의 사회적 기구 설치 제안’에 대한 질의를 받자 “집필진이 참여하면 그게 사회적 기구”라고 일축하며 “문 대표가 사회적 기구 구성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는 것은 곧 현행 역사교과서가 잘못됐다고 인정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렇게 한 번의 선거를 계기로 야당이 수세에 몰린 것은 ‘국정화 반대’ 여론이 곧 ‘야당지지’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데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그간 박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졌음에도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의 지지율 상승으로는 크게 연결되지 못했단 점이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즉 ‘국정화’라는 이슈로 ‘반대 여론’이 대거 형성됐음에도 이들이 이 이슈에서만 야당과 같은 목소리를 낼 뿐 다른 현안에선 야당을 여당에 대한 대안세력으로 미덥게 여기진 않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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