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동차 업체 폭스바겐그룹의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은 폭스바겐은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 에너지 산업의 주도권 쟁탈전이란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스캔들이 가솔린 중심의 미국이 디젤 위주의 유럽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음모론’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배출가스 조작은 명백한 소비자 기만행위다.
 
물론 이번 사태는 디젤 자동차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유럽과 가솔린 자동차를 내세운 미국의 산업 경쟁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은 19세기 말 독일 출신 루돌프 디젤이 디젤 엔진 상용화 개발에 성공하면서 제일 먼저 디젤차 기술을 보유했다.
 
이후 유럽에서도 독일 중심으로 디젤 기술이 확산되며 디젤차가 발전하게 됐다. 독일 정부는 경유의 세금비율을 낮추고 디젤 자동차를 만드는 완성차 업체를 지원하면서 정부 차원에서도 디젤자동차 발전을 적극 육성했다. 이에 디젤 기술에 강한 부품 기업과 완성차 업체들이 크게 성장해왔고, 연구개발에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경쟁사들과 격차를 크게 벌려나갔다. 자동차 강국으로 불려오던 영국과 프랑스도 독일 디젤에 밀려 자동차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졌다.
 
전문가들도 이번 사태가 각 나라의 산업과 에너지 정책과 맞물려 있다는 견해를 보인다. 유럽과 한국이 따르고 있는 배출가스 규제는 유로6다. 이는 현재 자동차 기술의 한계라 할 정도로 기준이 엄격한 상황이다. 미국은 티어2 레귤레이션이라는 배출 가스 규정을 적용중인데, 유럽 기준보다 훨씬 더 엄격하다. 환경보호 차원에서 정책을 강화했지만 결국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계산이 숨어 있다는 게 골자다.
 
디젤을 앞세워 승승장구하던 독일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으며, 가솔린 시장을 방어하려던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선 모양새가 됐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은 유럽연합 회원국 통상무역 장관들에게 이번 폭스바겐 사태가 미국 자동차 산업보호와 관련이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곤 회장은 편지를 통해 “미국이 폭스바겐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사건을 매우 엄격히 조사하고 있는 이유는 훨씬 우수한 기술을 지닌 유럽 자동차 업체들로부터 미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유럽은 우수한 자동차 기술력으로 무수히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데, 미국이 이 리더십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자동차 업계의 유력 인사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떠도는 미국 배후설을 거론했다는 점은 이번 사태를 보는 유럽의 시각을 말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정황이 ‘조작’을 정당화시켜주진 못한다. 미국이 규제장벽으로 디젤차를 견제하는 경향이 있지만 폭스바겐이 빌미를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변하지 않은 것은 폭스바겐이 소비자를 기만하고 배기가스 성능 테스트 과정에서 조작하는 범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폭스바겐은 이번 사태로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큰 규모의 배상금을 지불하고 점유율 감소도 예정된 수순이다. 그러나 경쟁사가 반사 이익을 누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소비자 입장에선 디젤의 고효율성이 여전히 매력적이며 디젤 배출가스가 환경에 유해하긴 하지만 경제적인 이득을 소비자가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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