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에 홀로 되어 공사현장에서 벽돌을 져나른 돈으로 산집이야...

▲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남영일 할머니. 사진 / 원명국 기자
대흥동 골목가는 한 때 생기가 넘쳤다. 각각의 사연들을 가지고 터전을 잡았다. 그때는 삶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생기대신 눈물만이 대흥동을 채우고 있다.
 
대흥2주택지구는 지난 3월 관리처분 계획이 확정 고시 돼 주민이주가 시작됐다. 하지만 약 170세대의 주택소유자가 재개발을 반대해 현금 청산자로 분류되고 600~1700만원의 감정평가 금액을 책정 받았다. 현금 청산자로 분류된 거주민들의 보상감정가가 턱 없이 낮게 책정돼 서울 다른 지역에 집 구매는커녕 전세 보증금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은 70~80대 노인들이 주를 이룬다.

<시사포커스>가 철거를 앞둔 대흥동 거주민 할머니 한 분을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남영일(76) 할머니는 48년 동안 마포구 대흥동에 살아온 토박이다. 남 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홀로 세 아들을 키우며 한푼 두푼 모아 대흥동 노고산 옆자락 서강대랑 맞닿아 있는 땅을 구매하고 터를 잡았다.
 
이후 대흥2주택지구가 재개발구역에 선정 되고 진행돼왔다, 남 할머니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개발 보상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남 할머니는 현금청산자로 분류돼, 조합 측의 감정평가액 1억3000만원을 산정 받았다.
 
이대로 재개발이 이루워질 경우 남 할머니는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 2000만원과 주택담보 융자를 받았던 1억원을 제하고 1000만원만 남는 상황이다.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단 돈 1000만원만 가지고 길거리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남편 없이 홀로 보낸 세월…
 
남 할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살은 고생했던 세월의 흔적을 알 수 있게 했다.
 
“내가 업이 많은지라 서른둘에 남편을 떠나보냈어. 남편을 보내고 혼자 아들 셋을 키웠지. 참으로 힘들게 세상을 살았지 우리 막내 엎고서 쌀을 이고 장사를 해서 생계를 꾸려 나갔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일산까지 기차를 타고 쌀을 사왔어. 동네로 돌아와서 전봇대 옆에 자리를 깔고 가마니를 놓고 장사를 했지. 그 때 쌀 한가마니 팔면 천원이 남았어 그 땐 이걸로 생활이 가능했어. 그리고 틈 날 때마다 (공사현장에) 가서 벽돌을 날라서 돈을 모았어. 이집이 그렇게 돈을 모아서 장만한 집이야”
 
고생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던 남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들을 고등학교 밖에 졸업을 못 시켜서 항상 자식들에게 죄스러워. 그러나 아이들에게 엄마가 2000원 가지고 장사를 시작해서 너희들을 길렀는데… 막내야, 엄마가 이제 일흔여섯이 됐다. 돌이켜보면 너희들에게 해준게 없구나…하고 말했더니 막내가 눈물을 글썽이더라고...”
 
남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허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지금 허리가 딱 붙어서 수술도 못하는 허리래. 지팡이 없인 걷기도 힘들지. 퇴행성 고관절을 앓고 있어서 예순아홉에 수술을 했어, 걷기도 힘든 다린데 부처님 은덕에 그나마 살고 있다고 믿고 살아”  

공시지가에도 턱 없이 못 미치는 보상가
 
재개발을 반대한 남 할머니는 현금청산자로 분류돼 감정평가를 받았다. 조합 측의 감정평가액은 1억3000만원밖에 안됐다.
 
남영일 할머니의 집은 주택담보대출을 위해 2008년 감정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확인결과, 당시 할머니의 대지 57.6㎡(17평)에 대한 감정평가액은 1억6512만원이다. 마포구 주거지 평균 매매가(2014년 기준 3.3㎡당 1850만원)로만 계산해도 2억원이나 적다. 7년이 지난 지금 공시지가를 따져도 한참 올랐을텐데 조합 측의 감정평가액는 턱없이 부족하다.

헌집 주면 새집 주는 줄 알았지...
 
속았다고 생각한 남 할머니의 토로는 때로는 격정적이고 때로는 구슬펐다.
 
“조합장이 보상금(1억원)에 1억 조금 더 하면 (새로지은) 25평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지. 그렇게 내가 들어갈 수 있으면 어떻게 빚을 내서라도 1억을 구하지 않을까 싶었어. 근데 나중에 3억원을 넘게 내야한다 하니 어떻게 들어가. 여기 조합장도 알아, 나 이렇게 고생하면서 산거. 근데 이렇게 뒤통수 칠 줄 누가 알았어”
 
“여긴 서강대도 있고 홍대도 있고, 이대, 연대 4개 대학이 다 있지. 사글세도 없어서 못 놓던 자리야 이 동네가, 기어 들어가서 기어 나오는 허름한 집도 세가 나갈정도로 위치가 좋단 말이지”
 
▲ 박강수 시사포커스 회장이 남영일 할머니를 만나 위로를 건내고 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집과 세간 몽땅 잃게 생겨…
 
터무니 없는 금액을 받고 쫓겨나게 생긴 막막함은 비단 남 할머니 뿐만은 아니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야, 거기(시위현장) 있는 할머니들 다 80대가 넘어. 18평, 20평 갖고 있던 노인네들 그거 보상 받고 어디로 가나, 막연해. 거기 있는 사람들 다 없는 사람들이야. 없는 사람만 나와서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 거지 그 노인네들 저러고 있다가 다치고 그러면 어떡해”
 
“대통령님이 없이 사는 사람 살린다고 해놓고 없는 사람만 죽이면 되겠어? 없는 사람 살린다는 정부가 없는 사람 죽이는 거 아니야? 이건 진짜 너무 한거야, 내가 너무 억울해서 동네아저씨한테 ‘삼촌, 삼촌이 가서 김무성한테 졸라봐, 문재인한테 졸라봐’ 그랬어”
 
오죽했으면 그렇게까지 했겠냐는 남 할머니의 고백은 현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그러니까 이거는 너무 불평등하지. 이 동네 사람들 다 알뜰살뜰 푼 돈 모아서 집 지은거야. 여기 몸으로 노가다 하는 사람들이랑 야채 장사하는 사람들, 고구마 껍데기 까서 파는 사람, 다들 집만 가만히 두면 갑부 안 부럽게 살 수 있지. 그런데 이렇게 해놨으니 살 길이 막막하지 않아?”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지, 갈 곳이 없는데 어디로 가나. (건설현장) 가서 부딪혀서 죽어서, 죽으면 영광이지. 그럼 ‘아 그 동네 철거하다가 어떤 할머니가 그랬대’, 그럴 거 아니야?” 할머니의 말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 시사포커스 / 이신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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