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 별도 실사단 파견으로 해묵은 신경전 재연되나

▲ 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현황 파악과 경영정상화 방안 마련을 위한 실사에 대한 신경전을 거듭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지난 2분기에만 3조원대의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한 대우조선해양의 현황 파악과 경영 정상화 방안 마련을 위한 실사에서 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신경전을 거듭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인 이달 초 삼일회계법인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대우조선해양 본사에 실사단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에 총 12조원에 달하는 신용공여를 제공한 최대 채권은행이다.
 
문제는 현재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이미 삼정회계법인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재무 실사에 돌입한 상태라는 점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7월부터 삼정회계법인을 통해 실사에 돌입, 이달 말 경 실사보고서를 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복수의 회계법인 팀을 꾸려서 실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산업은행 측의 실사단이 파견돼 실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입은행이 별도의 실사단을 파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은폐에 책임이 있는 산업은행 주도의 실사를 못 믿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실사 결과가 다를 경우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범정부적으로 일심동체가 되서 지원할 때 엇박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수은, 독자적 행동 배경은?
수출입은행의 실사단 별도 파견 이유는 여신 규모가 가장 큰 만큼 경영 정상화 추진 과정에서의 권리 행사를 위한 포석 차원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흔한 사례가 아닌 만큼 상식 밖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수출입은행 측은 “삼정회계법인이 내놓는 실사보고서를 검증하는 차원에서 삼일회계법인의 실사단을 파견했다”는 입장이다. 결국 실사보고서를 믿지 못하니 검증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오는 실사보고서에 따라 채권은행들이 협의를 해야 하는데 수출입은행의 독자 행동이 협의에 불협화음을 불러올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출입은행의 독자 행동 배경에는 과거 STX조선해양 구조조정 사례가 있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 2013년 안진회계법인을 통해 STX조선해양에 대한 실사를 진행하고 2조7000억원의 자금으로 경영을 정상화한다는 방안을 세웠다. 하지만 6개월 뒤 추가 부실이 드러나면서 1조8000억원이 더 투입됐다. 재실사가 단행된 것은 물론이다.
 
업계에서는 당시 사례가 산업은행 주도의 실사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 만큼 수출입은행이 산업은행 주도의 실사에 불신을 품고 있는 것 아니냐고 풀이하고 있다. 실제 수출입은행은 산업은행이 실사 주관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산업은행의 영향력을 우려해 삼정회계법인을 주관사로 채택하지 말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은폐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질타를 한몸에 받아 왔다. 알고도 숨겨줬거나 적극적으로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책임론이다. 수출입은행은 이 같은 점이 실사 결과에도 반영될 것을 우려해 실사의 투명성을 강력히 요구한 셈이지만, 수출입은행의 요구는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실사 결과가 다를 경우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범정부적으로 일심동체가 되서 지원할 때 엇박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해묵은 신경전 재연되나…경영정상화 과정 불협화음 우려도
사실 우리나라 양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간의 물밑 신경전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과거 국정감사에서 수 차례 해외 업무 분야나 중소기업 업무 분야에서의 주도권을 주장하며 물밑 싸움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번에 실사를 놓고 벌이는 다툼 역시 양대 국책은행의 자존심 싸움이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2006년 산업은행은 우즈베키스탄의 현지 은행을 인수한다거나 베이징 구상을 통해 국제투자금융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히면서 수출입은행의 강한 반발을 받기도 했다.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국내 기업을 지원하는 수출입은행의 고유 업무 영역을 산업은행이 침범하고 있다는 얘기다.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 수출입은행은 “산업은행이 대외금융을 확대하는 것은 설립 목적을 이탈한 것”이라고 공격했고 산업은행은 “국제관련 업무도 취급 근거가 분명히 있으며 국가적 사업을 특정 기관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지난 2013년에는 수출입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통합 공적수출신용기관(ECA)을 놓고 한바탕 맞붙기도 했다. 수출입은행이 연구용역을 맡긴 결과에 따라 수출입은행을 중심으로 ECA를 구성해 중소기업 수출과 해외 투자 등에 필요한 금융을 폭넓게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정책금융공사는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연구용역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정책금융공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산업은행에서 분리됐다가 올해 다시 통합됐다.
 
이처럼 양대 국책은행 간의 해묵은 신경전이 이번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계기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산업은행은 부실 은폐 의혹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야 하는 입장이고 수출입은행은 모뉴엘 사태 등으로 땅에 떨어진 대출 심사 능력에 대한 신뢰도를 탈피하기 위해 대규모 채권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함으로써 반드시 비판에서 벗어나야 하는 입장이다. 둘 다 제 코가 석자인 셈이다.
 
하지만 역시 업계에서는 수출입은행의 독자 행동이 결국은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라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주관사 선정 때부터 복수의 회계법인을 뽑는 것이 옳다는 얘기로, 이런 식으로 별도로 실사단을 파견할 경우 향후 경영 정상화 과정에서 필수적인 은행간의 협업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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