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기승...연례행사처럼 천문학적 피해

은행들의 금리가 점점 하락하면서 일반인들은 언제나 재테크를 생각하고 있다. 일확천금은 아니더라도 낮은 금리를 극복하고 투자한 돈에 대해서는 많은 이윤을 보기를 원한다. 증권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부동산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불법 기업들이 늘고 있다. 바로 다단계 업체들이다. 이들은 초기에 보여진 피라미드 형의 판매방식을 과감히(?)버려가면서 새로운 형태의 마케팅을 만들면서 서민들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사상 유례가 없는 피해액을 남긴 ‘제이유 네트워크’ 파문과 유명 연예인과 아들이 운영하던 ‘뉴클레온’이라는 유사 수신행위 업체들이 검찰에 적발되면서 연례행사처럼 유사 수신 해위 업체에 대한 피해는 끈이지 않고 있다. 알면서 일반인들은 불나방처럼 다단계업체에 뛰어들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이 단번에 쏙 빠져들 만큼 유인수법이 교묘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또 "다단계업체에서 초기에 한몫 챙긴 ‘꾼’들이 빠져나가 새로운 업체를 만들어 단물만 빼먹고 사라진다"면서 "일반인들은 언제나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피라미드에서 네트워크로 용어가 바뀐 만큼 다단계판매업체의 마케팅기법도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다. 35만명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제이유네트워크의 힘 역시 ‘소비생활 공유마케팅’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마케팅 이었다. 현재 성업 중인 다단계업체들은 ‘피라미드’란 용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판매원을 끌어들여야 수당을 받을 수 있는 피라미드 방식은 이미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전형적인 착취구조. 지난 2003년 자본금 5억원 이상의 업체에 대해서만 방문판매를 허용한 이후, 원시적인 피라미드업체들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대학생 등 젊은층과 주부들을 대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다단계업체 감시단체인 ‘안티피라미드’ 측은 "취업 및 아르바이트 명목으로 사람들을 유인한 후 다단계판매원으로 가입을 권유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다단계의 진화되고 있는 마케팅 속칭 ‘다단계’로 불리 는 직접판매시장은 이미 국내 유통업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03년을 기준으로 연간 매출은 무려 7조9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생필품과 가정용품 등 유형(有形)의 제품에 국한돼 왔지만, 이미 금융, 서비스, 여기에 상품권 까지 등장하는 등 무형(無形)의 제품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이런 무형의 제품을 판매하면서 이들이 내세운 전략은 포인트마케팅, 공유마케팅의 그럴 듯한 용어였다. 포인트마케팅은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고, 투자액에 따라 포인트를 지급하는 것이 핵심. 제이유도 ‘투자액의 250% 수당’ 등을 미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투자자들은 자신이 구입한 상품을 판매하기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250%의 수당이 들어오기만 기다리는 식이었다. "상품판매로 실제 고수익이 보장되느냐"고 의혹을 제기하면, 다단계업체들은 "상품판매보다는 주식, 선물ㆍ옵션투자 또는 부동산 관련사업에 투자해 고수익을 창출한다"고 일반인들을 현혹한다. 때문에 피라미드업체는 젊은층이 판매자로 나서는 경우가 많았지만, 목돈을 요구하는 포인트마케팅은 은퇴한 노년층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한 다단계업체 관계자는 "제이유와 같은 영업방식은 다단계라고 보기도 힘든 측면이 있다"면서 "구매자와 판매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만 있다. 이는 유사수신행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제 제이유를 벤치마킹했던 다단계업체 ‘위베스트’라느 업체는 지난해 4월 방판법 위반, 사기 혐의 외에 유사수신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포인트마케팅은 순환마케팅으로 진화했다. 최초 투자금액뿐만 아니라 배당받은 이익금까지 계속적으로 재투자하게 하는 기법이다. 초기 가입자에게만 고수익이 보장되지 않고 후발 가입자들도 안정적인 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는 회원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교묘한 장치일 뿐이다. 최근에는 각종 규제를 피하기 위한 신종 방문판매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명목은 방문판매지만, 영업형태는 다단계업체들이다. 그러나 방문판매의 경우 업체 등록부터 보상보험까지 상당부분이 업자의 자율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다단계에서 보장하는 최소한의 피해보상도 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이른바 ‘금융 다단계’로 불리는 신종 불법 다단계는 불법 유사 수신 행위에 투자자를 모집할 때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다단 계 판매의 수법을 차용하고 있다. ◆서로 네 탓만 하는 다단계 피해 사상 최대인 35만명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제이유 그룹 사태는 이제 이전투구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피해자 보상을 위해 결성된 ‘제이유 사업피해자 비상대책위(비 대위)’는 비대위에 참여한 제이유 사업자들과 비(非) 비대위 사 업자 간에 갈등을 빚고 있는 것. 비 비대위 사업자들은 “비대 위가 회원들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제이유 그룹 주수도 회 장과 보상 합의를 했다”며 원성을 높이고 있다. 비대위 회원이었던 A씨는 “지난 5월 중순, 비대위 현순환 위원 장에게 제이유와의 합의문을 직접 보여달라고 요구한 30여명이 강제 탈퇴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비대위측은 “보상금 을 최대한 많이 받아내기 위해 기밀유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며, 주 회장이 비공개를 요청해 왔다”고 해명했다. 또한 제이유를 그대로 따라한 위베스트 사건은 여러모로 제이유와 비슷하다. 위베스트는 지난 2004년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된 신생 다단계 업체다.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2004년 공식 매출액은 7천1백억원이었다.위베스트의 성공 비결은 제이유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포인트 마케팅(공유 마케팅)’에 있었다. “4백40만원(10비즈)을 납입하면 5백40만원을 돌려주고 4천4백만원(100비즈)을 납입하면 7천5백60만원을 돌려준다고 선전했다.” 위베스트 회원이었던 김종억씨(50)의 말이다.이 약속을 믿고 김씨는 1억2천만원을 납입했는데 결국 6천만원만 돌려받았다.위베스트 사건 피해자는 1차(2005년 6월까지)가 4백50명에 94억원. 2차(2005년 7월 이후) 피해자가 1백70명에 1백억원에 이른다.1차 피해자 대표 최필여씨는 “이 피해액은 물건을 반품한 금액을 뺀 순수 피해액이다.피해자 가운데는 가정이 파탄 난 사람은 부지기수이고 심지어 살인에 이른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갈팡질팡하는 모습도 비슷하다.위베스트 피해자 대책위원회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염 아무개씨(35)는 처음에는 안회장을 보호하려고 애썼다.2005년 3월 서울동부지검이 안회장을 소환해 밤샘 조사를 벌이자 염씨는 동료 회원들과 함께 동부지검 앞에서 석방 촉구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일이 잘 못 돌아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미 들어간 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안회장이 나오면 회사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은 어서 빨리 그가 법정 구속되기를 바란다.검찰 수사 이후에도 끝없이 후속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위베스트는 검찰 수사로 회사가 위기에 빠진 와중에도 NSR·IBI·SP·SMⅠ·SMⅡ 등 회사 이름을 바꿔가며 무리한 영업을 계속했다. 대표적 방문판매 업체인 화진화장품의 경우도 비슷하다. 성공 신화의 대명사로 불리며 2002년 7월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던 화진화장품 강현송 회장의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화진화장품에서 다단계식 영업 방식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3백여 명의 피해자들이 피해자방지위원회(피방위, 위원장 김용석)라는 모임을 결성해 강 회장을 상대로 줄기차게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방판 회사인 화진에 들어가 강현송 회장이 큰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며 제시하는 판매 및 승진 제도와 보상 플랜을 믿고 따랐다가 결국 쪽박을 찼다고 호소한다. 화장품 사재기 대열에 가담하는 과정에서 본인은 물론 가족과 친구, 친·인척들의 카드까지 돌려 막기하는 바람에 온 가족이 신용불량자가 되고 자살과 이혼 등 가정 파탄이 그치지 않았다는 호소들이다. 이들은 화진화장품이 대외에 선전해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여성 능력 개발과 여성 인력 고용 창출이 결국 이처럼 여성을 집단 신용불량에 빠뜨리는 영업 방식이냐고 항변한다. 지금까지 일곱 명의 화진 피해자가 자살했고, 파산에 이은 이혼과 행방불명 등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비닐하우스와 교회 등을 전전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것으로 밝혀졌다. 화진 피방위의 이같은 피해 호소에 대해 화진화장품 측에서는 본인들의 책임이지 회사에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영업사원들에게 사재기를 하도록 강요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 자살자들이나 신용불량자들도 원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거나 기존에 신용불량자들이 들어왔다가 적응에 실패해 나간 뒤 화진에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단계 근절될까 사법 당국은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불법 다단계 판매와 유사수신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엄단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 동부지법은 지난달 19일 제이유 그룹과 유사한 다단 계 업체 위베스트 경영진에게 중형을 선고하는 등 강력한 처벌 의지를 밝혔다. 위베스트 대표 안모(47)씨와 최상위 사업자 박모 (43)씨는 각각 징역 10년과 7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일부 투자자들의 욕심과 이들을 노리 는 엉터리 사업자들의 사기 행각이 결부되는 한, 좀처럼 불법 다 단계 판매와 유사수신행위가 근절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지난 2004년 12월 13일 열린 한 네트워크 마케팅 세미나에서 이기엽 교수(홍익대, 경영학)는 포인트 마케팅 이론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포인트 마케팅을 분석한 결과 국민 모두가 회원이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전체의 0.015%만 약정된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일찍 가입한 일부 회원을 빼면 약정된 배당을 받는데 너무 오랜 기간이 걸린다”고 밝혔다. 또한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국의 김기열 수석은 “합법적인 다단계 판매는 일반적인 유통업의 이익률을 넘어서기 어렵다”면서 “ 큰 돈을 쉽게 벌려는 욕심에 터무니없는 다단계 사업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속이며 투자자들을 모은 후 잠적을 하면서 돈을 모으고 있는 다단계업체들과 방판업자들. 제이유와 뉴클레온 사태를 보면서 피해자들인 서민들은 회사들의 달콤한 말에 속아 쌈짓돈은 계속 없어지고 있다. 이처럼 불법 다단계 및 방판 업체를 엄벌해달라는 피해자들의 절규에 관련 당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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