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6공 회귀 징조 - 여야 모두 힘 빠져

지난 2002년 17대 총선이 치러지고 난 후 국민들은 새롭게 구성될 정치권을 꿈꾸며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물론 정치라는 것의 특성상 하루아침에 전혀 새로운 모습을 바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역대 어느 대(代)보다 젊은 피가 많이 수혈되었기에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정치권의 세대교체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처음 국민들의 그 같은 기대는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을 품고 출발했다. 그러나 절반 정도 시간이 흐른 현재 정치권에서는 젊은 소장파들의 목소리를 듣기조차 힘들어졌다. 그것은 정치권을 바꾸기에는 그들에게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다든지 혹은, 그들은 정답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그나마 가능성은 소장파에게밖에 없어 보인다. 지난 시간 지속돼 온 정치권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은 소장파를 통해서밖에 찾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갈수록 꺾여가고 있는 정치권 전반에 걸친 소장파들의 세력을 건전하게 되살릴 방안을 모색해야만 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면 이들도 고참이 되고, 구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조금이라도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꿈과 개혁을 위해 땀 흘리고 있을 때 힘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소장파는 간판인가? 현재 정치권에서 ‘소장파’라는 이름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의원들은 대부분 한나라당 소속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열린우리당에도 소장파는 분명 존재한다. 상당수의 인원이 소속되어 있기에 ‘소장파’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오히려 민망할 정도이다. 이미 알고 있듯이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의 최 측근 및 창당 주축 세력들이 386세대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열린우리당’이라는 낱말과 ‘소장파’라는 낱말 사이의 궁합이 어느 정도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장파로 분류되는 인원이 그처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열린우리당 내 중진급 이상의 고참들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가까이 5.31 지방선거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당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그보다 앞선 2.18 전당대회를 통해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전당대회 당시 40대 기수론을 표방하고 나섰던 열린우리당 내 소장파로 분류되는 김부겸, 임종석, 김영춘 후보 3명 모두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모두 8명이 후보로 경쟁해 5명이 지도부에 입성하게 되고, 3명만이 탈락하게 되는 경선의 룰을 생각한다면 이들 3명 모두의 탈락은 열린우리당 내 소장파의 완패라고 할 수 있겠다. 당내 중진급 이상의 의원들에 비해 조직과 세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음을 그들은 절감한 것이다. 아직 탄탄하게 마련되지 못한 배경과 뒷심 또한 그들에게는 아쉬움의 원인이 되고 있다. 물론, 현실에서 완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그 중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을 펼쳐 보인 인물도 있었다. 바로 임종석 의원이다. 그는 전당대회를 통해 전대협 출신다운 열정과 감성적 연설에 더해 대중성까지 과시하면서 차세대 정치인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그는 전대 유세기간 중 ‘중도개혁세력 대통합’, ‘정권재창출이 최고의 개혁’이라는 호소력 짙은 주장을 하며 40대 기수론의 중심으로서 화제를 몰고 다니기도 했다. 당내 40대 재선그룹과 386세대 초선의원들 사이에서는 ‘역시 임종석’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하며, “젊은 대중 정치인의 또 다른 사례를 제시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역시 2% 부족한 정치적 내공 때문에 실전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소장파로 분류되는 타 후보들에 비해 비교적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그러한 지지를 적극 활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임 의원은 당내에서 ‘호남의 소맹주’라고 불리는 염동연 의원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장했지만, 이 같은 주장은 오히려 역공을 당하며 민주당으로의 흡수통합이라는 ‘호남 지역주의’론으로 변질되며 고전을 면치 못하기도 했다.
또한, 386운동권 출신으로 유명했던 임 의원이 재야의 거목격인 당시 김근태 후보를 돕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을 해 일각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평도 있다. 이처럼 충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부 입성이 좌절되었다는 것은 아직까지 그에게 부족한 무엇, 혹은 당내에서 소장파가 힘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임 의원뿐 아닌 김부겸, 김영춘 의원 또한 패인은 조직의 열세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다수이다. 더욱이 이들은 한나라당 출신으로 열린우리당 창당 때 합류한 인물들로써, 열린우리당 내 민주당에서부터 이어져 온 대의원들과 아직까지 이질적인 성향 때문에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처럼 열린우리당에 소장파는 있지만, 소장파의 목소리는 듣기 힘든 독특한 형상이다. 이것은 결국 열린우리당이 젊은 정당이라고 표방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젊은 의원들을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을 뿐 실질적인 활동은 모두 중진급 이상의 고참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한 방에 쓰러진 한나라당 소장파 지금까지 소장파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것으로 판단되는 정당은 겉으로도 보이듯이 한나라당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나라당 소장파는 크게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과 비주류 모임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 중도 성향의 ‘푸른모임’, 초선 의원 모임인 ‘초지일관’ 등 중도개혁 성향의 4대 모임에 걸쳐 고루 분포되어 있다. 이들은 지난 6월 8일 연대를 통해 ‘미래모임’이라는 거대 조직을 만들며 7.11 전당대회에서 큰 파란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미래모임의 의원들 모두가 소장파로 해석할 수는 없지만, 이 모임의 상당수 주축 세력들이 소장파인 점을 감안한다면 ‘미래모임’은 한나라당 소속 중도개혁성향의 소장파 의원들 모임이라고 해석을 하더라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들은 하나로 뭉치면서 당내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고, 특히나 한 목소리를 낼 때는 한나라당에 주류가 비주류가 되고,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로 미래모임에 소속되어 있는 현역 의원 수가 53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전체 의원이 123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미래모임을 통해 이번 7.11 전당대회에 독자 후보를 내고, 강재섭과 이재오 2강으로 풀이되는 경선에 3강 구도를 형성하는 다크호스를 제시했다. 다크호스는 바로 권영세 의원이었다. 그러나 전당대회의 뚜껑을 열어본 결과 미래모임의 단일 후보로 나선 권영세 의원은 최고위원직에조차 선출되지 못했다. 예측과 결과가 아무리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기대했던 것과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큰 차이가 있을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적어도 당 대표는 아니더라도 최고위원직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다시 말하면 당내 미래모임의 영향력에 대해 그동안 크게 부풀려져 왔었다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결국, 경선이 끝나고 난 후 소장파로 대변되는 미래모임은 구심점을 잃어버리고 “모임을 지속할 명분과 동력을 모두 잃어버렸다”며 침통한 분위기 속에 빠지게 되었다. 당내 일각에서는 이 같은 미래모임의 전당대회 참패에 대해 ‘일회용 모임’이라며 해체, 위기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미래모임의 의원들은 전당대회의 결과에 대해 불만을 성토하기도 했다. 권영세 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당내 소장그룹으로 분류되는 남경필, 원희룡, 박형준 의원 등은 모두 전당대회 결과에 대해 비판을 했다. 원 의원의 경우 “특정주자를 뽑기 위해 모임에 들어온 작전세력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남 의원은 “실패작이다. 장기적으로 한나라당의 어떤 대선후보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의 대리전이 되어버린 이번 경선을 비난했다. 또, 박 의원 역시 박 전 대표의 영향으로 당선된 강재섭 대표최고위원을 보며 “박 전 대표 개인에게도 좋지 않다. 후유증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사실, 이처럼 미래모임의 패배원인을 겉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모임의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 확인시켜주듯 모임의 한 초선 의원은 “쓸데없이 외연만 넓히다 내부결속마저 떨어뜨렸다”며 모임의 명분이 명확치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한나라당의 소장파 역시 잠시 힘을 갖는 듯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체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7.26 재보궐선거 공천을 두고 구태 정치와의 연을 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온 한나라당. 그러나 세대교체의 중심인 소장파 의원들의 이 같이 힘 빠진 모습은 다시 한나라당이 구태 정치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5, 6공으로의 회귀를 누가 막을 것인가 정치권의 소장파라고 해서 무조건 깨끗하고, 건전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전한 소장파 의원들을 주축으로 해서 이들이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과거 5, 6공의 구태 정치와 연을 끊음으로써 시대에 맞는 정치를 펼쳐나가야 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치권 인사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정치가 앞으로 나아가기는 해도 뒤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현재 힘 빠진 소장파의 모습이 지속되어서는 안 되는 당위성이 성립한다. 후배들을 양성하고 그들로 하여금 시대에 맞고 참신한 정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젊은 정치, 미래를 보는 정치를 위하여 정치권 소장파의 질주가 멈추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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