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가 살아야 국가대표도 산다

16강 진출에 실패한 한국 축구 대표팀에 아드보카드 전 감독과 히딩크 전 감독이 각각 쓴 소리를 냈다. 월드컵 같은 A매치에만 국민들이 관심을 갖지 말고 K-리그가 강해져야 다음 월드컵에도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을 했다. 이런 쓴 소리를 반영 하듯 한국 축구의 열기는 극과 극이다. 대표팀의 경기가 벌어질 때는 관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난 5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평가전(세네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때는 6만여 축구팬들이 운집했다. 하지만 K-리그는 파리가 날릴 만큼 썰렁하기 짝이 없다. 외신 기자들도 "한국 축구는 기형적이다. 프로축구는 없고 온통 대표팀 축구 뿐"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한국은 취약한 하부구조를 극복하지 못하고 조별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기원한다면 지금과 같은 K-리그로는 안된다.'가자, K-리그로!' K-리그가 월드컵 잠에서 깨어난다. 삼성 하우젠컵 2006이 5일(수요일) 오후 7시30분 울산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울산-전북전을 필두로 재개된다. 한 달 만이다. 태극전사들도 컴백한다. 각각 울산과 전북 소속인 이천수와 최진철이 나란히 교체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프로축구연맹을 비롯해 K-리그 각 구단들은 프로축구 부흥에 소매를 걷어 붙였다. 김원동 연맹 사무총장은 "1998년과 2002년 월드컵 직후 K-리그로 축구 열기를 끌어오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며 "올시즌 후기리그부터는 즐거움을 주는 축구와 함께 지역연고 유대감을 강화하는데 주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물론 풀어야 할 숙제도 한 둘이 아니다. 미국의 타임 아시아판 최신호는 독일월드컵에서 아시아 축구의 몰락을 주제로 K-리그의 대표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타임지는 '아시아에서 가장 건강한 프로축구는 일본의 J-리그다. K-리그의 경우 대부분의 구단을 대기업이 소유하다보니 화끈한 경쟁을 바탕으로 한 스포츠 정신 보다는 수비 중심의 안정을 추구하는 기업 논리가 우선시 되고 있다. 그래서 발전이 없다'고 꼬집었다. 스위스전 직후 많은 팬들이 아쉬운 눈물을 흘리며 K-리그의 부흥을 노래했다. ◆K-리그 활성화 한다지만... 하지만 여전히 K-리그는 '전파의 외면'을 받고 있다. 독일월드컵은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전 지상파와 스포츠채널이 생중계로 방영하고 있다. 그러나 K-리그 경기는 계속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월드컵 기간 중 휴식기를 가진 프로축구가 울산-전북전을 시작으로 다시 힘을 내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 전문 채널인 KBS SKY 스포츠와 SBS SPORTS가 각각 5일 밤 11시30분과 다음 날인 6일 오전 6시 녹화로 중계할 뿐 국내 어떤 채널에서도 생중계 전파를 타지 못한다. 태극전사들은 지난 달 24일 스위스와 혈전을 눈물로 마감한 뒤 "K-리그가 살아야 대표팀이 산다"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천수(울산)는 다음 날 인천공항에 돌아온 직후 "리그에서도 월드컵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딕 아드보카트 전 감독과 핌 베어벡 감독도 'K-리그의 경쟁력이 곧 대표팀 경쟁력'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다. K-리그를 운영하는 주체인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왜 K-리그는 여전히 외면당하느냐'는 질문에 "방송사들이 이미 월드컵 편성을 끝냈고 방송사 내부 사정이 있어 생방송을 하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프로축구연맹은 오는 15일 14개팀이 모두 참가하는 컵대회 9라운드부터 생중계를 하는 방안을 방송사 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이번 울산-전북전은 두 팀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느라 미뤄졌던 이른바 '엑스트라 게임'이라 관심을 덜 받을 수도 있지만 모처럼 그라운드에 나서는 선수들 입장에서 보면 힘이 빠질 만도 하다. 홈팀인 울산 구단 관계자는 "팬들도 많이 찾지는 못할 것 같다. 경기 자체가 월드컵 준결승 중간에 열리는데다 장마철이라 날씨도 좋지 않기 때문"이라며 한숨지었다. 아드보카트 전 감독은 "대표팀 경기에는 6만명이 들어가는 스타디움이 꽉꽉 들어차는 반면 K-리그 경기장에 가보면 3천명 안팎의 팬들만 썰렁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종종 봤다"며 리그 활성화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꿈꾸며 다시 일어서는 한국축구의 새로운 시작은 월드컵 열기 속에 쓸쓸한 '그들만의 리그'로 진행될 것 같은 분위기다. ◆독일 분데스리가 벤치 마킹 이에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과 K-리그 13개 구단, 프로축구연맹 마케팅 담당자들이 지난 6월 12일 2006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독일로 떠났다. 25일까지 13박 14일의 다소 긴 일정이었다. 지독한 관중 감소에 속앓이를 하고 있는 구단과 협회 관계자들이 독일 분데스리가를 벤치 마킹하기 위해 떠난 것이다. 일행들은 분데스리가 사무국과 분데스리가 1부 바이에른 뮌헨, 함부르크 SV, 헤르타 베를린 등의 클럽을 방문, 프리젠테이션과 세미나를 통한 선진축구의 벤치마킹이 더 큰 목적이었다. 월드컵 경기 참관과 분데스리가 방문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한 여정이라 우리 참관단은 프랑크푸르트-뮌헨-라이프찌히-베를린-함부르크-하노버 등 독일 전역을 버스로 한 바퀴 돌아야 했다. 독일의 분데스리가는 지난 시즌 경기당 평균관중이 4만 명인 세계최고의 프로축구리그다. 이처럼 탄탄한 국내리그가 독일의 월드컵 성적으로 직결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독일은 월드컵에서 3차례나 우승했고, 지난 2002년 준우승 등 4차례 2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한국처럼 자국 리그가 취약한 상황에서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기적’이란 평가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환경은 달라도 지역연고에 뿌리를 두고 클럽 규모를 확대해온 분데스리가 성공의 근본요소는 K-리그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일본 J리그가 독일 분데스리가를 모델로 해서 단기간에 성장한 것은 유명하다. 니혼리그 시절 관중 100~200명을 겨우 동원했던 일본축구는 ‘스포츠(축구)를 통한 지역민의 행복’이라는 이념을 근본으로 한 J리그로 변신해 최근 경기당 평균관중 2만 명, J1 18팀, J2 12팀이라는 거대리그로 발전했다. 분데스리가 클럽과의 세미나에 참석한 협회 관계자는 “미리 ‘안돼’라고 부정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우리 상황에 꼭 맞는 마케팅 전략은 어디에도 없다. 선진리그를 참고해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내면 된다”라며 이번 일정에 의미를 부여했다. K-리그가 하루 아침에 팬들의 눈높이를 따라잡지는 못하겠지만 변화는 이미 프로축구연맹, 각 팀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아무리 월드컵에서 AGAIN 4강 신화를 갈망해도 유능한 외국인 감독 영입만으로는 꿈을 이루는데 한계가 있다. 독일이 월드컵 때마다 좋은 결실을 거두는 것은 분데스리가라는 토양이 비옥하기 때문이다. 태극전사들이 튼튼하게 자라날 토양도 K-리그다. 그 토양에 비료를 주어야 할 사람은 프로축구연맹과 구단, 그리고 팬들이다. 이제 독일월드컵 이후의 K-리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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