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침체가 심각해져 경제 전반에 활력이 돌지 않고 있다. 지난 2분기 민간 소비 증가율은 마이너스 0.3%로 사실상 정체상태다. 소비가 감소한 원인은 가계에 쓸 돈이 없다는 것이다. 평균소비성향은 71.6%로 2003년 이후로 가장 낮은 수치다. 소득에서 세금과 연금 등을 뺀 처분 가능한 소득이 100만원이라면 71만6000원만 소비를 하고 나머지는 저축했다는 의미다. 경기침체가 계속돼 소득이 크게 늘지 않고, 앞으로 쓸 돈이 모자랄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불안한 미래를 감안한 소비축소는 경기침체라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내수가 침체하면서 600만명에 육박하는 자영업자들은 3분기 연속 사업소득이 줄어들었다. 가계상황과 자영업자들의 지갑사정은 침체에 빠졌지만 10대 그룹을 위시한 대부분의 기업들의 사내보유금은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0대 재벌 사내보유금이 20조6000억원에서 612조3000억원으로 30배 넘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2009년 정부가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법인세를 인하했지만 재벌 기업들이 고용과 투자에는 쓰지 않고 곳간만 채웠다.
 
낙수효과가 미미하다는 게 정설이 된 지금 정부의 친 기업적인 정책들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내수침체가 저성장과 고령화에 따른 소비가 위축되는 구조적인 측면도 있겠다. 하지만 정부 대책은 소비 활성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가계소득을 늘리는 정책은 없었다. 승용차와 대용량 가전제품에 붙는 개별소비세율 인하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세율은 낮추고 물건 가격을 깎아줘도 부자들만 지갑을 열고 서민들은 쓸 돈이 없다.
 
조세의 소득 재분배 효과는 전무한 수준이고 복지 재원을 위한 증세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 보호에도 소극적이다. 오히려 공공요금과 담뱃세 인상 등 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부분에 증세를 하는 상황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봐도 조세와 군역에 문제가 생기면 나라가 기울기 시작하는 전초다. 해당 문제로 망하는 나라가 부지기수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지배층이 이 문제들을 가지고 피지배층에게 전가하다가 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한국과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임금주도 성장 전략이다. 국제노동기구는 지난 2012년 ‘임금 주도 성장’을 제안했다. 임금 상승은 수요의 성장과 생산성 성장을 가져오면서 경제에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유로존 내 국가의 임금이 1% 상승할 때 국내 수요량은 0.14%포인트 증가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일본, 터키,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관측됐다 전 세계 총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G20 국가들이 임금을 동시에 1% 올릴 경우 G20 국가들의 총생산을 0.36%포인트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월급쟁이들의 임금이 오르면 소비와 생산이 증대된다는 뜻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또한, 정부가 조세와 복지 정책 등으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은 성장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를 더 공정하고 더 부유하게 만든다. 기업들도 상품을 소모해줄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있어야 더욱 이익이 발생한다. 쓸 돈이 늘어야 지갑을 열 것이고, 소비가 활성화 돼야 내수가 살아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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