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현-미술사의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다"전

최근 발간된 이문열의 산문집 "신들메를 고쳐매며"에는 현대 젊은층이 즐겨 향유하는, 그러나 그만큼 위험성이 따르는 현상들로 패러디와 인터넷, 포퓰리즘 등을 들고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패러디'의 경우, 국내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을 시에는 거의 '공격적 모욕'에 가까울 정도로 과격한 반응 - 패러디 가수 이재수의 서태지 '컴백홈' 비디오 파문이 대표적 예이다 -을 불러 일으켰었는데, 역시 이문열이 짚은 '인터넷'을 통해 이 패러디 문화는 급속도로 양성화되어 이제는 '또 하나의 즐길 거리'로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런 '패러디 붐'에 또 하나의 '발칙함'을 추가할 만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바로, 권여현 국민대학교 교수가 그 제자들과 함께 '사제동행세미나'의 일환으로 지난 2년 간 벌인 일련의 '패러디' 작업들이 "권여현-미술사의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다"전이라는 타이틀 하에 하나의 전시 형태로서 대중들에게 선보여지게 된 것. 회화, 영상, 설치에 걸쳐 약 40여점이 전시되는 이번 전시회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미술사의 명화들을 비틀어 야유와 유머, 단순한 개그와 날카로운 풍자가 뒤섞인 작품들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데, 서양화에선 미켈란첼로의 천지창조에서부터 밀레의 만종, 한국화로는 신윤복의 미인도에서부터 혜원의 월정하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라도 알고 있을 법한' 교과서적인 작품들이 학생들 각자가 자신의 얼굴을 작품 속에 집어넣고 그 위에 옷을 그려넣는 방식이나 하나의 작품에 여러 개별적인 요소들을 첨가하여 전혀 다른 의미로서 원작을 변질시키는 방식 등을 통해 완벽히 '모욕'되어 있다. '미술을 가르치는 일 자체를 하나의 창작 행위로 보여준다'던가, '주변 인물들의 등장은 작가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정체성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주변사람들이 함께 구성되어 진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권여현 교수의 주장은 오히려 이런 '발칙함'과 금기가 깨어진 데서 비롯된 통쾌감에 얹어진 '이성적인 사족'처럼 여겨지지만, '재미로서의 미술'을 과연 딱딱하고 고지식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미술계가 과연 이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에, 재미와 함께 모종의 '안도감'마저도 느낄 수 있는 전시로서 한번 쯤 겪어볼 만한 문화체험일 듯 싶다. (장소: 사비나미술관, 일시: 2004.03.0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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