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흥망성쇠의 발자취
은행권 흥망성쇠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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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전문은행 선정전이 한창이다. 각각 인터파크와 KT, 카카오가 주도하는 컨소시엄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각 컨소시엄마다 참여한 기업들과 금융사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현대증권, 한화생명, IBK기업은행, NH투자증권, 현대해상, 한국투자금융, 우정사업본부에 GS, 효성, NHN, 포스코, 효성 등 쟁쟁한 대기업들도 대거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에 인터넷전문은행이 인가가 나게 되면 1992년 인가된 평화은행 이후 23년 만에 이뤄지는 신규 은행업 인가라고 한다. 평화은행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주도해 1992년 설립된 은행으로 근로자 금융지원을 목적으로 했다. 한국노총 조합원들과 구 국민은행, 포항제철 등의 국영기업들이 출자했다. 지점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고 점포망이 부족해 우체국 창구에서도 이용이 가능했다.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미미했지만 나름 은행권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1992년 개점 당시에는 은행권 최초로 서명 거래 제도를 도입했고 이는 전 은행으로 확산됐다. 이전까지는 은행 거래시 도장이 반드시 필요했다. 현재 은행 거래시 도장 없이 서명으로 거래를 하는 고객들은 나름 평화은행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재무구조 불안정으로 IMF 위기 이후 정부 주도로 한빛은행에 합병됐고 2002년 한빛은행은 우리은행이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한빛은행의 발자취도 잠깐 살펴보겠다. 과거 ‘조상제한서’라는 단어가 금융계를 풍미한 적이 있다. 설립 순대로 조흥은행-상업은행-제일은행-한일은행-서울은행의 줄임말로 소위 민간 은행 중 ‘빅5’를 지칭했다. 이 중 한국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1999년 합병해 한빛은행으로 출범했다.
 
합병 후 정상화 단계에서 2000년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으로 2년 만에 사명을 우리은행으로 변경했다. 사명 변경 직전 평화은행의 은행업무 부분을 인수했다. 전신 중 하나인 한국산업은행은 1899년 고종 황제의 명에 의해 세워진 대한천일은행이 시조로 구 조흥은행의 전신인 한성은행에 이어 두 번째 민족은행이다. 다른 한 축인 한일은행은 1932년 설립된 조선신탁이 합병을 거쳐 1960년 바뀐 은행이다.
 
양 은행은 IMF 위기 이후 공적자금지원을 조건으로 1999년 한빛은행으로 탈바꿈했다.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합병 당시 한빛은행의 규모는 국내 최대였다. 현재 우리은행은 과점 주주 매각 방식으로 다섯 번째의 민영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주로 관심을 보이는 곳이 중동과 중국 등이라 민족은행에 뿌리를 둔 은행이 외국계 은행이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상태다.
 
이름이 비슷했던 한미은행도 빼놓을 수 없다. 한미은행의 ‘한미’는 한국과 미국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가 공동투자로 합작해 1981년 설립했다. 1983년 인가를 받아 출범했다. 하지만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1980년대 후반부터 경영권이 우리나라 쪽으로 넘어왔다. 수도권 외에는 점포망을 크게 확보하지 못했다. 1998년 경기은행을 인수하고 몸집을 불리다가 2004년 미국 씨티그룹의 인수로 현재 한국씨티은행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상제한서의 첫 머리를 장식한 조흥은행은 대한민국 최초의 은행으로 기네스 인증까지 받았다. 1897년 한성으로 설립됐고 광복 직후에는 발권은행의 자리까지 넘보기도 했다. 1997년 IMF 위기로 자산 건전도가 크게 떨어졌지만 공적자금을 지원받고 되살아났다. 하지만 2002년 정부의 주도 하에 192년에 설립된 ‘초짜’ 신한은행에 매각됐다.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당시 조흥은행 노사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했다.
 
제일은행은 1929년 조선저축은행으로 설립됐다가 1958년 제일은행으로 개명하고 조상제한서의 한 자리를 차지한 은행이다. IMF 위기 당시 부실 대출로 큰 피해를 입고 위기에 처했다가 1999년 뉴브리지캐피탈에 매각됐다. 당시 들어간 공적자금만 14조원에 달했는데 매각 대금이 5000억원에 불과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정부의 실책으로 회자된다.
 
이후 뉴브리지캐피털이 2005년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에 매각했고 이 때부터 한국스탠다드차타드제일은행(SC제일은행)으로 사명이 변경됐다. 이후 2011년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아예 ‘제일’이 빠졌다. 스탠다드차타드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프로축구팀 리버풀의 스폰서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재 순위는 과거 제일은행의 명성에 비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서울은행은 1959년 지방은행으로 창립됐지만 1962년 부산지점을 신설하면서 전국은행으로 인가받았다. 조상제한서의 한 자리를 역시 차지하면서 상당 기간 주요 은행으로 꼽혔지만 역시 1997년 외환위기로 부실화가 심해졌다. 해외 매각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결국 엎어졌다. 2000년 독일 도이체방크에 경영을 위탁하고 재기를 노렸지만 2002년 월드컵 직후 갑작스레 KEB하나은행(당시 하나은행)에 인수·합병돼 43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이후 법인 자체는 하나은행이 이어받아 지난 8월까지 있었지만 9월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통합법인인 KEB하나은행이 본격 출범하면서 완전히 소멸됐다. KEB하나은행의 초대 통합행장에는 서울은행 출신인 함영주 씨가 선임돼, 법인 소멸 이후 최초로 서울은행 출신이 행장에 오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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