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잡은 듯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이 경기부양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부가 6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운용 방향의 큰 틀은 지난해 말 수립한 올해 전체 운용 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재정지출 극대화, 비과세.감면 연장, 건설투자 보완, 기업 규제 완화 등 경기 활성화를 위해 현실적으로 동원 가능한 정책이 모두 포함됐다. 정부는 당초 재정 수요 확보 및 조세제도의 합리화를 위해 비과세.감면 제도를 대폭 정비하기로 했지만 경기 부양 논리에 밀렸다. 민간연구소들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다투어 낮췄지만 정부는 오히려 5.0%에서 5.1%로 상향 조정했다. 정책수단으로 경기 하강을 막겠다는 의지다. ◇ 성장률 5.1%로 상향 정부는 하반기 국내 경제가 대내외 불안요인에도 잠재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했다. 생산, 소비, 투자 등 실물지표가 견조한 데다 하반기에 재정 지출을 극대화하면 경기 하강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상반기 5.8%, 하반기 4.5%로 연간 5.1%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말 전망치 5.0%보다 소폭 올려 잡았다. 민간소비는 안정적인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판단, 당초 전망대로 4.4% 증가를 유지했고 설비투자는 당초 예측치인 6.5%보다 높은 7.0%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건설투자 증가율은 2.0%보다 훨씬 낮은 0.7%로 내려 잡았다. 제조업의 고용 부진 등을 감안해 일자리 창출 규모는 37만5천명에서 35만명으로 하향 조정했고 고유가와 환율 하락 등을 고려해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를 150억달러에서 40억달러로 대폭 낮췄다.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 전망치는 배럴당 54달러에서 63달러로 10달러 가까이 올렸다. ◇ 경기부양에 총력 최근 실물지표는 견조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기업과 소비자의 심리지표는 계속 하락했고 유가와 환율 등 대외 변수들도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경기 회복이 지속되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서민과 중소기업의 피부에는 와닿지 않고 있다. 이는 서민경제 안정을 내세워왔던 여당에 지방선거 참패라는 당혹스러운 결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열린우리당은 지난 5일 당정협의에서 금리 인상 억제, 건설 규제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조기 폐지, 공공요금 인상 억제, 각종 세금 감면제도 기한 연장, 재정지출 확대 등 16가지를 정부에 요구했다. 사실상 정부가 갖고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해달라는 주문이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의지는 재정정책에서 잘 나타난다. 정부는 경기 부양책으로 추경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지만 하반기에 집행해야 할 재정 88조8천억원에 대한 이월.불용액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통상 재정의 사업비는 연간 단위로 1조~2조원 안팎의 이월.불용액이 남지만 올해는 남김없이 모두 사용하겠다는 뜻이다. 하반기 재정의 사업비는 상반기에 재정집행이 집중됐던 지난해 하반기의 67조3천억원보다 21조5천억원이나 많다. 일몰이 돌아오는 55개 비과세.감면 조항 중 서민, 중소기업과 관련된 부분은 유연하게 연장을 검토하기로 했다. 서민과 중소기업의 세부담을 줄여 소비와 고용을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을 통해 연장을 결정했거나 연장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비과세.감면 조항만 벌써 10여개에 달한다. 기업도시 전담 추진 기업에 대한 출총제 제한 완화, 임대형 민자사업(BTL)과 수익형 민자사업(BTO) 내실화, 법인.공장 설립 간소화 등은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창출을 겨냥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재벌 정책 후퇴 논란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이 저출산.고령화 대책 재원 마련과 재벌 정책이라는 측면에서는 논란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애초 지방선거 이후 발표하기로 했던 중장기 조세개혁방안의 입법 작업을 올해는 하지 않겠다고 한발 후퇴한 데 이어 올해 일몰이 돌아오는 비과세.감면 조항 중 상당 수를 연장할 수도 있다는 방향으로 한 발짝 더 물러섰다. 비과세.감면은 저출산.고령화 대책 등 경제.사회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재원 마련과도 연결돼 있다. 또 출총제 대안 마련과 관련, 출총제의 조기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요구가 반영되면 재벌정책의 후퇴라는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이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여당에 휘둘린다는 인상을 줘 내년 말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한다는 우려를 불러올 수도 있다. ◇ 전문가 "재정 지출 극대화 긍정적" 경제 전문가들은 재정의 사업비 지출 극대화라는 정책 방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체감경기 회복과 내년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반기 재정을 건설투자 등 효과적인 분야에 신속하게 사용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여당의 주장처럼 추경예산까지 편성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송 위원은 또 "성장률보다는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체감경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경기 하강이 급격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재정지출을 파격적이거나 과도하게 늘리기보다는 이월.불용액 최소화를 통해 극대화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권 연구원은 "아직까지 공격적인 부양책을 쓸 상황은 아니고 올해 하반기보다는 내년의 경기하강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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