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보다 진한 물’도 있다니까...

재계의 혼맥을 유심히 살펴보면 ‘한 다리(?)’만 건너면 우리집 안방이다. 그 만큼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톱니바퀴가 물려 돌아가듯 치밀한 구조로 이루어 진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될 수 있는 기업들 간의 이해관계를 대변 한다고나 할까. 이것은 곧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각 기업들의 행보이기에 언제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 된다. 그중에서도 최근 각 그룹의 ‘사위’들이 차세대 재계의 ‘엔진’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사위는 백년지객(百年之客)’이라는 말이 있다. 처갓집의 처지에서 사위는 언제나 손님처럼 어려운 상대라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 재벌가의 모습을 보면 이 같은 옛말이 무색해 보인다. 사위들이 오너 2∼3세 못지않은 파워를 휘두르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탓이다. ‘삼성家 사위’들 초고속 승진 중
▲ 임우재 삼성전기 상무보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상무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삼성가’ 사위들의 행보가 눈에 띈다. 삼성가의 두 사위들은 작년 초 단행된 정기인사를 통해 일찌감치 요직에 들어섰다. 이회장의 장녀 부진씨의 남편 임우재(37)씨는 삼성물산 평사원 출신으로 결혼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삼성전기 상무보로 전격 선임되어 요직에 올랐다. 동아일보 김병관 명예회장의 아들인 김재열(37)씨는 해외 유학코스를 밟은 전형적인 엘리트 출신. 이회장의 차녀 서현씨의 남편으로 제일기획 상무보로 경영에 참여한 이후 2003년 제일모직으로 옮기면서 이듬해 상무로 승진했다.
▲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의 둘째 사위인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그 동안 전문 경영인 못지않은 경영 수완을 발휘하면서 장인인 정몽구 회장의 신뢰를 듬뿍 받았다. “재벌가 사위들 중에서 정 사장이 가장 잘 나간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확실하게 입지를 굳혔다. 과감한 마케팅과 공격 경영으로 2%에 불과하던 현대카드 점유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 셋째 사위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도 일찌감치 장인의 신임을 얻은 경우다. 지난 1995년 현대정공에 입사한 그는 말 그대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2001년 현대하이스코 이사, 2002년 전무, 2003년 부사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지난해 3월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최근 현대차 비자금 문제가 검찰에 의해 불거지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정몽구 회장은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의 전폭적인 후원자였다. 그런 정 회장이 최근 검찰에 구속되면서 입지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사위경영 체제를 실시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그룹은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이다. 동양그룹의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은 아들이 없이 딸만 둘을 두었는데, 생전에 이미 사위경영 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회장 사후에는 분사를 통해 두 사위들이 주축이 된 경영체제가 완전히 정착됐다. 따라서 이 회장의 맏딸 혜경씨의 남편인 현재현(56) 동양 회장과 둘째딸 화경씨의 남편 담철곤(50) 오리온 회장은 업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위 경영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서울법대 졸업 후 지난 77년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하던 현재현 동양회장은 동양시멘트 이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경영에 뛰어들었다. 한때 동양은 외환위기로 심각한 부채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내실경영으로 그룹의 기반을 안정시키는데 공헌했다. 또 조지워싱턴대학 출신인 담철곤 회장은 오리온그룹을 식품과 유통,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사업군을 확대시키며 저돌적인 경영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 문성욱 신세계 I&C상무
신세계 그룹에서는 문성욱(33) 상무의 약진이 돋보인다. 이명희 회장의 딸 정유경씨의 남편인 문상무는 엘리트코스를 밟은 IT전문가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문상무는 지난 12월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신세계 I&C로 영입됐다. 크라운제과 윤영달 사장의 사위인 신정훈(34)상무도 눈여겨 볼만하다. 미국에서 MBA과정을 수료한 뒤 해태제과 인수작업을 주도한 신상무는 지난 1월 해태제과 상무로 입사, 관리재정본부를 맡으며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애경그룹은 장남 형석씨가 그룹 부회장을, 차남 동석씨가 애경백화점을 맡고 있어 사위경영 체제가 정착됐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큰딸 은정씨의 남편인 안용찬(46)씨의 약진이 눈에 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MBA를 마친 안사장은 애경 사장으로 취임한 뒤 채부회장과 함께 그룹의 중추 사업부문인 세제·화학·생활용품 등을 담당하며 각광을 받고 있다. 신세계, 크라운제과 ‘젊은 사위’들 약진 이 밖에도 삼양식품 창업자 전증윤 회장의 맏사위인 서정호 사장은 최근 ‘명가 재건’이라는 중책을 부여받고 경영 일선에 투입됐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사위인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도 최근 지주회사 출범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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