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교과서 국정화’ 꺼내 당내 단합 및 野 압박 ‘1석2조’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7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현행 역사교과서로 수업한 학생들은 배우면 배울수록 패배감에 사로잡힌다”며 “모든 것을 사회 탓, 국가 탓 하는 시민으로 만들고 있다”고 현행 검인정 교과서를 강하게 비판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그간 ‘공천 룰’로 요동치던 여당이 하루아침에 ‘교과서 국정화’ 의제로 하나돼 야권 맹공에 나섰다.
 
이에 야권은 모든 노력을 기울여 총력 저지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정부가 교과서 국정화를 내주 확정 발표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이를 둘러싼 여야 갈등이 해묵은 이념 논쟁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 ‘역사’를 둘러싼 여야 시각차
 
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화두로 떠오른 것인지 우선 이에 대한 여야의 시각과 정부의 ‘국정화 발표 결정’에 이르는 과정을 함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간 새누리당은 야권에서 제기해 온 ‘친일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군부 독재 시기 여당의 계보를 잇는단 세간의 인식으로 인해 줄곧 역사 논쟁에서 취약점을 드러내왔다.
 
이미 과거 참여정부 시기 ‘친일인명사전’ 논란으로 당 전체가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적이 있으며 현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둘러싼 역사 해석도 끊임없이 논쟁거리가 돼온 것은 물론 현 여당 대표인 김무성 대표조차 부친(고 김용주 전남방직 회장)의 친일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반대로 야권에선 여당을 압박하는 단골 소재로 삼아온 것이 바로 ‘역사’인데 특히 ‘친일’ 논란과 ‘민주주의 탄압사’를 중점으로 다루다 보니 그 중에서도 ‘근현대사’를 두고 여당과 큰 시각차를 보이게 됐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라고 하지만 사실상 새누리당에서도 초점을 둔 부분이 바로 ‘근현대사’인데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사를 둘러싼 해석에서 동일 사건을 두고도 다른 입장을 보이면서 ‘뜨거운 감자’가 돼 논쟁을 부채질해왔다.
 
특히 여야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극히 상반됐는데 이는 자당의 기원을 어디에 두는지 보여주고 있어 단순한 ‘특정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나 해석차이’로 보기 이전에 각 당의 정통성과 명분을 건 대결이자 당을 대표하고 있는 ‘이념’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례로 새누리당 김 대표가 지난 광복절에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해 우리나라 국부로 예우해야 한다”고 주장을 편 데 비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제시대 독립운동은 독립운동대로 평가하고 해방 후 사회주의 활동은 별도 평가하는 것이 독립운동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길”이라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재평가 주장으로 맞불을 놨던 점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역사 해석’을 두고 충돌해 온 양측은 ‘역사 교육’의 방식을 두고도 필연적으로 날을 세울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어떤 ‘역사교육 방식’을 택하느냐에 따라 양당 중 어느 한 쪽이 미래 세대의 역사에 대한 시각을 선점하게 되면서 이것이 정치적 성향까지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험난했던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추진과정
 
그래서 역사 교육 수단의 하나인 ‘교과서’를 두고도 쟁점이 될 수밖에 없던 것인데 사실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가 완전 검정으로 바뀐 역사는 그리 길진 않다.
 
광복 이후 역사교과서는 검정으로 발행되긴 했지만 유신체제 아래였던 1974년 이래 군부 독재가 종식된 지 오래인 2010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는 장기간 국정 역사교과서 체계를 유지해왔다.
 
즉 이번에 국정화 조치가 단행된다면 역사교과서가 완전 검정으로 바뀐 지 불과 5년 만에 과거로 회귀하게 되는 것인데 야권에선 현재 OECD국가는 물론이고 선진국에선 검정 교과서 체계를 유지하거나 출판사 자율에 맡기는 기조라는 점을 강조하며 국정 교과서를 쓰는 나라는 현재 북한, 방글라데시, 베트남, 몽골 등 극소수 개도국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17개 시‧도 교육감 중 울산과 경북을 제외한 15명이 지난달 8‧9일 양일간 국정화 반대 입장을 공개 표명한 바 있으며 역사 교사의 80%는 물론 재야 사학계까지 나서서 반대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당시 반대한 교육감들 중 일부 보수 성향 교육감까지 함께 나섰는데 국가가 주도하는 교과서의 일방적 가치관으론 창의적 인재를 육성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반발을 무릅쓰고 추진되는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는 사실 단기간에 준비된 게 아니란 건 이미 지난해 2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교육문화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현행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일찌감치 예고됐는데 당시 박 대통령은 “정부의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많은 사실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 논란이 있는 내용 이런 것이 있어선 안 된다”며 “교육부는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 개발 등 제도 개선책을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월 26일 교육부에서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어 교과서 국정화 의사를 타진한 바 있는데 당시 교육부와 새누리당의 기대와 달리 교사들은 물론이고 교과서 집필자 및 역사학회 회원들까지 압도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하면서 잠시 한 발 물러난 듯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달도 채 되지 않아 교과서도 아닌 EBS 수능 역사교재에까지 교육부가 개입해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공포’ 사실을 삭제하는 등 ‘난이도 조절’을 구실로 특정 사실만을 고쳤단 보도가 SBS를 통해 나간 이후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지난 1월 8일 “역사는 한가지로 권위 있게 가르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어 올해 초인 1월 8일엔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 자리에서 “역사는 한가지로 권위 있게 가르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고 발언하면서 일찌감치 국정화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암시했으며 이젠 여권까지 본격적인 지원사격에 나서면서 국정화 분위기 띄우기에 앞장섰다.
 
특히 새누리당은 10월 7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김 대표가 “현행 교과서들은 ‘반’대한민국 사관으로 쓰여 있다. 배울수록 패배감에 사로잡힌다”고 직격탄을 날리며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독재정권을 옆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로선 국론 분열을 막고 국민 통합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국정화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어 ‘공천 룰’을 두고 불과 며칠 전까지 김 대표와 대립했던 원 원내대표도 역사교과서와 관련해 “편향성 논란의 근본 원인은 교과서를 쓰는 집필진 구조에 있다. 이들 다수가 공정성, 균형성, 역사관을 의심하기 충분한 특정인용을 추구하는 세력”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며 가세했다.
 
친박계인 이정현 최고위원까지 “역사교과서는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지 소수 편향된 집필진들의 전유물이 돼선 안 된다”며 북한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를 여러 교과서에서 다뤄온 집필진들을 예로 들어 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당정은 ‘국정화’란 단어에서 오는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새 역사 교과서의 명칭도 ‘단일역사교과서’로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 ‘국정화’ 논란으로 김 대표에 공세 전환한 野
 
이에 질세라 야권도 총공세에 돌입했는데 이미 지난 2일 새정치민주연합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대한 긴급 토론회를 개최한 데 이어 7일엔 여권의 현행 교과서 제도 질타에 맞서 ‘이념 논쟁’에 불을 붙인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해임 촉구 결의안과 더불어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 결의안까지 함께 채택했다.
 
특히 얼마 전까지도 ‘공천 룰’을 둘러싼 여권 내 친‧비박 당권투쟁에서 김 대표를 거들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언제 불었던 훈풍이었냐는 듯 김 대표에게도 날을 세웠다.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당정을 싸잡아 비판했는데 “김무성 대표와 황우여 장관은 ‘(국사교과서의) 다양성과 자율성이 훼손돼선 안 된다’고 목청 높인 바 있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단 하나만 있어야 한다’며 획일성을 주장하는데 자기모순의 극치”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보다 더 나아가 같은 당 유기홍 의원을 청와대를 배후로 지목해 “정부여당이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일제 때 항공기 헌납을 선동한 김무성 대표의 부친 문제, 그리고 다까끼 마사오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들 가계문제를 덮기위함 때문”이라 맹비난하며 “미래유권자 의식을 오염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꼬집었다.
 
이런 극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오는 12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공식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야권의 엄청난 반발이 예상되고 있는데 이 후폭풍이 여권 내 ‘공천 룰’ 갈등을 잠재우고 당을 단합시킬 계기가 될지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공천 룰’ 갈등으로 완전 갈라선 듯했던 친박과 비박이 야권을 상대로 공동전선을 형성하면서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까지 강행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낼 수 있어 김 대표에게 ‘역사 교과서’ 카드가 마치 과거 중국에 일제가 침략함으로써 이뤄진 ‘국공합작’에 버금갈 묘수로 통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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