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부문에 있어서도 민주주의의 ‘다양성’ 존중돼야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여야 정쟁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마치 참여정부 시기 ‘친일인명사전’을 두고 여야가 벌였던 역사전쟁의 재판을 보는 듯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그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각종 토론회를 통해 꾸준히 관심을 환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새누리당의 공천 룰 내홍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빛이 바랬었는데 지난 6일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현행 검‧인정 교과서를 가리켜 ‘전교조 교과서’라고 포문을 열면서 다음날인 7일부턴 여당 내 계파를 불문하고 ‘교과서 국정화’에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이 교과서 편향성을 지적한 이래 교육부에선 ‘교과서 국정화’를 최우선 국정과제처럼 추진하고 있는데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학문적 접근이 아니라 정치적 접근을 하고 정책이 입안된다면 결코 안 될 말이다.
 
이 문제를 푸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해당 교과서를 가지고 역사를 배워나갈 학생과 이를 가르치는 교육자들의 의견을 우선 반영해야 한다. 그들이 가르치고 배우는 당사자들이며 현장 전문가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명분을 내놓는다고 해도 무의미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일본과도 위안부 등 ‘역사’ 문제로 여태 정상회담 개최에 난항을 겪을 만큼 역사적 사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는 것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만행을 은폐‧왜곡하기에 급급했던 과거 후소샤 극우 교과서가 일본의 유일 교과서로 국정화된 것이 아니라 일부 소수학교에서 채택한 검정 교과서인데도 우리 정부가 나서서 크게 반발한 건 그런 이유가 있다.
 
비록 역사 자체가 E.H.Carr의 말대로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기에 주관적 해석이 배제될 수 없고 이 과정에서 정치성을 띠게 되는 건 불가피한 부분이다. 교과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루게 되는 사료 자체가 대체로 ‘기록으로서의 역사’이기 때문에 마치 고증학처럼 역사적 ‘사실’만을 다루겠다는 게 어불성설이란 건 그래서다.
 
그렇기에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안을 놓고도 정부여당이 정치성을 배제하고 객관적 사실만 다뤄서 만들겠다는 주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단 것이며 현 교과서처럼 ‘편향된 시각’만을 바로잡겠단 것도 ‘편향’의 판단 기준이 어디까지인지를 놓고 자의적으로 해석할 우려가 있다.
 
이미 지난해 9월 교과서도 아닌 EBS 수능 역사교재조차 교육부에서 학습 부담과 난이도 문제를 이유로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과 함께 실려 있던 ‘유신 헌법’이란 이면에 대해서만 삭제해줄 것을 출판사에 요청해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이렇듯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사 인물과 관련한 평가에선 공과 과를 동일하게 담는 것이 그나마 정치적 논란을 가장 줄일 수 있는 방편이라 본다. 대부분 명암이 뚜렷한지 아닌지 정도의 차이일 뿐 오로지 공만 있고 과는 없는 인물은 드물다.
 
그러므로 공만을 부각시키거나 과만을 강조해서도 안 되고 담담히 동일하게 담아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게끔 해야 ‘주관적 편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여권에서도 미군의 노근리 학살은 수록하면서도 북한의 양민학살 내용은 함께 다루지 않는 걸 비판하며 현 교과서의 ‘편향성’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두 내용을 모두 싣도록 검정과정을 강화하면 될 뿐 ‘편향성’의 보완을 위해 국정화 외엔 대안이 없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
 
객관성에 가깝게 균형을 유지하려면 한쪽의 시각이 아닌 다양한 시각을 담고 소개함으로써 독자가 판단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 교과서의 ‘편향성’을 이유로 한 가지 해석으로 통일한 국정교과서가 등장한다면 이 또한 다양성을 저버린 채 ‘편향’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 않은가.
 
OECD 가입국은 물론 그 어느 선진국에서도 국정교과서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 이유는 이처럼 다양한 해석을 태생적으로 낳을 수밖에 없는 ‘역사’ 과목만의 특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현재 교육현장과 재야 학계를 비롯해 정치색을 떠나 대다수 교육감들이 한 목소리로 국정화 반대 의견을 내고 있는 것은 다양성과 자율성이란 민주주의적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교육방식이란 측면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후소샤 교과서 파동’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뉴라이트 계열에서 내놨던 대안교과서와 친일미화 표현으로 논란을 일으킨 교학사 검정교과서 파문이 있었던 적이 있다. 당시 부실한 감수 및 검정기관을 질타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이들 교과서는 교육시장에서 냉혹한 평가를 받고 사라지거나 극소수에 그치게 됐다.
 
이는 아무리 다양성이 존중되는 민주사회라고 해도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공유하는 가치를 담지 못한 이질적인 역사는 공감할 수 없는 ‘왜곡’에 지나지 않는단 인식이 대중 전반에 각인되어 있단 반증이다. 즉, 이런 자정작용이 있기에 굳이 특정 사관으로 일괄적으로 맞추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또 국정교과서가 새누리당에게도 양날의 칼일 수 있는 것은 정권교체가 일어나 여야가 뒤바뀔 경우 그때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정치색을 입힐 가능성이 있단 점이다.
 
교육과 마찬가지로 국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송의 경우에도 이명박 정권 시기 종합편성채널 개설을 두고 ‘보수적 시각’의 방송을 늘리겠단 정치적 의도에서 늘린다는 일각의 반발을 들었지만 민주주의의 다양성 측면에선 꼭 틀렸다고 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기존 방송국들이 ‘야권’의 시각으로 보도를 한다고 해서 이들을 ‘여권’만을 대변하는 방송국 하나로 통폐합할 수 없듯 교과서 문제도 마찬가지 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역사논쟁이 불필요한 사회갈등과 국론분열을 미래세대에까지 이어지게 만들고 해묵은 이념논쟁에 불붙이는 역할을 하고 있어 교과서 국정화로 통일된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사회갈등 2위(2010년 기준)를 기록한 사실에 비쳐볼 때 일부 일리 있어 보일 수도 있다.
 
다만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의 이데올로기와 달리 우리는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주의나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사회 갈등의 가능성 또한 내재할 수밖에 없단 점은 민주주의를 채택한 이상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 한정된 프레임을 갖게 된다는 건 스스로 사고의 폭을 좁힐 뿐 아니라 끊임없이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통해 비교하고 고민하기보다 전체주의형 주입식에 익숙한 수동적 사고의 인간상이 나오게 될 수 있단 점을 고려해봐야 할 것이며 이렇게 되면 후일 주변국과의 역사 논쟁에 있어서도 우리의 능동적 대응력을 떨어뜨릴 소지가 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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