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 우리금융 2기 회장으로 사실상 확정 내막

우리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7일 우리금융지주 차기 회장 후보로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52)을 단독 추천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 6일 중소기업은행장에 강권석 금융감독원 부원장(54)을 내정했다. "기업 가치 높이고 우리금융 조기 민영화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판단" 이재웅 우리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장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금융 회장의 단독후보로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을 만장일치로 이사회에 추천했다"고 발표했다. 이 위원장은 "공적자금 투입기관인 우리금융의 최대 과제는 성공적인 민영화"라고 전제하고 "기업가치를 높이고 우리금융의 조기 민영화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해 황 전사장을 회장 후보로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황 후보도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개인적 의견으로는 회장과 은행장을 겸임하는 게 맞다"고 밝혀 앞으로 우리금융그룹을 회장-은행장 겸임 체제로 변경해 운영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황 후보는 3월 26일로 예정된 우리금융 주주총회에서 추인되면 정식 취임과 함께 집무에 들어간다. 이에 앞서 3월 6일 재정경제부는 기관장후보평가위원회를 열어 김종창 전 행장이 금융통화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 공석이 된 신임 기업은행장 후보로 강권석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내정했다. 강 신임 행장 내정자는 정기홍 전 금감원 부원장(59), 박철 한국은행 고문(58)과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증권, 당분간 임원 집단 경영체제로 운영될 전망 한편, 황영기 전 사장이 삼성그룹을 떠나게 된 배경과 동기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 다. 황영기 전 사장은 우리금융 회장 공모에 참여하면서 3월 4일 사표를 제출했다. 당시 황 사장은 "우리금융 회장 추천위원회로부터 어떠한 연락이나 언질을 받은 바 없다"며, "응모를 했을 때부터 당연히 삼성증권 사장직에서는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힌바 있다. 또한 황 사장은 "우리금융 회장에 선임되지 않았다고 해서 다시 삼성증권에 눌러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그동안 그룹이 여러 일로 어수선해 사표 제출을 못하고 있다가 빨리 정리해야겠다는 판단에 오늘 사표를 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황 사장은 "이번 사표 제출로 삼성그룹에서는 완전히 떠나는 것"이라며 "그룹의 허락을 받고 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황 사장은 "만약 우리금융에 가게 되면 거래처로서 삼성그룹과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야인으로써 좋은 관계를 가져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우리금융 회장 공모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최근 그룹 쪽에 알려 왔다"면서 "황 사장이 다른 회사 CEO를 희망한 만큼 우리금융 회장 선임 여부에 관계 없이 현 직장에 사표를 제출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증권은 황 사장이 사표를 제출함에 따라 당분간 임원 집단 경영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황 사장이 사표를 제출했기 때문에, 당분간 각 사업본부를 맡고 있는 임원들이 임원회의 등을 통해 최종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에도 주요 의사결정은 임원회의를 통해 이뤄졌고, 사업본부 별도 경영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경영상 큰 공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황 사장이 우리금융 회장 공모에 참여하면서 사표를 낸 것이 주목을 받는 것은 삼성그룹에서 황 사장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 때문. 삼성그룹 내에서 황 사장은 김인주 구조조정본부 사장과 함께 차세대 구조조정본부장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핵심인물이었다. 특히 황 사장은 지난해 말 삼성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구조조정위원회 멤버에 포함되면서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삼성그룹 구조조정위원회 멤버는 윤종용 삼성전자 총괄부회장을 비롯해,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배정충 삼성생명 사장, 이상대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 황영기 사장, 김인주 사장,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 등이다. 특히 황 사장은 폭넓은 경영지식, 탁월한 영어실력, 국제적 마인드 등을 바탕으로 이건희 회장의 신임을 받았고 한때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경영관련 가정교사 역할을 맡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삼성그룹 내에서는 황 사장을 차세대 핵심인물 중 한 명으로 꼽아왔다. '삼성맨'을 넘어 금융계 평정을 꿈꾼다! 그렇다면 황 사장은 왜 삼성그룹을 떠난 것일까? 재계와 금융계 관계자들은 황 사장의 전격적으로 사표를 던진 것은 우리금융 회장에 대한 배수진이자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황 사장이 자신의 선임이 유력한 상황에서 최종 발표가 늦어지자 일종의 쐐기를 박기 위해 이 같은 결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삼성그룹의 핵심 경영자라는 부담도 전격적인 사표 제출의 배경이 됐을 것"이라며, "사표 제출이 삼성그룹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일종의 퍼포먼스 성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황 사장의 사표 제출 배경에는 무엇보다 우리금융 회장 선임에 대한 자신감이 바탕이 깔려 있다"며, "황 사장은 현재 인선위원들이나 재경부내에서도 단연 지지도가 높고, 특히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의 신임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황 사장의 꿈은 단순히 '삼성맨'이 아니다라는 것이 금융계의 정설"이라며, "황 사장은 우리금융 회장 당선을 위해 적극 뛰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우리금융 회장 선임이 4일 오후에 사실상 청와대로 공이 넘어가 있고, 참여연대와 금융노조가 황 사장의 선임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황 사장은 '삼성그룹과 결별'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삼성그룹은 황 사장이 떠나게 됨으로써 당장 구조조정위원회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연초 사장단 인사를 통해 일부 인사들이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위원회에서 빠지게된데 이어 이번에 황 사장이 나감으로써 대폭적인 물갈이가 예상된다. 더군다나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한나라당에 불법 대선자금을 지원한 혐의로 사법처리 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어서 차기 구조조정본부장을 누가 맡게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재계 관계자들은 김인주 구조조정본부 사장을 주목하고 있다. 김 사장은 올해 초 사장단 인사에서 구조조정본부의 실무를 총괄하는 차장직에 오른 데다 유력 경쟁자인 황 사장이 삼성그룹을 떠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차기 본부장 영순위로 꼽히고 있다. 과연 황 사장이 떠난 공백을 어떤 인물이 메우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 은행업 진출 교두보 마련? 한편 황 전 사장의 우리금융 회장 선임과 관련, 삼성이 은행업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의 은행 진출은 국내 금융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성사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금융노조와 시민단체가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가 우려된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선 것도 삼성의 행보가 국내 금융산업에 미치는 파괴력이 엄청나기 때문. 현재로선 황 전 사장이 우리금융 회장으로 선임되더라도 삼성의 은행업 진출은 불가능하다. 정부는 비금융주력자에 대한 금융지배를 앞으로도 엄격히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이헌재 경제 부총리는 2월 26일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삼성그룹의 은행업 진출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삼성그룹이 그룹 내에서 금융계열사들을 분리, 이들을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를 만든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금융전업사의 경우 은행 소유지분 제한이 없기 때문에 삼성이 우리은행을 인수할 길이 트이게 된다. 최근 삼성생명의 우리금융지주 지분 매입 논의도 결국 금융 지주회사로 가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결국 이렇게 되면 삼성금융그룹은 우리은행을 비롯해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화재 등 업계 최고의 금융기관들로 구성돼 국내 금융시장은 삼성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황 전사장의 우리금융 회장 선임이 장기적으로 삼성그룹의 은행업 진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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