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기부행렬…자발적 참여 아닌 강제성 비판도

▲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마련한 ‘청년희망펀드’에 재계가 기부행렬을 이어가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이 펀드에 사재 200억원을 쾌척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마련한 ‘청년희망펀드’에 재계가 들썩이고 있다.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인들이 앞다퉈 사재를 쾌척하면서다. 관심이 증폭되는 만큼 재계 안팎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절실한 상황에서 두 팔 벌려 환영하는가 하면, 자발적인 참여가 아닌 강제성이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상충하고 있다. 더구나 순수 기부목적이 아닌 보여주기 식 기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와 펀드 자체에 대한 비판마저 제기돼 한동안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기부 행렬의 출발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회장은 지난 22일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청년희망펀드’에 200억원의 개인재산을 헌납했다. 청년들에게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에 나섰다는 게 삼성 측의 설명이다. 이에 질세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사흘 뒤 사재 150억원을 기부했다.
 
한국 재계의 맏형 격인 두 인물의 솔선수범은 업계 안팎의 큰 화제를 불러왔고, 타 기업 총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됐다. 면세점 쟁탈전이 한창인 가운데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동대문 미래창조단’이라는 이름의 지역재단을 만들어 자신의 재산 100억원을 출연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청년창업 활성화를 위한 투자법인 ‘롯데 엑셀러레이터’를 설립해 1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개인적으로 100억원대의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할 계획으로 알려졌고,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임원진은 각각 사재 70억원, 3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재계총수의 사재출연으로 시작된 기부 열풍은 각계각층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포스코그룹은 11월 급여부터 권오준 회장 20%를 비롯해 전 임원들이 매달 10%를 이 펀드에 기부하기로 했고, 박재규 경남대학교 총장, 윤종일 경기중기센터대표, 배우 유준상 씨 등도 잇달아 가입했다.
▲ 기부 행렬의 출발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회장은 지난 22일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청년희망펀드’에 200억원의 개인재산을 헌납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사흘 뒤 사재 150억원을 기부했다. 사진/시사포커스DB
 
 
◆기업들 울상 짓는 까닭은
 
이를 두고 재계 안팎에서는 박수를 보내는 한편,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자발적 참여가 아닌 ‘강제성’이 작용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총수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지면서, 아직 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각 기업 총수의 펀드가입 여부와 출연금 크기에 관심이 쏠렸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모금을 제안하고 1호 기부자로 이름을 올린 점도 기업들의 동참을 부추기는 꼴이 됐다.
 
이에 따라 ‘체면 또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억지로 기부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부 액수의 크기를 두고 기업의 자존심 싸움이 될 우려도 있다고 나오는 상황이다.

이는 기업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기부에 참여 하자니 사업상 계획되지 않은 지출이 문제다. 액수 또한 거액이어서 적게 낼 경우 티도 나지 않을 판이다. 그렇다고 구경만 하기에는 주위의 시선이 부담이고, 사재출연에 대한 긍정적 여론을 무시하자니 직원들 보기에 민망한 상황이라는 평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잇단 기부행렬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아직 기부의사를 밝히지 않은 기업에서는 티를 내지는 않고 있지만 당혹스러운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미지 개선 수단 악용 우려
 
순수한 기부목적이 아닌 여론 조성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삼성의 경우 최근 신규 채용 규모를 크게 줄인 데 대한 부정적 여론의 대응책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용만 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기부 목적에 대해서는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자 선정을 앞둔 선심성 기부라는 비판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박 회장은 “면세점 유치를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데 면세점 유치를 위한 노력이 계기가 됐음은 부인하지 않겠다”면서 “면세점과 관계없이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던 일”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신 회장의 경우 최근 신동주 부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에 악화된 여론 등을 염두해 둔 처사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청년희망펀드 자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현재 이 펀드의 목표 모금액은 정해지지 않았으며, 어디에 쓸 지에 대해서도 확정된 게 없는 상황이다. 목적이 불분명한 상황인 만큼, 모금액이 자칫 엉뚱한 곳에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잇단 기부행렬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형성된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안 좋게 볼 것만 아니라, 펀드의 취지인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청년 일자리 창출 방법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최근 기업들이 잇달아 구조조정 등 조직 슬림화에 나선 상황에서 일자리 자체가 줄고 있는데 돈을 모은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청년 일자리가 돈을 모아서 해결된다면 걱정할게 뭐가 있느냐”며 “아무런 계획도 없이 만든 펀드에 가뜩이나 힘든 기업들에게 큰 부담을 준 꼴”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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